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프랑스의 ____ 나폴레옹 [공연]

프랑스 영웅의 놀라운 삶
글 입력 2023.05.20 12:2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포스터.jpg

 
 

지난 목요일 오랜만에 회기를 찾았다. 뮤지컬 '나폴레옹'을 보기 위해서였다. 뮤지컬을 보는 것 또한 오랜만에 일이었다. 마스크 착용 없이 규모 있는 공연을 보는 것이 얼마 만인가. 이제야 엔데믹이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었다.

 

오후 8시의 공연으로 저녁을 먹고 관람하기에 딱 좋은 시간대이지만 퇴근길이 막혀 예정해놓은 식당은 갈 수 없었다.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 건물 계단에 쭈그려 앉아 빵을 집어먹고서야 한숨을 돌리고 입장할 수 있었다. 시간에 맞춰 입장하기 위해 이것저것 포장해 온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조급하지만 기대에 찬 표정을 몰래 살피며 이것도 공연을 보러 가는 즐거움이었지, 했다.

 

오랜만에 본 뮤지컬은 결론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스토리부터, 넘버, 연출까지 무엇 하나 튀는 것이 없이 조화로운 공연이 아니었나 싶다. 프랑스의 영웅적 존재인 나폴레옹의 보여진 모습과 이면, 그를 황제로 이끈 정치가 탈레랑, 그리고 그의 연인 조세핀을 중심으로 전개된 서사시가 그 중심을 잘 잡아줬기 때문이라고 느꼈다.

 

특히 이번 공연은 세계 최초 프랑스어로 버전으로 만들어져 더욱 특별했다. 한국이 캐나다에서 초연된 작품의 판권을 소유해 직접 프랑스 현지 캐스팅을 했다는 제작 비하인드도 흥미로웠다. 오리지널 배우와 오리지널의 현장에서 작품을 보게 된 셈이다. 뮤지컬에 대한 조예가 깊진 않으나 초연된 작품이니 만큼 어떠한 의견도 재미있게 다가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을 감상으로 남겨보고자 한다.

 

 

 

혁명가에서 황제로, 모두에게 존경받는 남자 나폴레옹


 

공연사진5.jpg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코르시카 섬 하급 귀족 출신에서 스스로 프랑스 제1대 황제가 된 신화적인 인물이다. 출신으로 인한 차별에 대항하며 끝까지 평등을 외지는 카리스마와 강한 리더십, 인간적인 매력까지, 요즘 말로 따지면 빠지는 것 하나 없는 '사기캐'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나폴레옹에 대해 아는 건 딱 여기까지였다. 공연을 보고 난 후에는 오히려 '빈칸'으로 남은 인물이다. 존경할 만한 인물이면서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을 갖게 되는,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로 마음에 오래 남을 듯하다.

 

무능력한 총리 바라스를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키며 부른 <여정이 시작됐어>는 그가 얼마나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영웅적인 존재인지 알도록 해준다. 더 큰 욕망을 품고 황제가 될 때의 넘버 <내가 혁명이다>부터 탈레랑을 쫓아내는 <마지막 성전>에 이르기까지 그의 다양한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워털루 전장, 한시 바쁘게 명령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침묵하는 나폴레옹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오버랩 되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나폴레옹에게 이입하게 된다. 위대함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거운지, 그리고 그것을 한 겹 벗겨내고 나면 너무나도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 모든 게 무용해진 끝에서도 엘바섬을 탈출하며 모든 게 시작된 전장으로 돌아가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나폴레옹의 용맹함을 기리는 <피날레>와 함께 막은 내리지만 세상을 향한 그의 뜨거운 열기는 식지 않을 것만 같다.

 


 

강하고 아름다운 어둠, 톨레랑


 

공연사진2.jpg

 
 

"찬란한 빛 속에서 더욱더 찬란하게 빛나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나?" 

