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른이지만 어른은 아닌 [음악]

글 입력 2023.06.04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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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는 이미 한국 대중음악계의 클래식으로 자리잡은 노래이다. 서른이라는 나이를 맞이할 무렵 찾아오는 삶에 대한 고뇌와 번민을 훌륭히 녹여낸 해당 곡은 제목 그대로 '서른 즈음에' 있는 수많은 청춘들에게 따뜻한 공감과 위로를 선사하며 오랜 세월 동안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서른 즈음에'의 가사에 이전처럼 깊이 공감하지 못하는 서른 즈음의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모양이다. 하기야 '서른 즈음에'가 처음 발표된 시기가 1994년이니,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현시점에서 '서른'이라는 나이가 가지는 위상이 과거와 동일하리라 여기는 것도 다소간의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 시대의 뮤지션들은 과연 서른이라는 나이를 어떤 식으로 묘사하고 있을까?

 

 

 

강아지 - 검정치마


 

 

 

'시간은 29에서 정지할 거야'라고 친구들이 그랬어

오 나도 알고 있지만 내가 19살 때도 난 20살이 되고 싶진 않았어

모두 다 무언가에 떠밀려 어른인 척하기에 바쁜데

나는 개 나이로 3살 반이야 모르고 싶은 것이 더 많아

 

 

열아홉에서 스물, 스물아홉에서 서른. 나이의 앞자리가 바뀐다는 것이 그에게는 썩 유쾌한 일처럼 다가오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확실히 10대보다는 20대가, 20대보다는 30대가 신경 써야만 하는 일들도 많아지고, 주변의 시선에 더욱 더 얽매일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은 비교적 자명한 사실이다.

 

어쩌면 그는 서른이라는 나이를 '무언가에 떠밀려 어른인 척'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나이의 마지노선 즈음으로 인식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답지 않은 어른 행세로부터 멀리 도망가고 싶었던 그가 정말로 시간이 스물아홉에서 정지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곡을 썼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볼 뿐이다. 너무 철없는 생각 아니냐고? 뭐 어때, 개 나이로 겨우 3살 반인데.

 

 

 

아홉수 - 배치기


 

 

 

생각은 열여섯 살에 멈춰 있는데 주위 시선은 장가 언제 갈 거냬

끝자락으로 와버린 내 청춘의 시효

아홉수라서 안 풀리는 게 아니요

더 이상 붙잡고 노력해 봤자 가망 없다는 걸 알 수 있는 나잇살이 든 거지

 

 

여기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어느덧 서른이라는 나이가 코앞까지 다가온 20대의 아홉수를 맞이했건만, 생각은 여전히 열여섯 살에 멈춰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걸 보니 말이다. 청춘의 시효가 끝자락으로 다다랐다는 가사를 통해 미루어 보건대, 그에게는 '30'이라는 숫자가 청춘과 그 너머를 가르는 경계선처럼 여겨지고 있는 듯하다.

 

인생 전체를 기준으로 삼았을 때는 30대 역시 한없이 젊은 시절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이전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마냥 청춘을 불태우기에는 다소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나이대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그의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이야기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더 이상 붙잡고 노력해 봤자 가망 없다는 걸 알 수 있는 나잇살'이 들었다는 그의 푸념이 유독 서글프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거짓말이네 - 유승우


 

 

 

전부 거짓말이네

서른부터 시작이라며

시작은커녕 준비도 못 했는데

모두가 나에게 어른이라 부르네

 

 

결국 현 시대의 청춘이 부르짖는 서른은 대부분 이 노래의 가사로 대변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은 아직 어린 아이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상황 속에서, 어른이라는 대외적 취급으로부터 더 이상 벗어날 수 없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다가오자, 이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노래를 통해 이러한 청춘의 불안한 심리를 대변하고 있는 것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역시 마찬가지일 터인데, 어째서 현 시대의 청춘들은 '서른 즈음에'의 가사에 쉽사리 공감하지 못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저 표현 방식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진중하고 서정적인 분위기의 가사도 좋지만, 감상에 쉬이 빠질 여유조차 없는 근래 청춘들의 공감을 사기에는 보다 직접적인 형태로 나이에 대한 넋두리를 늘어놓는 편이 훨씬 용이하게 작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전부 거짓말이네, 서른부터 시작이라며'라는 한없이 직설적이고 어리숙한 가사에 공감을 표하지 못하는 청춘도 상당히 드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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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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