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너만의 변호사가 되어줄게 [문화 전반]

내가 비평을 쓰는 이유
글 입력 2023.06.14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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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줏대’ 지킴이, 비평


 

나는 감상을 적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겪은 사건, 내가 본 풍경, 내가 들은 음악, 내가 먹은 음식. 나를 스치듯 이라도 지나간 것들이라면 어떻게든 ‘이건 이랬다!’라는 마음을 적어두고 싶어진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도,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던 것들도 어찌어찌 감상을 적어낸다. 내 감상의 줏대를 잃지 않기 위해서다.

 

요즈음의 사회에서 자신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가 ‘난 이게 싫어!’라고 외치는 것을 따라 우르르 그 대상을 싫어하거나, ‘난 이게 좋아!’라고 자랑하는 것을 따라 와글와글 자기도 그게 좋다며 요란을 떠는 일이 너무 쉽기 때문이다. 타인의 토막 난 감상을 보고서 그게 나의 감상인 양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다. 어떻게든 줏대 있게 살아가려는 나도 사실 이러한 군중심리에 정말 많이 휘청인다.

 

흔들거리는 내 줏대를 다잡기 위해 나는 감상 중 몇 개를 골라 비평을 쓴다. 단순히 ‘좋았다,’ ‘별로였다’가 아니라 왜 좋았는지, 왜 별로였는지를 곱씹어 생각한다. 비평을 쓰는 것은 그 작품뿐만이 아니라 나를 알아가는 행위이기에 좋다. 비평을 쓰는 시간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취향은 무엇이며 그걸 어떻게 표출하는지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다. 바쁜 일상에서 비평을 꾸준히 쓰기는 쉽지 않지만, 요즘은 제법 꾸준히 해나가고 있다.

 

 

 

불타올라 토해내는 마음으로


 

새내기 시절에 들었던 대학 글쓰기 강의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지만, 지금까지 기억하는 교수님의 말은 딱 한 문장이다(죄송해요, 교수님!). “비평은 무언갈 변호하고 싶을 때 쓰는 글입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나는 비평이 좋았다. 내가 누군가를, 무언가를 변호하고 있다는 감각이 좋았다. 좋아하는 작품의 비평을 쓸 때, 어딘가 비장한 기분으로 “오케이, 오늘 내가 이 재판 이겨준다!”라고 중얼거리던 작은 의식은 어느새 내 습관이 되었다. 일상 속의 짧은 직업 체험이랄까?

 

물론 비평을 쓰는 변호사는 진짜 변호사가 아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감정’의 유무이다. 진짜 변호사에게 법정에서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이지만, 비평 변호사에게는 감정이야말로 모든 일의 원료이다. 불타오르듯 차오르는 마음으로 비평의 대상에게 빠져들지 않는다면 결코 훌륭한 변호를 해낼 수 없다. 내가 쓴 비평을 돌아보며 느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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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뜨겁지 않은 마음


 

사람들이 너무 바쁜 탓일까? 요새는 전문 변호사가 아닌 사람들의 비평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감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아마추어 변호사로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평이 줄어든다는 건 슬픈 일이다. 사람들이 무언가에 빠지는, 사랑에 불타오르는 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더 이상 감싸주고 싶지 않을 때, 우리는 아주 삭막해질 것이다.

 

사실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은 아니다. 우리는 이제 자신을 탐구하고 감상을 파고들기엔 너무 바쁘다. 당장 대학생인 동기들만 봐도, 온갖 대외활동 기록을 쌓고 공모전에 나가고 자격증을 따고 교환학생을 떠나고 고시 준비를 하고…. 모든 것에 지쳐 자아 탐색을 하려고 하면 다들 ‘너무 늦었다’라고 말한다. 이제는 취업 준비를 해서 사회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의 일원이 되는 그 멋진 과정에 나와 내 생각을 돌아보는 시간은 없다. 나를 포장하기 바쁜 와중에 남을 변호할 겨를은 없다. 쉴 틈 없이 움직이는 우리에게 여운을 즐길 시간은 사치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나도 복학한 후에 비평 변호사직을 내려놓게 될지도 모르지.

 

 

 

그런데도 나는, 우리는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영화를 본다. 음악을 듣는다. 드라마를 본다. 춤을 춘다. 길거리 공연을 구경하고, 가끔은 지나치다 마주친 나무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무언갈 느낀다.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축복이나, 내 감정이 내 감정이 아니게 되는 순간 저주가 된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무언갈 느끼고 곱씹는다. 정신없이 움직이는 와중에도 비평을 쓰려 애쓴다. 내가 쓴 글을 짤막하게 공유하며 친구들에게 내가 이런 사람임을 보여준다. 블로그를 권하고, 글을 쓰면 남는 기억과 감정에 관해 말한다. 실직 위기에 처했더라도 나는 아마추어 비평 변호사니까, 언제든지 루피가 되어 “너, 내 동료가 돼라!”를 외치며 본분을 다한다.

 

 

 

너만의 변호사가 되어줄게


 

언젠가 당신에게도 찾아올 순간을 묘사해보겠다. 어쩌면 이미 만났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무언가’를 본다. 즉각적인 감정을 느낀다. 감상의 행위가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혹은 당신이 잠들기 직전에 어떠한 순간을 강렬히 기억한다. 짜르르 느낌이 온다. 급하게 핸드폰을 켜 몇 자의 감상을 적어본다. 문득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당신은 그 ‘무언가’를 검색한다. 이러저러한 감상평 사이로 나와 아주 다른, 혹은 아주 비슷한 감상을 마주친다. ‘아 그게 아닌데! /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머릿속 어딘가에서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그리고 당신은 책상에 앉는다. 펜을 잡거나, 키보드에 손을 올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너만의 변호사가 되어줄게!

  

동료는 언제나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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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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