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에드워드 호퍼의 길 위에서 [미술/전시]

글 입력 2023.05.2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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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아람 작가의 <나의 뉴욕 수업>을 읽으면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계속 찾아봤다. 저자가 언급하는 그림을 조금이라도 더 생생하게 보고 싶고 저자의 감정을 느껴보고 싶어서 책을 읽을 때마다 노트북을 펼쳐서 그림을 함께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마음에 깊게 새겨질수록 화면을 뚫고 나오는 그림은 내가 원하는 것들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운 좋게도 이 시점에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가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었고 나는 <나의 뉴욕 수업>의 연장선으로 이 전시를 택했다.

 

<길 위에서>라는 전시명처럼 이번 전시는 에드워드 호퍼가 걸어온 길을 보여준다. 그가 거쳐간 나라들을 중심으로 장소에 따라 그의 시선이 머물렀던 곳이 어디인지, 그의 작업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전시관 1-3층에서 대규모의 전시로 보여준다.

 

전시는 2-3-1층의 순서로 관람이 진행되는데, 2층에서는 에드워드 호퍼의 자전적인 그림들과 파리와 뉴욕에서의 그림, 3층에서는 뉴욕과 뉴잉글랜드, 케이프코드를 배경으로 한 그림, 1층에서는 에드워드 호퍼의 부인인 조세핀 호퍼와 에드워드 호퍼의 삶과 업을 그려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의 작품의 배경은 자연에서부터 도시, 인물까지 다양하게 이어지고 그의 화풍 또한 다채롭게 발전한다.

 

 

 

2F, 에드워드 호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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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응시하고 있는 날카로운 눈빛, 초창기 에드워드 호퍼의 자화상을 보자마자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었다. 2층에는 수많은 에드워드 호퍼의 자화상과 손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느꼈던 바와 같이 초창기의 에드워드 호퍼의 자화상은 다소 경직되어 있고 날카로웠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호퍼의 자화상은 초기에 비해 많이 여유가 있고 부드러워진 느낌을 형성한다. 아무래도 예술가로서 불완전했던 초기의 호퍼의 모습과 예술가적 방향성이 형성된 후기의 호퍼의 모습이 자화상에도 드러난 것이 아닐까 한다.

 

두 번째로 주목할 수 있었던 것은 에드워드 호퍼의 손 그림이다. 전시실에서 여러 각도에서 여러 형태로 그려진 다양한 손 그림 습작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이런 습작은 전시실 1-3층 곳곳에 여러 점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를 통해 그가 이룩하고자 했던 예술적 성공의 마음에 대한 열정과 예술적・기술적 발전을 위해 그가 했던 노력들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2F,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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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의 화풍이 파리를 배경으로 한 그림에서 확실히 구축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쉽게 지나치거나 보지 못할 것 같은 풍경들을 묘사하고 단조로웠던 색상의 사용 폭이 넓어진다. 명암과 빛을 중요하게 여겼던 호퍼의 시각도 이 시기에 많이 드러나게 된다. 또한, 호퍼는 생동감 넘치는 파리의 풍경에 이끌려 다양한 사람들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당시 그렸던 인물 그림들이 그의 삽화 작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한다.

 

파리의 그림에서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림은 <비스트로 또는 와인 가게>이다. 테이블 위에 와인병 하나를 두고 대화에 몰입한 것 같은 두 사람,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위해 조용하게 펼쳐지는 풍경들이 파리의 여유를 보여준다. 풍경보다는 사람을 더 집중적으로 그린 듯한 호퍼의 그림에서 잔잔하게 흘러가는 센 강과 선선하게 부는 바람은 두 사람의 대화를 구성하는 배경의 역할을 한다. 이 그림에서부터 호퍼가 그려나갈 적막과 고요의 작품들에 기대를 품게 된다.

 

 

 

3F,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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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영국 ⌜가디언⌟지는 ‘오늘날 우리는 모두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다. 그는 코로나바이러스 시대의 예술가인가?’라는 기사를 게재했다고 한다. 호퍼는 그만큼 단절, 고립된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집중된 내면의 감정들을 세세하게 작품 속에 표현하였다. 그런 호퍼의 표현이 가장 빛나는 장소가 바로 뉴욕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사람이 많고 시끌벅적한 뉴욕 안에서의 고독이라는 상반되는 이미지가 그의 그림을 더 상징적으로 만들어준다. <밤의 창문> 속 여성도 방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런 뉴욕 안에 있었고 아침이 밝으면 다시 그런 뉴욕 속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따뜻한 색감이 방은 그녀에게 온전하고 여유로운 단절을 선물할 것이고, 그녀는 다음날 뉴욕의 거리에서 자신의 방을 계속 생각할 것이다.

 

이 그림은 볼 때마다 망원경으로 맞은편에 사는 여자를 훔쳐보다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영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을 연상시킨다. 우리는 몇몇 호퍼의 그림에서 이렇게 훔쳐보는 듯한 시각을 볼 수 있다. 항상 창문이라는 매개가 등장하여 외부인의 시선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창문 안의 이들이 외부와는 확실하게 단절되어 있다는 표현을 강조한다.

 

이러한 시각은 관람객들에게 궁금증을 유발하고 시점이나 상황 등과 같이 그림에서 표현되는 것들을 마음껏 상상하게 해준다. 자신의 내면에 따라 보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3F, 케이프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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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와 아내 조세핀 호퍼는 1934년 트루토에 뉴욕에서 벗어나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스튜디오 겸 집을 마련했다. 부부는 매년 여름과 초가을을 케이프코드에서 보내고 뉴욕으로 돌아오는 일상을 반복했다고 한다. 이곳에 머물며 에드워드 호퍼는 기억과 상상력이 결합된 작품을 그리기 시작한다. 당시의 작품을 보면 자연의 모습과 도시의 모습이 오묘하게 함께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연과 인공물이 결합된 작품 중, 케이프코드에서의 그림인 <오전 7시>는 좌측의 숲과 우측의 건축물의 대비가 확실하게 나타나는 그림이다.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어울리는 둘의 조합은 관람객들에게 흥미를 유발한다. 뉴욕과 케이프코드를 오가며 그는 둘 사이에 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그림에 복합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 같다.

 

그림 속 오전 7시를 가리키는 시계와 그에 맞는 햇빛과 그림자의 표현은 에드워드 호퍼가 그림의 구성 요소들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부조화 속에 조화, 호퍼의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그림이다.

 

 

 

OFF, 에드워드 호퍼의 길


 

결국, 여러 나라를 거치고 여러 변화를 거쳐 그가 향하던 길은 에드워드 호퍼 자신에게로 가는 길이었다. 호퍼는 예술에서 삶이란 단어를 경시해서는 안 된다며 예술 속에 드러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그 또한 자신의 작품에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를 보고 난 이후, <나의 뉴욕 수업> 저자 곽아람이 뉴욕에서 호퍼처럼 살았다는 말의 의미를 온전하게 깨닫게 되었다. 사실적 풍경과 자신의 상상력을 결합시켜 작업을 하던 호퍼에게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그 장소를 보며 느꼈던 자신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 반복적인 시간은 그에게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정으로 여겨지지 않았을까.

 

외부인, 관찰자의 시각으로 그림을 그리지만 그 안에 자신의 내면을 가득 채운 매력적인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만나보기를 바란다.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 8월 20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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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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