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공간에 감정을 담으면 [미술/전시]

글 입력 2023.05.2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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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알라르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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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수많은 장면 가운데 셔터를 누르는 그 순간은 언제인가요?”

 

A. “빛 외에 다른 규칙은 전혀 없습니다. 그 빛이 자연광일 수도 있고, 제가 설치한 조명일 수도 있지만 결국 빛을 따라갑니다. 모든 촬영 과정은 직관의 연속입니다. 제가 호기심을 느끼고 영감을 주는지가 중요한데요.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인 이끌림과 충동에 의해 포착하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사진을 찍는 행위가 늘 명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누군가의 사적인 공간을 바라보고 담아내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사람을 마주하게 되는 곳이기에 그만큼 그 사람의 내밀한 부분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프랑수아 알라르는 그런 사적인 공간을 오묘하게 담아내는 사진작가이다. 제3자의 눈으로 공간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처럼 주관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 두 기준 사이에서 프랑수아 알라르는 공간의 의미를 해치지 않고 사진으로 보여준다.

 

 

 

알버트 프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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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 프레이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팜 스프링스를 중심으로 한 모더니즘 건축 스타일을 확립한 건축가이다. 그중에서도 <프레이 하우스 II>가 가장 잘 알려져 있는데, 오늘날 ‘사막 모더니즘’이라고 불리는 건축 스타일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돌로 이루어진 특유의 지형과 태양의 움직임, 부피감을 신중하게 계산해 지었는데, 바위 하나 건드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디자인을 끌어안았다는 점이 놀랍게 여겨진다고 한다.

 

프랑수아 알라르는 이러한 건축물의 분위기를 사진에 그대로 옮겨 담는다. 건축물인 동시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특징을 살리기 위해 <프레이 하우스 II>를 둘러싸고 있는 지형들을 강조하고, <프레이 하우스 II> 내부에서 건축에 대한 고뇌를 이어가고 있는 알버트 프레이의 작업 현장도 보여준다.

 

이렇게 건축물의 화려한 외면과 그 안에 숨겨진 예술가의 노력이라는 이면을 보여주며 장소의 대비감을 표현한다는 것이 프랑수아 알라르 사진의 특징점이다. 단순히 하나의 의미만을 창출하지 않는다는 것, 사진에 장소를 담기보다 장소가 지니고 있는 것들을 담는다는 것이 프랑수아 알라르의 사진을 볼 때 주목해야할 것들이다.

 

 

 

아를에서의 5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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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봄, 프랑수아 알라르는 18세 이후 처음으로 아를의 집에서 장기간 머물게 된다. 언제나 여행하며 타인의 집을 찍던 그에게는 매우 낯설고 어색한 일이었다.”

 

타인의 공간을 바라보던 관점으로 자신의 공간을 바라보는 것은 어떤 마음일까. 객관적인 관점에서 공간의 주관성을 담아왔던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미 장소에 대한 감정이 형성된 상태이고, 이를 표현하는 관점에서는 자연스레 그 감정이 표출될 것이다. 또한, 담고 싶지 않은 것은 담지 않을 수 있다는 선택의 여지가 자유롭다는 것이 어쩌면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수아 알라르는 오히려 자신의 공간을 보여주는 것에 가감이 없었고 오히려 더 솔직한 사진으로 관람객들에게 다가왔다. 언제나 여행했던 그에게 아를의 집이 따뜻한 안식처로 인식되었다는 것, 그리고 공간에 남아있는 애착과 익숙함이 사진에 드러난다. 공간에 묻어있는 것뿐만 아니라 현재 자신의 감정까지 반영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이 알라르의 능력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라 쿠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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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배우 모니카 비티도는 사랑에 빠져 그들만의 안식처인 ‘쿠폴라’를 사르테나 섬에 설계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이 결별하며 ‘쿠폴라’는 버려지게 되고 사랑의 속삭임으로 가득 찼던 공간은 풍화된 콘크리트와 부식된 창문, 먼지 쌓인 가구들만이 가득하다.

 

알라르는 이렇게 사랑의 붕괴를 통해 남겨진 공간의 외로움을 포착한다. 알라르는 단순히 끝을 맞이하게 된 사랑에만 집중하지 않고, 그 사랑의 과정 또한 함께 담아낸다. 어쩌면 두 사람이 함께 앉아 책을 읽었을 공간, 함께 뜨는 해와 지는 해를 바라봤을 테라스와 그곳에서 바라보는 전망, 신비한 사랑의 힘과 닮아있는 숨은 공간까지.

 

지금 이곳의 사랑은 진행 중이지 않지만, 그 안을 가득 채웠던 사랑은 완전히 떠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을 부여한다. 이 때문에 프랑수아 알라르가 담은 ‘쿠폴라’는 더 아련한 공간이다.

 

 

 

프랑수아 알라르가 전시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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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피크닉을 찾을 관람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A.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으로의 초대’라는 메시지입니다. 그 여행은 바깥세상이 될 수도, 내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천박한 문화가 판치는 요즘 세상에는 영혼이 깃든 장소가 점점 희소해지고 있어요. 제가 기록한 장소에서 느꼈던 영감을 더 많은 이에게 전하고 싶어요. 저의 궁극적 목적은 그들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번 사진전은 정말 여러 번의 여행을 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단기간에 여러 나라를 거치고, 여러 공간을 거쳐 조금은 정신이 없는 여정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프랑수아 알라르가 장소의 특징에 구애받지 않고 여러 공간을 담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또, 단순히 공간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사용하는 인물에게도 함께 집중했다는 것이 공간 속에 숨은 요소들을 찾게 해주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한다. 장소에서 놓칠 수 있는 부분까지 여러 각도로 보여주며 관람객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다.

 

프랑수아 알라르의 사진전을 보며 나는 ‘나’의 영혼이 깃든 장소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 속에 묻어나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프랑수아 알라르가 그 공간을 찍었을 때, 과연 어떤 영감을 얻을 수 있을지, 어떤 감정과 생각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을 품었다. 그리고 그 공간을 구성하는 작은 요소들이 ‘나’라는 인간을 형용하는 데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도 뒤따라온다.

 

이번 사진전은 그만큼 장소의 아름다움과 그 안을 구성하는 인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프랑수아 알라르의 진심이 돋보인다.

 

*<프랑수아 알라르 사진전: 비지트 프리베>는 피크닉에서 7월 30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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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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