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상에 하품이 날 때 펼치는 책 - 나의 뉴욕 수업

글 입력 2023.05.2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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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은 바람이 불어오는 아침, 여느 때와 같이 집을 나선다.

 

이렇게 좋은 날, 출근길에 나서긴 아쉽지만 별 수 없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열차에 오른다. 자리에 앉아 문득 어제와 오늘, 내일의 모습이 너무나 비슷해 구분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 때 가방에서 책을 꺼내 페이지를 넘긴다. 독서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머나먼 여행을 떠나게 해주는 가장 쉬운 방법이니까.

 

오늘의 책은 곽아람 작가의 “나의 뉴욕 수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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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아람 작가는 미술사를 공부하고 신문사 문화부에서 10년이 넘는 세월 글을 써온 기자다. 긴 시간 회사원으로 성실히 살아온 작가는 1년간의 해외 연수 기회를 얻는다. 미국으로 떠나 뉴욕대학교 IFA(The Institute of Fine Arts) 방문 연구원으로 아트 비즈니스 과정을 공부하게 된다. 뉴욕에서 지내며 보고, 듣고, 경험한 미술 이야기. 그리고 새로이 발견하고 탐구한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곳에서 지냈던 1년이란 시간은 어떨까? 1년은 스치듯 지나가는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어떨 땐 삶을 완전히 바꿔 놓을 정도로 길고 깊은 시간이기도 하다. 곽아람 작가의 1년은 어땠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에드워드 호퍼를 마주한 순간


 

[“내가 이 놀라운 여행을 하는 목적은 나 자신을 속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 대상을 접촉하면서 본연의 나 자신을 깨닫기 위해서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이탈리아 기행” 中

 

새로운 곳으로 떠날 때 우리는 출발에 앞서 그 모습을 상상해 보게 된다. 곽아람 작가 또한 그만의 그림이 있었다. 그녀는 처음 뉴욕으로 향하면서 괴테와 같은 하루하루가 찾아오리라 생각했다.

 

이전에는 겪어본 적 없는 새로운 환경, 새로운 공간, 새로운 사람들과 마주하고 관계를 맺고, 새로움이 가득한 그곳에서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나의 성격, 취향, 가치관, 다양한 모습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리라고 믿었다.

 

물론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그 가운데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괴테보다 호퍼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이 그림(「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며 호퍼는 말했다.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나는 대도시의 고독을 그리고 있었던 것 같다." 무의식으로부터 고독한 공간을 끄집어내 화면에 재현하고, 무의식 속 외로운 인물들을 그 공간에 배치했다. 심상을 읊어내는 시인처럼, 호퍼는 마음속 이미지를 화폭에 옮겼다. 그래서 그림 속 식당은 어디에든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환영(幻影) 같지만, 실재(實在)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의 무의식에는 고독한 공간의 이미지가 가라앉아 있고, 호퍼의 식당도 그중 하나이니까.

 

- 곽아람, "나의 뉴욕 수업" 中 

 

  

호퍼는 도시를 그렸다. 도시 한가운데,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스쳐가는 가운데 느끼는 고독이 느껴지는 그림. 생김새도, 언어도, 생각도, 모든 것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사람들 속 이방인이라는 감각. 그 마음과 느낌을 알 것 같다. 유럽에서 짧은 기간 교환학생으로 머무르며 느꼈던 감정은 이제껏 겪어본 적 없는 것이었다.

 

작가 또한 분주한 대도시와 대비되는 작은방 안의 시간, 외로움과 고독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새로운 공간에서의 놀라운 경험과 고독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사람들과 두 눈을 맞추며


 

작가는 미술을 오래 공부하고, 이야기한 사람으로 관련 연구와 공부를 위해 떠났을 것이다. 미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뉴욕에서 에드워드 호퍼는 물론, 다양한 작가와 미술의 흐름을 경험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분야를 깊이 공부하고, 경험하는 즐거움은 특별하다.

 

그런데 뉴욕에서의 1년이 특별했던 건 미술 때문만은 아니었다. 함께 미술에 대해, 혹은 전혀 다른 대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공유한 낯선 사람들이 있었다.

 

방문 연구원으로 있었던 NYU IFA에서 독일 출신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 수업을 청강했을 때의 일이다. 그 수업은 이제껏 경험했던 교수가 학생들에게, 한 방향으로 전하는 수업의 형태와는 완전히 달랐다고 한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자료 보관실 프린트룸으로 향해 직접 뒤러의 판화를 바라보면서 ‘뒤러는 천재였는가’를 주제로 교수와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식이었다.

 

영어가 서툰 작가가 말을 시작하면 온몸을 기울여 귀담아 들어준 교수님. 그 덕에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느려도 감상을 편하게 이야기하고,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학교에 기부를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수업 청강권. 미술에 대한 열의로 청강하기 위해 찾아온 나이가 지긋한 기부자들. 그들과 자유롭게 이야기 나눈 수업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선선히 바람이 불어오는 요즈음, 뉴욕을 그리며, 나의 꿈을 그리며 읽기 좋은 책 “나의 뉴욕 수업”이었다. 미술 이야기는 물론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하며 읽기 좋은 책이다. 잠시 산책에 나설 때, 일상에 하품이 날 때 펼쳐보길 추천한다. 그 안에서 잊고 있던 열정과 꿈, 나만의 이야기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컬쳐리스트 명함.jpg

 

 

[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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