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집 나간 여유를 찾습니다

돈도 여유도 없는 취준생이 버티는 방법
글 입력 2023.05.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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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 리빙포인트>

귀여운 걸 보면 힘이 난다

 

 

직장인은 돈이 있지만 여유가 없고 백수는 돈이 없지만 여유가 있다.

 

하지만 취업준비생은 돈도 없고 여유도 없다. 여유는 생기는 게 아니라 만들어야 한다. 불확실하고 흔들리는 과정을 견디기 위해 나는 두 가지 방법을 선택했다.

 

하나는 ‘단어 바꿔 말하기’와 다른 하나는 ‘혈중문화농도 높이기’이다.

 

단어 바꿔 말하기는 고리타분한 단어를 나만의 단어로 바꾸는 것이다. 쉴 새 없이 자기소개서를 쓰는 과정을 ‘자소서 공장을 돌린다’고 쓰고 면접을 ‘단기 고수익 알바’로 말한다. 면접비를 안 주는 회사도 많아서 무급 알바가 되기도 한다.

 

나의 상황을 친구에게 자소서 공장을 파업하고 단기 고수익 알바를 뛰러 간다고 돌려 말한다. 최근 목표는 면접비로 30만 원 벌기다. 본질은 자소서를 열심히 써서 면접을 많이 보는 것이다.

 

취업 과정은 결국 똑같지만, 단어를 바꾸면 어이없이 웃겨서 힘이 난다.

 

혈중문화농도 높이기는 책이나 영화를 통해 다른 세계에 빠지는 것이다. 삶의 퍽퍽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워라밸처럼 취준 생활에도 밸런스가 중요하다.

 

취업도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내 삶의 재미까지 포기할 수 없다는 조금 오만한 취준생도 맞다. 에세이 수업을 들으며 자기소개서 아닌 글을 쓴다.

 

영화는 잃어버린 사회성 발달에도 도움을 준다. 영화 <이니셰린의 벤시>를 보고 스몰토크 주제를 얻는다. 친구에게 “갑자기 내가 절교한다면 너는 어떨 것 같니?”라는 쓸데없는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이어 나간다.

 

요즘은 일종의 선순환을 지키고 있다. 면접을 보고 받은 면접비 5만 원으로 민음사 북클럽에 가입했다. 무려 책 6권을 받았다. 책을 읽을 여유가 있는지 없는지는 내버려 두고 일단 6개의 세계가 내 품으로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족해진다.

 

여유를 끌어다 써서 내 안의 고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수십 번의 실패가 익숙해졌다고 생각해도 막상 탈락을 또 마주하면 힘든 건 사실이다. 나만의 방법으로 견디다 보면 언젠가 취준의 끝이 다가올 것이라 믿는다.

 

여유를 품고 오늘도 자소서 공장을 돌린다.

 

 

[강현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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