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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그에이지, 처음 들었을 때부터 상당히 독특하다고 느꼈다. 초연, 재연 때도 관람을 고민 했었지만 매번 예매 사이트에 이름을 칠 때 헷갈려서 공연 명을 몇 번씩 확인해야 했을 정도로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조합의 독특한 공연 명은 도저히 뒤이어 붙은 부제의 ‘조선’과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삼연으로 돌아온 스웨그에이지를 이번 문화 초대를 통해 접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그 의미와 무드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여태껏 내가 생각해온 사극 배경의 공연과 조선의 이미지가 얼마나 고리타분했던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공연장을 방문하기 전 내가 ‘으레 시대극이란 이렇겠지’라고 생각해왔던 것들은 공연을 보는 내내 빗나갔다.


그만큼 ‘스웨그에지:외쳐, 조선!’은 새로운 배경의 조선에서 트렌디한 안무와 넘버를 통해 흥미로운 사건 전개를 펼쳐 보이면서도 시대를 넘어 전달될 수 있는 메시지를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신선하면서도 어딘가 익숙해 낯설지 않고, 긴 러닝타임 동안 지루하지 않게 즐길 수 있던 공연이 참 오랜만이라 객석을 나서면서도 내심 아쉬웠다.

 

 

 

시조가 대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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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의 배경은 ‘시조의 나라 조선’이다. 물론 시조는 고려후기에서 조선전기에 걸친 기간 동안 나라에 큰 영향을 미쳐온 요소이긴 하다만, 공연 속 설정처럼 시조 대판서라는 직책이 있거나, 백성들이 시조에 울고 웃을 정도로 큰 존재감이 있던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공연은 허구를 가미한 새로운 조선을 배경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시조’란 참 독특하다. 문학의 한 장르이면서 운율을 가진 음악이기도 하다. 시와 가요의 그 어디쯤에 걸쳐 있는 듯한 이 독특한 장르는 간결한 형식으로 감정과 메시지를 담을 수 있으면서도 기억에 남고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형태로 가공된다. 그렇기에 공연은 이 ‘시조’를 수단으로 하여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끊임없이 전달하려 한다. 


백성 모두의 뜻을 잘 살피기 위해 마련되었던 시조 대판서의 자리가 권력과 강한 힘에 눈이 먼 홍국의 손에 들어가면서, 그는 나라 전체에 시조 금지령을 내린다. 이는 백성들에게 단순히 시조를 부르지 못하게 되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소리 내어 항의하지 못하고, 더 이상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표출하지 못하게 되는, 말그대로 표현권을 빼앗기는 일인 것이다. 


이런 부조리한 세상을 다시 한번 시조를 통해 바꾸고자 하는 이들이 공연의 핵심 인물들이 모인 ‘골빈당’이다. 그 중에서도 홍국에 의해 쫓겨난 이전 시조대판서의 아들인 ‘단’은 어린시절부터 고아로 크며 누구보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일의 설움에 대해 피부로 느낀 인물이다. 그런 ‘단’에게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운율의 시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었다는 것도 어찌 보면 운명 같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탈을 쓴 채 양반 놀음을 하는 골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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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가장 관객들의 흥을 돋웠던 장면은 다름 아닌 골빈당이 더 이상 몰래 시조 하는 것을 두려워 하게된 백성들을 위해 고안해온 새로운 놀음인 ‘양반 놀음’ 장면일 것이다.

 

사실 양반 놀음도 본질적으로 보았을 때 시조와 다를 바 없다. 양반들만의 전유물처럼 되물림되며 그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유지되어 오는 것들이라는 것에서 시조와 양반놀음은 같은 궤도 안에 있다.


 

모두가 손가락질한다 해도 고개를 높이 들어

모두가 헛구역질한다 해도 얼굴을 들이밀어

센 척은 기본 허리는 안 굽혀

누리는 것만큼 책임은 안 지네

오에오 (오에오?) 오에오 (오에오?)

후레자식 그게 나 오늘도 양반걸음

 

 

넘버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듯, 사실 양반이라 하는 것도 별 거 없다. 센 척에 허리 굽히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것, 그게 양반이라면 사실 누구나 마음 대로 양반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이 사는 세상은 쉽게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양반이 무슨 엄청난 자격과 태생을 갖추어야 가능한 지위인 것마냥 포장하며 그 잣대로 평민들을 억압하는 것이다. 


골빈당이 이토록 목소리를 내는 목적은 어쩌면 간단하다. 모두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세상, 함께 누리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 어떻게 보면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일이지만 부정 부패가 만연한 세상에서 이는 간절한 바램이 되어버렸다. 소수의 편의와 국가 권력을 위해 다수의 백성이 희생해야하는 이 기이한 형태의 세상에서는 이를 바꾸고자 하는 목소리들이 필요하다. 


결국 나라를 이루는 큰 지대는 국민이다. 국가의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홍국도 모르지 않았기에 그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목소리를 빼앗아 자기 마음대로 다루기 위해 시조를 금했을 것이다. 골빈당이 움직여야 하는 것은 백성의 결집된 마음임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영리하고 흥미로운 방법을 통해 백성들이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게 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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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보는 동안 등장인물들의 세상이 그저 동떨어진 상상의 영역이라는 생각보다는 우리 사회와 어쩐지 닮은 구석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현대 사회는 눈에 보이는 신분이 있는 극단적 계급 사회는 아니지만, 우리 모두 숨겨진 위계 질서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위계로 인해 누군가는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지만, 그 대척점에 선 사람들은 조선의 백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곤 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자 하는 노력은 골빈당만의 몫은 아닐 것 이다. 우리 사회 속에서도 당연하지 않은 일들이 자행되고 있기에 우리는 언제나 사회 속 나 자신의 좌표를 돌아보고 자신의 감정과 상황 표출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시조가 되었든 양반 놀음이 되었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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