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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나이 들어가는 모든 것들은 슬프다. 굴러가며 끼익 힘겨운 소리를 내고, 자꾸 발걸음은 느려지고 멈춰 쉬는 시간은 길어진다.


세월에 둥글게 다듬어지는 것을 거부한 이들은 네모, 세모 모양으로 깎여 굴러갈 때마다 덜컹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추락한다. 그 경사는 높고 험난하다. 끼익- 쿵, 끼익-쿵 아픔을 반복하는 삶은 얼마나 서럽고 연약한가.


고난이라는 돌멩이가 무작위로 섞인 풍파를 헤쳐온 이들은 각자의 모양으로 깎여 있다. 정면으로 돌바람을 마주 보고 걸어온 이들은 네모 모양으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던 사람들은 굽은 등이 아프게 맨질거린다.

 

세월 앞에 주먹질을 해댔던 사람들은 희안한 모양으로 각이 져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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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독 그들의 화석 같은 인생 문양을 보고 있자면 참을 수없이 슬퍼지는 것이다.


주름진 손등, 어쩔 줄 모르는 눈빛, 새어 나오는 눈물 한 방울, 때때론 아이 같은 웃음. 그들의 행위 곳곳에서 녹진한 삶이 새어 나온다. 그리고 그것들은 나의 저항성을 속수무책으로 무너뜨린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가장 아팠던 장면은 결국 도준이가 죽게 되는 장면도 아니고, 연인과 헤어지게 되는 장면도 아니었다.


늘 바위처럼 꼿꼿하고 묵직하게 서 있던 진양철 회장이 일순간 녹아버리듯 어린아이가 된 모습이었다. 그는 사방으로 퍼지며 심연 가장 안쪽에 숨겨 놨을 감정들을 붙잡을 새도 없이 흩뿌렸다.


시간이라는 경사 앞에 그는 끼익-쿵, 끼익-쿵 소리를 반복하다 결국에는 동그란 모양으로 깎여 빠르고 슬프게 굴러 내려갔다.


우연히 보게 된 어떤 할머니의 모습도 한참 지난 지금도 내 머릿속을 떠나지 못한다. 손녀를 발견한 할머니는 금세 아이 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동시에 양 볼에 난 눈물자국을 재빠르게 닦아냈다.

 

열쇠를 집 안에 두고 나온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집 앞에 서서 언제 올지도 모르는 손녀를 기다리며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던 것이다. 그녀의 여린 살만 남기고 깎여 나간 테두리가, 그녀를 꺼끌꺼끌 문질러 댔을 세월이 무색하다.


우리는 모두 늙어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각자의 모양으로 깎여 나가고 있다. 노화란 곧 작아지고 물러지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순식간에 굴러가는 삶 안에서 타성, 악습, 부정적인 사고에 얽매여 있을 틈은 없다. 서로에게 친절하자. 같이 돌바람에 깎여 나가는 처지에 미워하고 배척할 시간도 없다. 조금만 시간을 내 서로의 여린 살을 보듬고 꺼끌꺼끌하게 깎여나간 세월을 부둥켜안아 주자.

 

그렇게 나이 들어가는 삶은 조금 덜 슬프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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