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만의 무지개를 찾아, 클래식의 세상으로 - 이토록 클래식이 끌리는 순간

클래식 칼럼니스트, 최지환의 <이토록 클래식이 끌리는 순간>을 읽고
글 입력 2023.05.11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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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과는 줄곧 어색한 사이였다. 한때는 가까워지고 싶어 노력했던 때도 있었지만, 끝내는 클래식은 어렵다는 편견을 넘어서지 못했다. 마음 한편에 찝찝함을 남겨둔 채 클래식 음악은 미완의 숙제로 남는 듯했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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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클래식이 끌리는 순간>은 저자인 최지환 클래식 칼럼니스트가 클래식 입문자와 애호가들을 위해 엄선한 28곡의 클래식 명곡들을 소개한 책이다. 근본적으로 ‘음악을 듣는 법’을 가르쳐 준다는 점에서 그 누구보다 나와 비슷한 클래식 초보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그동안 클래식이 왜 어렵게만 느껴졌는지에 대한 성찰을 얻었기 때문이다.

 

병원이나 화장실 등과 같이 긴장을 이완해야 하는 장소에서 흔히 들리는 음악이지만, 내가 클래식을 의식했던 대부분의 순간들은 모두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어린 시절 피아노 학원에서는 음을 틀리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고, 학창 시절의 음악 수업이나 대학의 교양 강의에서도 클래식 음악은 정답을 맞혀야만 하는 시험이었다.

 

몇 번의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역시 음악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과 긴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정작 무엇이 정답인지도, 듣는 방법조차도 모르면서 말이다. 음악은 결국 즐기기 위한 예술인데 반해 클래식을 제대로 즐겨본 적이 없던 것이다. 클래식은 어렵다는 편견은 결국 음악을 공부해야 한다는 나의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음악을 들으며 꾸벅꾸벅 조는 것이 음악을 잘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저자의 설명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클래식 공연을 관람하던 중에 졸던 옆 사람을 보며 속으로 교양이 부족하다 평가했던 과거의 내가 떠올라 얼굴이 화끈해졌다.

 

 

가장 쉽게 음악을 이해하는 방법은 음악 듣기를 일종의 소통으로 생각하고 자신에게 익숙한 분야를 통해 접근하는 겁니다. 미술, 건축, 문학, 영화 같은 예술 분야도 좋지만 철학이나 여행, 요리, 스포츠 등도 괜찮습니다. 

 

8p. 저자의 글. 음악의 속삭임에 마음을 열고 영혼이 숨을 쉰다 中

 

 

평소에 우리가 잘 모르는 숨은 명곡들이 아니라 이름부터 매우 익숙하거나 제목은 모르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곡들로 구성된 책이다. 저자의 풍부한 배경지식과 재치 있는 입담으로 전혀 지루하지 않은 설명을 담고 있다.

 

음악을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자신에게 친숙한 분야와 접목시키는 것이라고 최지환 칼럼니스트는 말한다. 이에 따라 본 책에는 명곡에 얽힌 에피소드나 작곡가에 대한 소개뿐만 아니라 미술, 건축, 서예, 문학, 영화, 와인 등 평소 우리가 자주 접하는 분야들이 음악과 어우러져 등장한다. 클래식에 어색한 입문자에게 음악을 듣는 방법부터 제시하며 그 매력에 빠지게 만드는 책인 것이다.

 

각 챕터마다 제시되는 QR 코드 역시 매우 유용하다. 해당 챕터에서 설명하는 곡들이 담긴 유튜브 링크로 바로 연결되어 음악과 함께 책을 보다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게 한다.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쓸 때, 특히 책을 읽을 때는 가사가 있는 음악이 방해가 될 때가 있다. 그럼에도 클래식 음악은 친숙하지 않아 뉴에이지 음악을 틀거나 아예 음악을 듣지 않는 식으로 타협을 보곤 했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로망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덤으로 상황과 분위기에 맞는 곡을 적어도 28곡이나 알 수 있는 특별한 기회이기도 했다. 