 

뛰어난 외교술과 권모술수에 능한 정치가 탈레랑. 나폴레옹을 알아보고 정계로 이끌어 그를 통해 자신의 야망을 이룬 인물이다. 이렇게 어둠을 자처하는 남자는 왜 자신을 빛이라고 하며 왜 빛이 되고 싶은 건가? 탈레랑의 어린 시절 아픔이 과연 설득력이 있나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 질문은 탈레랑이 무대에 오를 때마다 떠올랐다. 그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폴레옹이 바라스를 몰아내는 것에 성공하자 그는 <생존 게임>을 부르며 자신이 계획이 성공한 것에 대해 끝없이 기뻐한다. 이후 나폴레옹과 정치적 사이가 나빠지며 자신의 술수를 들켜 파국을 맞게 된다. 그럼에도 빛이 되기를 바라는 그의 모습은 처절하다. 다리만 다치지 않았었다면 그는 나폴레옹과 같은 영웅, 즉 빛나는 존재가 될 수 있었을까.

 

탈레랑이 어둠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추게 된 것은 그의 마지막 노래 <피날레>에서다. 다친 다리를 절면서 앞으로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그의 걸음에서 나폴레옹과 같은 기개가 느껴졌다. 그런 탈레랑을 연기한 크리스토프 쎄리노라는 배우가 참 매력적이었다.

 

 

 

아름다운 춤과 노래로 무대의 풍성함을 주는 앙상블



공연사진6.jpg

 

 

무대 위에서는 역시 사람이 가장 눈에 띈다. 좋은 주연 배우 만으로는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없다는 간단한 진리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해준 것은 단연 앙상블이었다. 전장을 배경으로 총을 들고 제식 훈련을 하듯 절도 있게 움직이는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다. 1막 오스트리아 원정을 떠나는 나폴레옹과 군인들의 춤과 노래에서는 처절한 고통과 강렬한 의지가 동시에 느껴진다.

 

2부 넘버 <플롱비에르>에서는 여성 앙상블이 혼란스러운 조세핀과 함께 분위기를 압도한다. 비밀스러운 온천마을에서 몽환적인 조명과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앙상블. 베일로 둘러싼 의상에 쭉 뻗은 자세에서는 한국 무용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대에서 앙상블은 주로 한국, 프랑스 배우가 따로 등장했는데 그 둘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이 신에서는 한국 앙상블의 매력이 제대로 보여 자막과 무대를 번갈아 보던 바쁜 눈을 잠시 무대에 놓고 즐길 수 있었다.

 

절도 있는 k-군무와 노래에 왠지 공연과 더 연결된 느낌을 받았다. 무대를 풍성하게 채워주는 이들이 없었다면 감동도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대 최대 공연장을 가득 채우기 위해 사용된 6개 대형 LED를 활용한 무대 연출도 눈에 띄었다. 무대를 직접 움직이기도 했지만, 영상을 활용해 무대 배경을 다채롭게 꾸미는 방식이 신선했다.

 

 

공연사진13.jpg

 

 

자신의 힘으로 빛나는 용맹한 나폴레옹과 한 사람으로서의 그를 가만히 바라볼 수 있었던 뮤지컬 <나폴레옹>이었다. 거대한 역사 속에서 숨겨져 있던 인물들을 만날 수 있어 즐거웠다. 생동감 넘치는 무대연출과 안무, 화려한 조명과 의상, 오랜만에 넘치는 에너지를 받을 수 있었다. 공연을 볼 생각이 있다면 이제까지 알았던 나폴레옹의 모습은 잠시 잊고 공연을 통해 나의 나폴레옹은 어떤 인물인지 그 빈칸을 채워보는 재미도 있을 거라 믿는다. 노트르 담 드 파리, 레미제라블과 나란히 프랑스 3대 뮤지컬이 되고 싶다는 포부가 과연 이루어질지 기대된다.

 

 

 

컬처리스트 한승하.JPG

 

 

 

[한승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