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를 직조하는 얼굴들

얼굴이 가진 선명한 힘
글 입력 2023.05.02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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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순간에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낯선 사람이 길을 물을 때, 왠지 독특한 옷을 입은 사람이 지나갈 때, 발발거리며 산책을 즐기는 강아지가 지나갈 때, 동물성 성분의 음식을 먹을 때, 밤에 잠 못 이룰 때, 마음이 가라앉을 때, 영화를 볼 때, 옷을 고를 때, 진로를 고민할 때, 문장을 쓸 때, 춤을 출 때.

   

선뜻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낯선 상황에서 적절한 길라잡이가 되어주는 것은 익숙한 얼굴들이다. 현재 마주한 대상이나 상황과 관련된 내 주변의 얼굴을 떠올리고 그들을 대입해보는 것이다.


나의 친구 S와 K는 사람들이 좀처럼 관심을 두지 않는 옷을 즐겨 입는데, 힐끔 하는 시선이나 의문을 한 번은 받을 만한 옷차림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그들은 나에게 너무 평범하고도 소중한 영감을 주는 존재들인지라, 독특한 옷을 입은 낯선 이를 만나면 S와 K의 얼굴이 떠올라 이상함보단 다양한 호기심이 먼저 차오른다.


또 다른 친구 D는 반려 강아지 로이와 생활한다. 로이는 가까이에서 교류한 첫 강아지였는데 그와 놀이하고 산책하면서 강아지의 습성이나 감정을 이전보다 더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어떤 강아지를 만나도 두려워 하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꼭 관련된 상황이 아니더라도 그 얼굴이라면 무슨 선택을 했을까, 내 선택이 그 얼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상상해보는 것은 훌륭한 판단 기준이 된다. 어떤 감정과 행동을 선택할지는 얼마나 많은 얼굴을 알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다양한 얼굴을 안다는 것은 보다 적절하게 행동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얼굴은 선명한 힘을 가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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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문학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이것과 관련되는 듯하다. 사람, 나아가 다양한 존재를 다루는 인문학 속에는 다양한 얼굴들이 있다. 그중에 기억하고 싶은 얼굴들을 모아두었다가, 다른 존재를 향한 두려움과 분노가 아닌 호기심과 존경의 연료로 태우는 감각을 즐긴다.


애석하게도 ‘연료’ 모으기는 게을러지기 쉬운 행동 중 하나이다. 의식하지 않고 삶에 휩쓸리다 보면 어느새 연료 게이지는 바닥을 달리기 십상이다. 꾸준히 존경 어린 호기심을 갖기 위해 최근 새로운 독서클럽을 만들었다. 구성원은 나와 ‘현’과 ‘진’이다.


‘현’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로 일상 속 많은 선택을 책임져 주는 얼굴 중 하나이다. 현은 세심하고 꼼꼼하게 감정을 느끼고 많은 이야기를 품을 수 있는 그릇을 갖고 있다. 감정에 있어서 나와 정반대의 행세를 보이는 현은 나에게 다양한 결의 감각을 알려준다. 훌륭한 만담꾼이기도 한 그는 흥미로운 이야기와 재미를 책임져 주고 있기도 하다.


진’은 ‘현’의 친구로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의 극히 일부분을 관찰했을 때, 현과 마찬가지로 세심하고 깊은 감정의 그릇을 갖고 있고 예민한 포착력을 지닌 것 같다고 느꼈다. 누군가의 마음을 또렷하게 궁금해하는 눈빛에 얼마나 많은 얼굴들이 담겨있을지 상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제 한 차례의 모임이 성사된, 세련된 형식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신생 독서클럽이지만, 단 한 번의 만남으로도 기대는 차올랐다. 다른 이의 이야기를 쉽게 저버리는 세상 속에서 누군가에게 집중하는 눈과 귀를 바라보는 것은 그 자체로 훌륭한 재미이기 때문이다.


각자 수집해 온 문장을 공유하고, 문장과 삶이 연결되는 지점의 고민과 생각을 주고받으면서 우리의 얼굴은 더욱 선명해졌으리라 믿는다. 이 모임을 통해 얼마나 더 많은 나를, 그대들을, 얼굴들을 마주할 수 있을지.


이 모임의 궁극적인 목표는 '나도 누군가의 얼굴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내리기 위해 정진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떠올린다. 나 같은 엉망을 생각하고, 찾아주고, 떠올리는 타자를 당최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모두에게 있을 것이니까.

 

어느 정도의 의심과 의문을 절대 내려놓지 못하겠지만, 그저 누군가의 얼굴이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사랑 받음의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으리라 조금씩 믿어 보기로 했다. 얼굴의 의미는 각자가 부여할 영역이기에, 마음의 환율 역시 서로가 고유하게 측정할 일이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에게 더 선명한 얼굴이 되기 위한 사랑을 지속하는 것이다.


결국 마주한 얼굴들에게 삶을 빚진다. 매 순간의 선택도, 살아가야 할 이유도, 재미도. 나란 존재를 직조하는 존재들을 되뇌려 노력한다. 그런 것들이 얽히고설켜 만들어내는 무늬의 삶을 아름답게 느끼려 노력한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임을 인정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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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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