 

<이토록 클래식이 끌리는 순간>을 읽게 된다면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한 공간에서 QR코드를 활용해 제공되는 음악을 꼭 함께 듣기를 권한다. 말 그대로 온몸으로 느껴야 더 매력적인 클래식이다.

 

이 책은 크게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제 1장. 클래식을 온몸으로 느끼다

제 2장. 클래식을 그림처럼 보다

제 3장. 클래식을 이야기로 읽다 

 

각 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챕터들을 간단히 소개해 보려 한다.

 

 

 

제 1장. 클래식을 온몸으로 느끼다 - 9. 음악은 에너지다, <브람스 교향곡 1번>


 

‘브람스’라는 이름 자체는 친숙하지만 사실 그의 음악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요한 제바스타인 바흐와 베토벤과 함께 독일의 ‘3B 음악가’로 불리는 브람스는 낭만의 시대에 고전을 다시 끄집어내며 새로운 고전을 완성시킨 작곡가이다.

 

곡이 품은 에너지와는 별개로 ‘브람스 교향곡 1번’은 내게 브람스에 대한 연민으로 남을 것 같다. 스무 살의 어린 나이에 슈만으로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아 베토벤의 정통성을 이을 후계자로 발탁된 브람스는 그 부담감으로 인해 첫 번째 교향곡을 완성시키는데 23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결과는 세상의 기대를 충족시켰지만, 그에게 쏟아졌던 관심이 어린 브람스에게 얼마나 가혹했을지 쉽게 상상할 수조차 없다. 

 

낭만 시대에 만들어진 새로운 고전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브람스 교향곡 1번은 모든 악기들의 정확한 컨트롤 아래 소리의 에너지를 응집시켜 폭발적인 힘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그 선율은 자유로운 낭만의 감성을 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성을 가장 잘 느끼게 해주는 연주는 카를 뵘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를 밤하늘의 서치라이트로 비유한 저자의 설명이 와닿은 순간은 비교 제시된 샤를 뮌슈 지휘의 파리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고 나서였다. 정통이라는 수식에 빛나는 독일의 연주가 정교함을 보여준다면 프랑스의 연주는 자유분방한 개성이 돋보인다. 각 국가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는 연주들인 셈이다.

 

 

독일 악단처럼 통일된 음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단원 각각의 울부짖음이 큰 에너지가 되어서 나타납니다. 저마다 제각각 살아내야 하는 우리 인생을 닮기도 했고 하늘에 깜빡이는 별들의 모습을 닮기도 했습니다.

 

99p.음악은 에너지다, <브람스 교향곡 1번> 中

 

 

두 연주 모두 각각의 매력이 돋보이는 우수한 작품이지만 밤하늘의 별들과 각기 다른 우리 삶을 닮았다는 파리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개인적으로 더 감동스럽게 느껴진다.

 

 

 

제 2장. 클래식을 그림처럼 보다 – 8. 음반 표지 이야기 2 ‘후안 미로와 르네 마그리트’, 에릭 사티 <짐노페디>


 

 ‘에릭 사티’라는 이름도 <짐노페디>라는 제목도 낯설기만 하지만, 음악을 듣는 순간 친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곡의 이름과 작곡가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지만, 에릭 사티가 제시한 ‘가구 음악’이라는 개념은 클래식 음악 듣기에 부담이 있던 내게 속 시원한 해답을 제시했다.

 

사티는 1917년 ‘가구 음악’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자신의 음악이 집 안에 늘 놓여있는 가구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들려지기를 바란 것이다. 사티는 예술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음악 역시 편하고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무심하게 흘려듣기를 권했다. 이러한 사티의 사상은 지금의 BGM(background music, 배경음악)의 개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흔한 오해 중 하나는 고상하고 지적인 활동이라 그에 걸맞은 품격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음악은 법전처럼 이해하기보다는 시처럼 느껴야 합니다.

 

202p. 음반 표지 이야기 2 ‘후안 미로와 르네 마그리트’, 에릭 사티 <짐노페디> 中

 

 

이전까지 클래식 음악을 듣던 나의 태도는 경배에 가까웠다. 별생각 없이 신이 나면 신나는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즐기는 대중음악과는 달리,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면 가사도 없는 음악에서 메시지를 발굴하기 위해 내내 긴장해야 했다.

