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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의 여정


 

낮의 생동감은 삶에 활기를 불어넣지만, 과할 정도의 자극 속에 하루를 보내고 난 뒤에는 때때로 부드러운 밤의 고요함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해야 하는 일들을 일단 잠시 보류해두고, 이불 속에 묻혀있는 동안인 이 시간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밀린 드라마나 유튜브를 몰아볼 수도 있겠고, SNS로 그동안 뜸했던 친구들의 근황을 확인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복합적인 감각을 곤두세우는 일마저 감당할 수 없고, 주변인들의 소소한 일상을 포함한 세상 만사가 속을 시끄럽게 하는 밤이 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종류의 자극도 견디기가 힘들지만 생각은 멈출 수가 없을 때, 책을 읽는다. 다만 이렇게 무언가에 몰려서 책을 찾게 되는 때에는 개인적인 철칙이 있다. 감정에 과부하가 걸릴 만한 내용은 피할 것. 아름다운 것들을 다루고 있으면서 나의 의식까지 부드럽게 그 아름다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글을 찾을 것. 그렇게 책장에서 골라낸 책을 집어든 채, 두꺼운 쿠션에 등을 파묻고 조용히 종이를 넘길 때면 서서히 모든 것이 안정되어가는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난 한 주 동안 잠든 나의 머리 맡을 책임졌던 도서, '미드나잇 뮤지엄: 파리'는 그 제목처럼 밤의 고요함을 만끽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

 

 

[평면표지] 미드나잇 뮤지엄(파리).jpg

 

 

미드나잇 뮤지엄에는

오래전

불안과 희망, 고뇌와 확신 사이에서

묵묵히 그림을 그려온 화가들의 명작이

전시되어 있다.

 

이제 조용히 이곳의 문을 열어 보면 어떨까.

용기만 낸다면, 당신이 기대한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 유명한 루브르, 오르세,...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는 명성을 가진 파리의 미술관과 그곳에 전시된 아름다운 작품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명작들을 여유롭게 감상하며 그림이 품은 힘과 위로를 온전히 건네받기를 원한다는 서문처럼, 정갈한 해설과 함께 아름다운 그림들을 감상하다보니 조용한 주변과 함께 마음도 평안히 가라앉았다. 책 한 권이 이끌어주었던 그 환상적인 여정을, 잠시 소개해볼까 한다.

 

 

 

미드나잇 뮤지엄: 파리


 

예술의 도시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을 만큼, 굵직한 뮤지엄들과 내로라한 대작들을 대거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파리다. 하지만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마음에 찰 만큼 작품을 깊이 감상하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일회적인 방문으로는 절대 섭렵할 수 없을 정도로, 파리에서 접할 수 있는 작품의 양은 방대하다. 가령 약 3만 5천 점에 달하는 작품을 소장한 루브르의 경우, 모든 작품을 스치듯 10초씩만 봐도 꼬박 4일이 걸릴 정도라고 한다. 

  

이렇듯 사람도, 볼 것도 너무 많은 파리의 뮤지엄에서 여러 의미로 헤매지 않으려면 좋은 길잡이가 필요하다. 그렇게 명작들이 많다는데, 과연 무엇부터 보아야 하는지, 이들을 감상하기 위해서 알아야 할 역사적 배경이나 기본적인 정보들은 무엇인지, '미드나잇 뮤지엄: 파리'는 이렇듯 넘치는 질문들을 명쾌하게 해결해준다. 

 

특히 책의 구성을 살펴보면, 프랑스 공인 문화해설사인 저자의 노련함이 느껴진다. 내가 이 책을 딱 일주일 동안 읽은 것에는 이유가 있다. 마치 여행의 일정을 짜듯,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로 구성된 챕터에 각 날마다 살펴볼 뮤지엄이 나뉘어 있어 의식적으로 읽는 호흡을 조절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챕터씩을 읽으며, 책이 이끄는 여정을 따라가면 되었다(원한다면 물론 몰아 읽어도 좋고, 여러 날과 박물관을 넘나들어도 좋다!). 

 

1장, '파리 미술관에서의 하루'에서는, 제목처럼 하루를 꼬박 다 써서 둘러보아야 할 뮤지엄들을 다룬다. 그래서 오르세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오랑주리 미술관, 퐁피두 센터, 로댕 미술관, 총 5개의 뮤지엄에 각각 하루치의 챕터가 배정되어 있다. 다섯째 날까지를 읽고 나면, 대표적인 파리 뮤지엄들의 대표작과 그에 대한 해설은 물론 각 뮤지엄들의 설립 배경이나 관람 팁까지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다. 

 

2장, '파리 작은 미술관에서의 하루'에서는 반나절 정도 둘러보면 좋은, 비교적 규모가 작은 뮤지엄들을 다룬다. 2장에서 소개되는 프티 팔레, 파리 시립 현대 미술관, 마르모탕 미술관, 귀스타브 모로 박물관은 1장의 뮤지엄들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고 한적한 뮤지엄들이다. 하지만 중세 시대 종교화부터 인상파, 렘브란트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모두 아우르는 프티 팔레, 모네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마르모탕 미술관 등 그 깊이는 절대 1장의 뮤지엄들에 뒤지지 않는다. 

 

딱딱한 해설을 꾸역꾸역 들이밀지 않고, 전시관을 한가롭게 걷는 내 옆에서 짧은 호흡과 말랑한 표현으로 나지막히 설명을 읊조려주는 듯한 '미드나잇 뮤지엄: 파리'. 책은 단순한 정보 나열에 그치지 않고 각 작품과 작가에 대한 애정 어린 시사점까지를 제시하며, 숱한 명작들과의 만남을 위한 문턱을 낮추고 작품과 우리 삶 사이의 연결고리를 우리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한다. 

 

세심한 안내를 따라 매일 밤 책장을 넘기며 작품 사이를 편안하게 거닐다 보면, 어느새 작품에 얽힌 각종 일화들부터 작가들의 특성, 다양한 화풍과 사조까지를 부담없이 향유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일곱 날의 여정을 마무리 지으며 마지막 장을 덮으면, 정말로 파리의 갤러리를 슬쩍 둘러보고 온 듯한 감상과 함께 여행 뒤의 기분 좋은 이완감이 몰려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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