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고한 향이 이 시대에 선사하는 건 – 시카고 [공연]

시대들과 자라나는 시카고
글 입력 2023.06.14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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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문화에 큰 관심이 없는 이들도 그 이름만큼은 들어봤을 뮤지컬 <시카고>가 25년의 시간을 물들이고 있다. 유행이 시시때때로 바뀌는 속도와 다양성 범람의 시대에 오래도록 꾸준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수하다. 여러 시대의 냄새가 배어있는 작품은 그 자체로 변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럼에도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새삼스럽게 일깨워주는 듯하다. 시카고의 고고한 향은 이 시대에 어떤 멈춤의 순간을 선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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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하게 짜인 각본



“정말 촘촘히 짜인 연극이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내뱉은 말이다. 어떤 형태의 극이든 몰입에 있어 강조하는 건 그것이 연기가 아닌 현실이라고 믿게 하는 데 있는 듯하다. 시카고의 매력은 오히려 이것이 작은 움직임마저 철저하게 계산된 촘촘한 극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데서 오는 색다른 쾌감을 전달하는 데 있다고 봤다.


예를 들어 배우들은 무대 바깥이 아닌 양옆 의자에 앉아 대기하거나 박수를 치며 이것이 연극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무대 위 요소들이 적재적소에 각자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음을 인식할 때, <시카고>라는 총체를 이루고 있는 세세한 요소들이 눈에 들어온다.


눈썹을 올리는 타이밍, 목소리의 고저와 억양, 발의 보폭과 스텝의 수를 집중력 있지만 여유롭게 수행하는 배우들. 그들과 함께 눈에 띄는 건 무대 절반을 넘게 차지하는 구조물 속 밴드 세션이다. 밴드 세션을 전면에 앞세움으로써 그들이 단순히 배우의 퍼포먼스를 뒷받침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들의 감정과 동작에 함께 하거나 오히려 이끌기도 하는 가시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그들이 극에 참여하는 모습도 웃음을 유발하는 중요한 요소다.


배우들의 말을 번역해서 스크린에 띄우는 작업도 극의 재미를 한껏 책임진다. 상황에 어울리는 글씨체를 활용하거나 배우들의 목소리에 맞춰 글씨 크기를 조절하는 등 극의 텐션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감초 역할을 한다. 


하나의 극이 수많은 능숙한 협업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관객의 감각 역시 다방면으로 살아나게 된다. <시카고>는 훌륭한 연기를 선보이면서도 이것이 철저히 계산된 상황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아이러니를 수행하면서 다양성과 그 연결성의 필요를 유쾌하게 전달한다.

 

 

 

향락이 범람하는 사회가 말해주는 것



<시카고>는 범죄와 향락이 넘치는 사회와 그 속에서 범죄자가 되는 개인들을 다룬다. 이때 범죄가 그에 얽힌 사회의 병리적인 측면을 드러내기보다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로 전락해버리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바로 신문, 대중매체이다. 


안타깝게도 뉴미디어가 발달한 현대에 이러한 경향은 개선되기보단 더 심화하였다고 볼 수 있기에 <시카고>를 바라보는 관객은 아마 일종의 기시감을 느낄 것이다. 범죄에 대한 깊은 분석 대신 이를 하나의 흥밋거리로써 자극적으로 퍼 나르기에 급급한 언론의 모습을 보며 여전히 지속되는 관행에 기이함과 피로함을 느끼게 된다. 범죄마저도 하나의 ‘연극’으로써 작동하도록 동조하는데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범죄마저도 향락으로 전락하는 시대상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지극히 평범하나 그것이 과도하게 선망되는 것에는 의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향락의 필요성은 척박한 현실에서 기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삶에서 적절한 빈도와 양의 쾌락을 얻을 수 없을 때 우리는 자연히 인위적이고 짙은 쾌락을 찾게 된다. 현재 유행처럼 돌고 있는 ‘도파민 중독’이라는 말이 조금은 위험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무엇이 쾌락이 되고 쾌락이 되어선 안 되는가. 왜 우리는 일부러 자극적인 쾌락을 찾아야만 하는가. 점차 공동의 기반이 무너지고 파편화되는 사회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이 될 것이다. 

 

 

 

욕망과 여성들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욕망과 그 주체인 다채로운 여성들이다. 이들은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은 범죄자이고, 그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 범죄는 그들의 욕망이 과잉되고 부적절하게 발현된 결과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욕망 날것의 모습은 충분히 공감할 만한 것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나를 욕보이게 한 대상을 미워하고, 증오하고 벌주고 싶은 마음. 꿈을 실현하고 싶은 마음.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 커리어를 만들어나가고 싶은 마음. 이득을 취하려는 마음. 그것이 발현되는 결과와는 별개로 그 욕망은 우리의 삶과 밀접히 맞닿아있다. 


욕망을 적절히 발현해야 하는 것은 주체의 몫이다. 하지만 그 발현의 기회가 적절히 제공되고 있는 것인지는 더 첨예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시카고>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역사와 욕망은 비슷한 듯 다른 갈래로 뻗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입는 옷은 ‘여성성’의 섹슈얼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전부 동일하다. 그들이 욕망을 발현할 기회 역시 대중의 유명세를 타는 것으로 제한되는 보인다. 


다양한 욕망이 단일하게 해석되고 단일하게 분출되는 환경이 유지될 때 그것이 초래할 수 있는 결과는 무엇이 있는가. 우리가 다양한 여성과 다양한 욕망을 좀 더 세심하게 들여다본다면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는가. 25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가 축소하고 넓혀온 욕망과 다양성의 세계는 무엇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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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는 앞서 말했듯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여러 감각을 자극한다. 특히 특색 있는 인물을 보는 맛도 뛰어나다. ‘여성’ 캐릭터로 등장한 인물이 극의 마지막에서 가발과 옷을 벗어 ‘여성성’을 집어던지는 모습은 시카고 속 다양한 캐릭터의 매력에 정점을 찍은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시카고>는 고정된 극이 아닌 시대와 함께 자라나는 극처럼 보인다. <시카고>와 함께 그것이 머무는 세계 또한 자라났을 것이다. 각자의, 그러면서도 함께의 성장을 지켜보는 관객 역시도 자라났을 것이다. 이런 역동성이 남기는 향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시카고>를 통해 다채로워질 시대의 향기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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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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