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솔직한 초록빛 치유 - 이상은 '비밀의 화원' [음악]

실수투성이고 외로운 나를 봐
글 입력 2023.05.22 11:3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

'비밀의 화원'(이상은)을 들으며 읽으시는 걸 권합니다.

(가사는 글 하단에 첨부)

 

 

비밀의화원.jpg

 

 

초록이 다양한 농도로 돋아나는 계절이다. 시린 햇빛 아래 스치는 바람을 맞다 보면 귓가에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담백한 위로를 툭 던지는 이상은의 ‘비밀의 화원’(2003)이다.

 

원곡을 모르는 사람들도 아이유의 목소리로 “난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아 그대를 만나고부터”를 스치듯 들어봤을 것이다. 아이유의 두 번째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둘>에 리메이크되어 수록됐다.

 

 

 

 

아이유의 ‘비밀의 화원’은 봄의 색채가 옅게 묻어나는 여름의 가장자리라면, 원곡인 이상은의 ‘비밀의 화원’은 물기 서린 녹음의 여름 같다. 노래를 듣다 보면, 해가 잘 들지 않는 방에서 오전을 빈둥대며 보낸 후 남은 하루를 알차게 보내겠노라며 가벼운 에코백에 공책 한 권 넣고 집을 나서는 인물이 그려진다.

 

풀과 꽃이 우거진 강가 옆 산책로를 걸으며 날아오르는 새도 구경하고 괜히 하늘을 두리번 바라보기도 하는, 그런 내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 서서히 행복으로 충만해지고, 동시에 눈물이 목으로 차오르는 게 느껴진다. 밝은 멜로디에 서정적인 가사를 음미하며 괜히 슬퍼지는 건 왜일까.

 

‘비밀의 화원’은 이상은이 우울증을 겪던 후배를 응원하고자 솔직함을 담아 만든 곡이다. “어제의 일들은 잊어. 누구나 조금씩은 틀려. 완벽한 사람은 없어. 실수투성이고 외로운 나를 봐” 우리 모두 머리로는 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고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모두 ‘나는 다를 수 있다’ 혹은 ‘달라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실수에는 관대하면서 자신에게는 채찍질하는 사람들이 특히 그렇다. 그러나 본인은 타인의 실수를 용인할 수 있는 반면 타인은 그러지 못할 거라는 지레짐작은 오히려 오만이지 않은가. 오만한 사람이 되면서까지 내 실수에 전전긍긍하기보다는, 움츠러든 자신을 보듬어 주는 게 낫지 않을까.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질 거야

그대가 지켜보니

힘을 내야지 행복해져야지

뒤뜰에 핀 꽃들처럼”

 

우울증으로 하루가 버겁게 느껴지는 사람에게 섣부른 위로는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다. 설령 그 위로가 진심 어린 마음이었을지라도 듣는 사람에게 가닿지 않으면 위로는 허공에 흩어진다. 대신, 명료하고도 사소한 약속을 던지라는 조언이 있다. “내일 빙수 먹으러 00 카페 갈까?”, “이번 주에 00 전시회 한다더라. 같이 가자” 같은 말이다. ‘비밀의 화원’에서 인물이 하는 혼잣말은 자신과의 약속처럼 들린다. “점심을 함께 먹어야지. 새로 연 그 가게에서. 새 샴푸를 사러 가야지. 아침 하늘빛에 민트향이면 어떨까”

 

“난 다시 꿈을 꾸게 되었어

그대를 만나고부터

그대 나의 초라한 마음을

받아준 순간부터”

 

사랑 노래일까? 그럴 수 있다. 정말로 사랑하는 상대를 만나 그가 지켜보고 있으니 나도 힘을 내서 행복해져야지, 하며 다짐하는 노래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비밀의 화원’을 수백 번 반복해 들어도 화자 외에 다른 인물이 그려지지 않는다. 내가 나의 실수와 결점을 포용하고 초라한 모습까지 받아주니, 그런 내게 부응하기 위해 사소한 일들을 성취하며 행복을 되찾고자 하는 게 아닐까.

 

 

비밀의화원3.jpg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책인 <비밀의 화원>은 ‘메리’라는 한 소녀가 수년간 잠겨 있던 ‘비밀의 화원’을 아름답게 가꾸며 자신과 주변을 치유하는 이야기다. 메리의 버릇없고 외로움을 타던 성격은 비밀의 화원을 가꾸며 부드러워지고, 비밀의 화원 주인의 아들인 ‘콜린’ 또한 비밀의 화원에서 자연과 노니며 병세가 완화된다. 아이들이 자연의 성장을 함께하며 생기 있게 자라는 모습을 담은 따뜻한 이야기는 ‘비밀의 화원’ 곡과 맞닿아 있다.

 

자신이 가진 치유와 성장의 힘을 믿는 것, 그리고 곁에서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내어주는 것. 

 

‘비밀의 화원’이 전하는 초록빛 치유를 느껴보는 건 어떤가? 초록의 계절에서.

 

 

'비밀의 화원'(2003)   - 이상은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새들은 걱정없이

아름다운 태양속으로

음표가 되어 나네

 

향기나는 연필로 쓴 일기처럼

숨겨두었던 마음

기댈 수 있는 어깨가 있어

비가 와도 젖지 않아

 

어제의 일들은 잊어

누구나 조금씩은 틀려

완벽한 사람은 없어

실수투성이고 외로운 나를 봐

 

난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아

그대를 만나고부터

그대 나의 초라한 마음을

받아준 순간부터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질 거야

그대가 지켜보니

힘을 내야지 행복해져야지

뒤뜰에 핀 꽃들처럼

 

점심을 함께 먹어야지

새로 연 그 가게에서

새 샴푸를 사러 가야지

아침 하늘빛에 민트향이면 어떨까

 

난 다시 꿈을 꾸게 되었어

그대를 만나고부터

그대 나의 초라한 마음을

받아준 순간부터

 

월요일도 화요일도 봄에도

겨울에도 해가 진 무렵에도

비둘기를 안은 아이같이

행복해줘 나를 위해서

 

난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아

그대를 만나고부터

그대 나의 초라한 마음을

받아준 순간부터

 

난 다시 꿈을 꾸게 되었어

그대를 만나고부터

그대 나의 초라한 마음을

받아준 순간부터

 

 

[정은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2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