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자유를 향한 나비의 끝없는 날갯짓, 영화 '빠삐용'

오늘도 우리는 흔들린다
글 입력 2023.06.1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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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명작으로 꼽히는 영화 빠삐용을 시청했다.


"탈출은 불가능한 일이다. 정글로 나가면 굶어 죽을 것이고, 

바다에 나가는 데에 성공하면 상어에 물려 죽을 것이다. 

탈출 한번은 독방에 2년 갇히게 되고, 두번째에는 독방 5년이며 

이후 악마의 섬에 평생 살게 된다"


기아나 교도소에 입성한 죄수들에게 교도소장이 알리는 주의사항이었다. 끔찍한 이야기를 평온히 시 읊듯이 말하는 장면을 보며, 등골이 서늘한 공포를 느꼈다. 공포 영화는 다르게 현실적인 공포, 기아나 교도소의 차가운 일상이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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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와 빠삐의 끝없는 자유의지와 나의 오만

몸이 약하지만 돈이 있는 드가와 힘은 세지만 돈이 없는 빠삐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함께 탈출하자는 목표를 세운다. 그러나 그 과정은 쉽지만은 않죠. 여러번의 탈출과 이어지는 실패. 매번 탈출을 시작하는 순간에는 쥐어진 손을 함부로 필 수 없는 긴장감이 느껴졌고, 잡히는 순간에는 알 수 없는 무력감에 휩싸이게 됐다.


침묵만을 고수해야 하는 독방에서의 기나긴 생활 이후에도 또다시 탈출을 감행하는 주인공들을 보며 "자유"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남이 당하는 불의에는 참지 못하는 편이나 스스로가 당하는 불의에 대해서는 굉장히 순응적인 편이다. 잘못된 것을 따지지 못하고 참고 합리화해버리는 바람에, 주위에서 답답하다며 원성을 사기도 한다. 그런 나의 수동적인 면과 대비되기 때문일까? 영화를 계속 보면서 주인공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졌다.


'왜 계속 탈출을 감행하는 걸까. 그냥 기아나 교도소에 살면 안 될까. 적어도 탈출 발각으로 인해 받게 되는 처사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


침묵의 교도소에서 뼈가 보이도록 살이 빠지게 되었는데도 다시 탈출을 하는 모습을 보자니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를 계속 보다 보니 이는 저의 오만이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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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향한 처절한 날갯짓


프랑스어로 나비를 뜻하는 '빠삐'는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존재로, 자유를 의미한다. 빠삐의 몸에도 그려져 있는 나비 문신은 자유에 대한 의지를 나타낸다. 처음엔 그저 그들의 끊없는 탈출시도가 '자유를 향한 도전'라는 것을 몰랐다. 빠삐와 드가는 무모해보이기만 하는 탈출을 반복한 것이 아니었다. 빠삐와 드가는 자신들을 억압하고 인간 이하의 짐승으로 대하는 세력에 대항해 그들로부터 자신의 '자유'를 찾기 위한 노력을 해온 것이다.

 

극적인 탈출 과정을 그리는 영화는 쉴새 없이 몰아친다. 그러면서도 자유라는 개념에 대해 끝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들의 도전이 단순한 탈출이 아닌 자유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 나 또한 빠삐와 드가에 동화되어 탈출을 제발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 뿐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한 번 더 제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드가는 결국 마지막 탈출 시도를 앞두고 악마의 섬에 남는 것을 선택한다. 그에게 자유는 지평선 너머의 고향이 아닌 악마의 섬이 되어버린 것이다. 눈 앞에서 포기를 하다니, 드가의 선택이 사실 머리로는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어렴풋이 드가의 선택이 이해된다. 개개인마다 자유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겠지. 드가는 점점 노쇠해가는 몸 상태이기에, 돌아가서 만날 연인의 부재 등 본인을 둘러싼 많은 조건으로 자유에 대한 생각이 변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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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자유를 향한 처절한 날갯짓을 보여준다. 얼마나 처절한지 주인공들을 향해 불어오는 바람들을 손으로 가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빠삐가 탈출에 성공하고 드가와 함성을 지르는 장면에는 그동안 쌓여왔던 그들의 울분과 후련함이 느껴져 울컥하기도 했다. 

    

교도소, 정글, 바다, 침묵의 독방, 악마의 섬. 나열하자니 우울하고 답이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빠삐와 드가는 보란듯이 자유를 외치고 우정을 나눈다. 흔들리는 꽃이 아름답다는 말처럼, 영화 속 그들은 안타까웠지만 아름다웠다.


감히 취준 생활을 수감 생활에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감정의 결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주어진 상황 간의 괴리감이 압박과 억압으로 느껴진다. 하루 빨리 취준 생활을 청산하고 싶다가도, 머리로 그려지지 않는 미래에 막상 지원 버튼을 누를 때 망설이게 된다. 상황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마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답답한 현실에 힘들어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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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은 빠삐처럼 무언가 억압받는 상황이 찾아온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어쩌면 날개(자유)를 접고 굳어버리는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내 경우에는 그냥 취준을 멈추고 백수로 자리잡는 것이려나. 선택지 앞에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영화 빠삐용은 이런 조언을 해준다. 시도하는 모습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


애초에 도전하지 않으면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노력하다보면 상황은 조금씩 변할 수 있다. 모두가 무모하다고 평가했지만, 빠삐와 드가는 시도를 멈추지 않아 마침내 자유를 얻어낸 것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유명한 구절도 있지 않는가. 그러니 오늘도 어김없이 흔들리고 있는 나와 당신, 조금만 힘내보자. 흔들리며 나아가려는 모든 날갯짓을 응원한다.

 

 

[이도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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