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극 속에서 그렇게 살아간다는 희망 [음악]

어두운 가사를 쓰지 않겠다는 다짐 위에 세운 삶과 음악
글 입력 2023.06.17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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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허회경’이라는 가수는 “현시대”, “한국”의 싱어송라이터이다. 그의 음악이 서는 자리가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와 동일하다. 2001년생인 내가 1998년생인 그의 음악을 듣고 시대적 차이에서, 혹은 언어적 차이에서 오는 문화적 요소를 느낄 수 없다. 오히려 같은 시대적 기반 위에 세워진 “삶의 뚜렷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그에게서는 어떠한 “차이”로부터 오는 감동이 아닌, 일상적이고 어두운 삶의 고백으로부터 오는 음악적 “공감”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요즘 한국 인디 가수의 음악을 듣는 이유도 이와 같다. 그중에서 허회경은 우리들 삶의 어려움을 적절히 적어내는 소중한 가수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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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소개할 앨범은 두 번째 싱글 앨범인 <김철수 씨 이야기>이다. 여기서 김철수 씨는 우리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곡은 너와 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너와 나’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한 허회경의 시선은 “떠돌이 강아지”부터 “세상”으로까지 다분히 옮겨진다. 그 과정에서 특별함이 평범함이 되는 경험을 고백하기도 한다. 그 평범함은 기쁨, 질투, 슬픔과 같은 일상적인 감정을 종합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종합은 “우두커니 서서 세상을 가만히 내려다” 볼 수 있는 다소 일상적이지 않은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오로지 “비극”의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관점의 도약은 오로지 “비극”의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가 이미 비극의 정점을 찍은 상태라는 것이다. 모든 삶의 확고부동은 비극의 순간에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삶의 확신과 끈질긴 절망들로 우리는 다시 삶을 명확히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우두커니 서서 비극을 내려다보며 “슬퍼라”라고 노래하게 된 것이다.
 
 
허회경 - 김철수 씨 이야기
 
사실 너도 똑같더라고
내 기쁨은 늘 질투가 되고
슬픔은 항상 약점이 돼
사실 너도 다를 게 없더라고
생각해 보면 난 친구보다
떠돌이 강아지를 더 사랑해
특별하다고 한 너는 사실 똑같더라고
특별함이 하나 둘 모이면
평범함이 되고
우두커니 서서 세상을 가만히 내려다보면
비극은 언제나 발 뻗고 잘 때쯤 찾아온단다
아아아아
슬퍼라
아아아아
사실 너도 똑같더라고
내 사랑은 늘 재앙이 되고
재앙은 항상 사랑이 돼
널 사랑할 용기는 아무리 찾아도 없더라고
겁쟁이는 작은 행복마저
두려운 법이라고
우두커니 서서 세상을 가만히 내려다보면
비극은 언제나 입꼬리를 올릴 때 찾아온단다
아아아아
슬퍼라
아아아아
내방의 벽은 늘 젖어있어서 기댈 수 없고
나의 이웃은 그저 운 좋은 멍청이들뿐이야
나의 바다는 사막으로 변해가기만 하고
나는 앞으로 걸어가도 뒤로 넘어지네
아아아아
슬퍼라
아아아아
슬퍼라
 
 
허회경의 음악에서 또 주목할 부분은 삶에 대한 양가적 감상에 있다. 비극과 환희를 동시에 볼 줄 아는 것이 그의 음악이 탁월한 이유이다. 결국 삶의 일상적 환희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기는 비극의 순간의 한가운데이다.

그의 바다가 “사막으로 변해가기만” 하는 것을 깨닫는 순간은 비극의 시기에 있다. 그에게 바다가 있었다는 사실은 사막이 오기에 알 수 있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사랑의 감정은 비극을 맛보게 하는 최고의 수단이다. “내 사랑은 늘 재앙이 되고 재앙은 항상 사랑이 돼”라는 대목에서는 그녀가 찬란한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동시에 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묘사하는 순간 역시 재앙의 한가운데일 것이다. 그 순간에는 “앞으로 걸어가도 뒤로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우두커니 서서 모든 것을 본 것이다. 비극의 순간에 확연히 보이는 삶의 절망과 사랑을 본 것이다.

첫 번째 싱글 앨범인 <아무것도 상관없어>에서는 ‘너에 대한 사랑’의 아쉬움을 토해내며 이제는 “아무것도 상관없어”라고 노래한다. 그는 동시에 “엄마”와 “아빠”의 말을 빌려 그 사실을 체념하고 있을 뿐이다. 이와 달리 <김철수 씨 이야기>에서는 스스로 삶 전체를 보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김철수 씨”로 대표되는 우리 모두의 삶을 위로하려는 점에서 그가 성장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극을 본 사람에게는 삶의 환희만이 놓여 있는가? 이에 대한 답으로 허회경은 세 번째 앨범인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선보인다. 일상의 반복에서 비극을 확인한 그는 결국 “정답을 찾아 헤메이다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만이 자신의 삶인 것을 발견할 뿐이다. 이런 삶이 “너무 서러울” 때도 있고, “너무 무서울” 때도 있다. 그럼에도 그가 살아가는 법은 결국 “한숨 같은 것을 내뱉고, 사람들을 찾아 꼭 안고선 사랑 같은 말을 다시 내뱉”는 것이다. 삶의 절망이 쏟아질 때, 우리는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안다. 그 비극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해주고, 그 그 양극점을 찾아 삶의 환희를 엿보기도 한다. 이러한 절망과 극복의 일상이 반복되는 것에서 또 다른 비극을 맞이할 수 있지만, 허회경은 단지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고 우리를 위로한다. 삶에 있어서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우리에게 그저 그렇게 살아가며 사랑을 쫓고 사랑하라고 이야기한다.
 
 
허회경 - 그렇게 살아가는 것
 
가시 같은 말을 내뱉고
날씨 같은 인생을 탓하고
또 사랑 같은 말을 다시 내뱉는 것
사랑 같은 말은 내뱉고
작은 일에 웃음 지어놓고선
또 상처 같은 말을 입에 담는 것
매일 이렇게 살아가는 게
가끔은 너무 서러워 나
익숙한 듯이 살아가는 게
가끔은 너무 무서워 나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저
조용히 생각에 잠겨
정답을 찾아 헤메이다가
그렇게 눈을 감는 것
그렇게 잠에 드는 것
그렇게 잠에 드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것
아아아 아 아아아 아
상처 같은 말을 내뱉고
예쁜 말을 찾아 헤매고선
한숨 같은 것을 깊게 내뱉는 것
쓰러지듯이 침대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고서
다 괜찮다고 되뇌이다가
그렇게 잠에 드는 것
그렇게 꿈을 꾸는 것
그렇게 꿈을 꾸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 것
우우우 우 우우우 우
한숨 같은 것을 내뱉고
사람들은 찾아 꼭 안고선
사랑 같은 말을 다시 내뱉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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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어두운 가사를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 가수, 그 다짐조차 위로가 되는 음악이 허회경이다. 우리는 삶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안다. 선택지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 “그렇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가수가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이근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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