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의 단잠을 비는 밤 [사람]

글 입력 2023.05.2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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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 누구라 생각하는지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잠 못 자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누군가를 고민에 빠지게 해서,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 누군가에게 많은 일을 줘서 등으로 사람의 숙면을 방해하는 것만큼 나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악몽수집가>라는 책을 읽었다. 귀여우면서 다소 요술적인 분위기의 표지가 눈에 띄었고, 제목이 마음에 들어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악몽을 수집하는 어느 여성과 악몽 사진을 찍는 환희의 이야기다. 그림책처럼 매 페이지 그림이 있고 글이 적어 단숨에 읽었다. 수집가가 여러 사람들의 악몽을 다듬고 수집한다는 내용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한편, 결말은 다소 아쉽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기대하고 읽었던 것에 비해 아쉬움이 남기는 했으나 이 책을 읽고 나서 우리의 ‘잠’이라는 것에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나름대로 잘 자고 있지만, 나도 불면을 겪었던 적이 있다. 열여섯 살 때였을 것이다. 당시에 나는 학교에서 큰 오해를 산 일이 하나 있었다. 누군가가 나의 이름으로 된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어, 나인 척 신분을 도용하여 한 친구에게 욕설 메시지를 보낸 일이었다. 나는 그 일을 교무실로 불려가 학년 주임 선생님을 통해 듣고 나서야 알았다.

 

욕설 메시지를 받은 아이와 나는 모르는 사이였기에, 그 친구는 그 친구대로 당황스러웠고, 나는 나대로 황당한 상황이었다. 그 이야기가 학교에 퍼진 날, 우리 학년 많은 아이들이 반까지 찾아와 나를 보며 손가락질했다. 어차피 내가 아니니 무시하고 넘길 수 있을 법도 하지만, 열여섯의 나는 그렇게 의연하지 못했다. 꾹꾹 참다가 교무실로 가서 나는 정말 그런 적이 없다고 엉엉 울었다.

 

그 일 때문에 학교 전담 경찰관분이 오시기도 했다. 그분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런 일은 굉장히 많이 일어나. 게다가 페이스북이 외국 기업이라서 우리가 어떻게 수사를 할 수가 없어. 한다고 해도 범인을 밝혀내는 데 몇 년이 걸려. 그냥 잘 넘겨보자.”

 

그때는 그 말이 그렇게 절망적일 수 없었다. 어떻게 그냥 넘길 수 있어? 내가 당한 모욕은? 내 뒤로 나를 향해 들려 오는 비난은? 나를 알지 못하는 애까지 나를 찾아와 욕하는 걸 그저 견뎌야 하는 건가? 억울하고 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범인을 애초에 잡아 줄 생각도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그때 짚이는 아이가 하나 있으니, 그 아이의 휴대폰 확인을 한 번만 해 보면 안 되냐고 애원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아이에게 상처가 될 수 있으니 의심하지 말라고 했다. 이성적으로 보면 선생님 말씀이 맞을 텐데, 사실 지금 생각해도 상당히 우습다. 그러면 내가 받은 상처는요….

 

선생님들도 나름 나를 위로해주려고 했지만 크게 효과는 없었다. 실질적인 도움 하나 주지 않는 상황에서 하는 말씀들은 그저 내뱉고 보는 이야기들에 가까웠다. 또 여전히 그 일을 내가 벌였다고 믿는 애들이 있었고, 그들은 나를 마주칠 때마다 수군거리거나 나를 일부러 치고 지나가는 등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일 이래로 꽤나 오래 쉽게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새벽 넘어서 겨우 잠들어도 악몽 때문에 깨거나 잠든 지 얼마 안 되어 눈이 떠졌다. 때로는 많은 아이들이 반으로 와 동물원 원숭이 보듯 나를 바라보던 현장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 사건은 수사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끝나 버렸는데도, 나는 대략 반년의 밤을 뒤척였다. 밤이 오는 게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그 반년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과거의 기억은 미화된다고 하던데, 그 기억만큼은 미화되지 않고 버겁게 다가올 때가 있다.


예전부터 그랬고, 지금도 나는 우리 인간에게 잠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잠은 에너지를 회복시켜 주고, 우리의 기억을 정리해주는 등의 기능을 하는 한편 잠을 못 자면 수명이 줄어든다고 하지 않는가.


<악몽수집가>에서 악몽을 꾸며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누구는 좋아하는 일을 버려야 했던 일 때문에, 또 누구는 가정폭력의 기억 때문에 등으로 말이다. 각 인물들을 아프게 한 이야기들 중 어느 것은 크게 마음에 와닿기도 했다.

 

사람들은 때때로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의 단잠을 괴롭히는 것 같다. 일적으로 보면 잠을 줄여가며 일하게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마음의 병과 고통을 안겨 주는 등으로 말이다. 나만 해도 잠을 줄여 가며 일하라는 말을 한 달에 한 번은 꼭 듣고 있다. 학생인 나도 이런데, 바쁘게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정작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잘 자고 있다는 게 비통할 따름이다.


지금도 어떠한 이유로 잠 못 이루고 있는 이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ASMR이 급성장했던 것도 잘 자고 싶은 사람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ASMR의 유행이 좋게 보이는 한편, 약간은 씁쓸하기도 하다. 그런 것이 없어도 잘 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것이다.

 

본인의 잠이 중요하듯 타인의 잠 또한 중요하게 생각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의 마음이 무겁지 않도록, 그가 곤히 잘 수 있도록 말이다.

 

누군가의 잠을 방해하는 것보다 나쁜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누군가의 단잠을 빌어 주는 것보다 예쁜 마음은 없는 것 같다. 오늘은 누군가에게 잘 자라는 말을 다정하게 건네보면 어떨까. '나는 너의 오늘 밤이 평안했으면 좋겠어. 너의 평온한 잠을 빌어줄게.'라는 의미로 말이다. 나도 모든 사람들의 걱정 없는 밤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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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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