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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을 듯 닿지 않는 고독에 관하여 - 영화 <시월애>
글 입력 2023.06.1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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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끈하게 타오르는 사랑, 풋풋한 사랑, 애틋하고 가녀린 사랑 등. 참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두고 우리나라 영화계에서도 정말 다양한 로맨스 영화가 개봉되었다. 특히, 2000년대 한국 영화계에 등장한 <내 머릿속의 지우개>, <클래식>과 같은 로맨스 영화는 아직도 많은 이에게 회자되며 호평을 받고 있다. 마찬가지로 여기 2000년대 특유의 한국 분위기가 잘 담겨있으면서도 조금은 다른 사랑을 말하고 있는 영화가 있다. 전지현, 이정재 배우의 열연이 빛나는 영화, <시월애>는 여름철 청춘을 삼킨 듯 계절의 사랑을 노래한다.

 

 

시간을 초월한 사랑, 시(時)월(越)애(愛)

 

영화 시월애의 뜻은 이렇다. 시간을 초월한 사랑. '편지'라는 매개체를 통해 제목 그대로 시간을 초월해 만난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고스란히 실려있다. 영화의 시작은 '일마레'라는 이름의 집의 주인, 은주(전지현 배우)가 이사를 위해 짐을 옮긴다. 그리고 곧 집주인은 성현(이정재 배우)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면서 은주는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편지를 받아야 한다며 편지가 온다면 새 주소로 전해달라는 편지를 우편함에 꽂아놓는다. 그걸 성현이 발견하지만, 알고보니 성현은 은주보다 더 과거에 있다. 즉, 성현이 집의 첫 주인이자 미래의 은주와 편지로 소통이 가능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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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는 전 남자친구와의 문제로, 성현은 어릴 적 자신을 버렸던 아버지와의 문제로 외로워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른 시간에서 서로의 상처를 알아주고 도와준다. 지하철에서 분실한 녹음기를 2년 전 성현이 챙겨주거나, 언젠가 돌아가실 아버지의 유고집을 은주가 구해주면서 애틋한 마음을 키워간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은주의 시간에 맞춰 만나기로 약속을 정한다. 성현은 2년 1주일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은주에겐 1주일 뒤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약속 장소에 도착한 은주는 성현이 나오지 않은 것을 알고 의아하며 상심하던 중, 그리워했던 전 남자친구를 붙잡고자 이별날에 맞춰 헤어짐을 고하지 않게 해달라고 성현에게 부탁한다. 그리고 성현 또한 자신이 왜 나가지 않았는지 의아해하며 은주를 좋아하는 쓰린 마음을 삼키고 그녀를 돕기로 결정한다.

 

 

성현과 은주의 집, 일마레(il mare)

 

영화에선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이미지들이 여럿 있다. 이 영화에서는 '바다'가 유독 그렇다. 영화 초반부터 물을 비추며 시작하는데 그 위에 집 하나가 우두커니 떠있다. 맞다. 그 집이 성현이 살던, 그리고 이어서 은주가 살게 될 집 일마레(il mare)다. 일마레는 이탈리아어로 바다를 뜻한다. 그리고 드넓은 바다와 대비라도 되듯 인물이 장면에 배치되어 영화 곳곳에 등장한다. 바다와 인물의 크기를 상대적으로 비교해 사람이 상대적으로 작고 홀로인 점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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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과의 약속을 위해 바닷가에서 홀로 성현을 기다리던 은주를 비추며, 동시에 바다로 떠내려가는 은주의 빨간 장갑을 함께 보여주기도 한다. 성현이 과거에서 선물해준 장갑이라는 점에서, 바다는 성현을 애타게 기다리던 은주의 외로운 마음과 함께 장갑을 삼켰다. 바다는 곧 상실이 된다.

 

 

상실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은주가 성현에게 선물한 것도 있다. 바로 물고기 한 마리. 원래 은주가 키우던 물고기 두 마리 중 한 마리를 성현에게 보낸 것이다. 둘이었던 물고기가 갈라지며 은주와 성현이 각각 한 마리를 키우게 된다. 먼저 은주의 물고기는 "성현과의 편지는 행복이었으나, 어딘가 마음 한구석에 허전함이 남아있다."는 은주의 대사와 함께 어항의 물 수위가 낮아지는 장면을 연출한다. 그러면서 전 남자친구와 맞춘 커플링을 물고기와 함께 보여준다. 물이 없어도 아무렇지 않은 반지와 대조되게, 움직이지 못한 채 뻐끔거리는 물고기는 그 자체로 '생명력'을 뜻한다.

 

은주가 전 남자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고백하자, 성현은 은주를 사랑한 괴로움과 함께 자신이 키우던 물고리를 집 앞 바다에 풀어준다. 자신의 마음을 고독과 상실에 허용한 것이다. 물고기가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선 물이 필요하다. 앞서 바다가 고독과 상실의 이미지로 해석되었으니 이 맥락은 <바다(상실)가 필수적인 물고기(생명체)>라고 고찰해볼 수 있다. 인간 또한 물고기와 같은 생명체이므로, 결국 우리도 상실과 고독 없이 살 수 없다.

 

 

불완전한 외로움이 완전을 만든다

 

성현이 처음 살기 시작했던 일마레. 이모님이 주신 것으로 영화에선 처음 언급한다. 성현 또한 그렇게 알고 있으며 어릴 적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그리워한다. 그러나 은주의 도움으로 얻게 된 유고집을 통해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만든 집이 바로 이 일마레였음을 알게 된다. 은주는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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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이 홀로 서있는 것처럼 보이던 일마레가 그토록 따듯하게 느껴졌던 건, 그 사랑이 담긴 곳이었기 때문이었어요. 사랑의 방식은 다르지만 사랑은 하나라고 생각해요. 늦게나마 보낸 유작집이, 성현씨가 아버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영화 <시월애> 中 은주

 

 

드넓은 공간 속 우두커니 홀로 서있던 일마레는 사실 보이지 않던 사랑이 담겨있었으며 보이지 않아도 분명한 무언가를 남겼다. 성현은 외로움으로 건축가가 되었다. 은주와의 편지를 통해 사랑과 외로움을 동시에 느끼고 물고기를 풀어 마음을 정리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은주를 그리워하고 사랑했다. 건축학과를 나왔음에도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그는 그녀를 생각하며 집을 지었고, 그제서야 비로소 건축가가 될 수 있었다.

 

영화 <시월애> 속에 담긴 바다와 물고기 등의 이미지로 사랑과 외로움을 그려보았다. 이렇게 고독의 바다 안에 잠긴 우리의 마음들은, 삶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떠오른다. 우리는 그 바다 수면 위에 떠오른 초상들을 아낌없이 그리워한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우리는 삶을 이루고 있다. 본인 스스로 그려본 영화의 결말에서는, 은주가 성현을 그리워하면서도 그에게 받은 사랑을 같은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나누어주었으면 한다. 외로움이 연료가 되어 사랑이 끝없이 순환하는, 그런 사회를 꿈꾼다.

 

 

[박정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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