 

작곡가와 연주가가 어떤 감정이나 내용을 담았는지 관계없이 감상은 오로지 청중의 몫이다. 그 과정에 정답이란 없는 법이다. 내가 느끼는 것이 곧 나의 답이며, 나는 그저 음악을 즐기면 될 뿐이라고 사티가 말해주는 듯하다.

 

 

사티의 음악은 당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1960년대 들어서면서 공감을 얻고 주목받게 됩니다. 본인의 자화상 아래 남긴 “나는 이 늙은 세상에 너무 젊게 태어났다.”라는 글귀가 가슴에 와닿습니다.

 

202p.  음반 표지 이야기 2 ‘후안 미로와 르네 마그리트’, 에릭 사티 <짐노페디> 中

 

 

‘나는 이 늙은 세상에 너무 젊게 태어났다’라는 글귀가 내 가슴 또한 먹먹하게 한다.

 

 

 

제 3장. 클래식을 이야기로 읽다 – 7. 피천득의 그녀를 찾아라, <하이든 교향곡 B플랫 장조>


 

음악이 놀이가 될 수 있을까? 아마 과거의 나라면 대중음악은 그럴 수 있어도 클래식은 어렵다고 답했을지 모른다. 후반부에 다다르면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치 놀이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정 작곡가의 곡 하나를 다른 지휘자와 연주자가 만들어 내는 소리를 통해 비교하며 듣는 과정이 어느 순간 내게 특별한 재미가 된 것이다. 현재 클래식 음악시장의 주류가 작곡이 아닌 연주의 시대라는 설명이 퍽 와닿는 순간이었다.

 

지휘자가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에 따라, 연주자가 어떤 감성을 싣는지에 따라 음악은 하나의 색으로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클래식의 매력 중 하나는 음악을 한 사람이 점유하지 않는다는 점인 것 같다. 음악을 통해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여행할 수 있다. 작곡가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고 지휘자의 생각을 들을 수 있으며, 연주자의 개성을 느낄 수 있다.

 

 

클래식은 어렵고 지루하고 졸린 음악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클래식으로 놀기를 접해보지 않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수필에 등장하는 보스턴 클래식이 연주한 교향곡을 찾던 날 우리는 노 수필가의 추억을 따라다녀보기도 하고 자신의 어린 시절 풋풋한 짝사랑을 떠올려보기도 했습니다.

 

292p. 피천득의 그녀를 찾아라, <하이든 교향곡 B플랫 장조> 中

 

 

저자는 음악을 통해 놀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을 제시한다. 바로 문학을 통해서 말이다. 그는 피천득의 수필에 등장하는 하이든의 음악을 추리해낸 실제 경험을 예로 들며,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음악을 찾아내는 과정을 통해 작가와도 연결되는 놀이를 할 수 있다 말한다. 나 역시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음악들을 찾아서 들었던 적이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 장르의 범위가 클래식으로까지 넓어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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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놀이를 통해 작가의 추억을 함께 여행하고 그 음악에 나만의 특별한 추억을 심는 과정이 무지개를 찾는 과정과 같다고 비유한다. 이 무지개라는 말이 인상적으로 남는 건 책을 읽는 어떤 순간 종이에 비치던 무지개를 보았기 때문이다.

 

 

하이든 교향곡을 듣고 있으면 수필가가 본 그 무지개가 우리들 마음속에도 들어옵니다. 그날의 교향곡이 아니더라도 용의선상에 있는 모든 곡은 그런 힘을 갖고 있습니다. 음악은 늘 우리에게 무지개였으며 곁을 지켜준 파랑새였음을 깨닫게 합니다.

 

292p. 피천득의 그녀를 찾아라, <하이든 교향곡 B플랫 장조> 中

 

 

음악을 시험을 보듯이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음을 알려준 이 책은 내게 무지개 그 자체였다. <이토록 클래식이 끌리는 순간>을 읽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역시 우연히 이 무지개를 발견한다면 좋겠다. 눈을 통해서든, 마음의 눈을 통해서든 상관없이 자신만의 무지개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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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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