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대체 무엇이 예술일까? -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영화]

스타 작가의 탄생
글 입력 2023.05.0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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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소더비 경매에서 한 작품이 낙찰되자마자 파쇄된 일이 있었다. 사전에 특수 제작된 액자에 파쇄기가 들어 있어 원격 제어로 그림을 갈아버린 것이다. 예술의 상업성을 비판하려 했지만 파쇄기의 오작동으로 그림은 반 정도만 파쇄되었고, 그 해프닝을 통해 오히려 작품의 값이 더 올라버렸다.

 

이런 파격적인 행보를 보임에도 여전히 베일에 싸인 작가, 뱅크시가 감독하고 출연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2010년 개봉한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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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처음 본 건 꽤 오래전이었다. 예술에 대한 내용과 신나는 음악, 중간중간 나오는 뱅크시의 유머 덕분에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고 물을 때면 언제나 이 영화를 꼽곤 했다.

 

뱅크시도 영화에 출연하지만 얼굴을 가리는 후드를 뒤집어쓴 채 변조된 음성으로 등장한다. 이야기는 미국에서 빈티지 숍을 운영하는 프랑스인 티에리 구에타를 통해 전개된다. 그는 헌 옷을 50달러에 사서 최대 5000달러까지 만들어 판매한다. 매일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영상으로 담아서 주변인들의 원성을 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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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리의 사촌은 '스페이스 인베이더'라는 유명한 스트리트 아티스트이다. 어느 날부터 그가 작업하는 모습을 찍어 영상으로 남기고, 불법으로 작품을 설치하다 경찰에게 발각되어 도망을 다니기도 한다. 그러다 다른 많은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을 만나고 이렇게 길거리를 캔버스 삼아 불법적이고 위험한 일들을 벌이는 스트리트 아티스트의 삶이 재미있다고 느껴 그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한다.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을 따라다니다 보니 뱅크시에 대해 모를 수 없었다. 뱅크시는 권위 있는 미술관에 자신의 작품을 몰래 걸고 도망가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지만 아무도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작가이다. 뱅크시를 만나고 싶어 방법을 찾던 어느날, 우연히 그를 만나게 된다.

 

뱅크시에게 좋은 설치 장소를 안내하며 함께 다니다가 티에리 자신의 예술 작업을 하게 된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다음 그것을 작은 투명 스티커로 만들어 이곳저곳에 붙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규모가 큰 스텐실 작업까지 한다.

 

그러던 중 뱅크시는 미국의 한 창고에서 전시회를 열고,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공공기물 파손죄로 여겨지던 스트리트 아트가 주류 예술계의 조명을 받으며 소더비에서 고가에 팔리기도 한다. 돈에 관한 것이 아니었던 스트리트 아트가 돈이 된 것이다. 그래서 뱅크시는, 티에리가 여태까지 찍은 것들로 스트리트 아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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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리는 11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이 모든 순간들을 카메라로 담아야 했기에 매일 캠코더를 들고 다니며 모든 순간을 녹화하는 버릇이 생겼다. 늘 찍기는 했는데 어떻게 그만두는지 몰랐고, 다큐멘터리를 만든 적도 없었다. 당연한 수순으로 티에리가 만든 영화는 90분짜리 해괴한 영상물이 되었다. 이에 뱅크시는 그냥 테이프를 나에게 주고, 당신은 스트리트 아트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티에리는 그렇게 예술 작업에 몰두하고, 그의 작업은 모두 'Brainwash(세뇌)'를 주제로 한 것이니 예명을 '미스터 브레인워시'로 정하기로 한다. 그 시기의 많은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이 이미 갤러리로 영역을 옮긴 상황이었기에 티에리도 상업적 규모의 전시회를 준비한다.

 

실크스크린 스튜디오의 기술자와 디자이너들과 협업하여 전시회를 준비하고, 많은 사람들이 설치부터 홍보까지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그 결과 티에리의 전시회 Life is Beautiful은 신문 1면에 나게 된다.

 

오픈을 몇 시간 앞둔 상황, 신문에서 전시회 광고를 보고 온 많은 사람들이 전시장 밖에 줄을 서 있다. 하지만 전시장 내부는 아직 대부분의 벽이 비어 있는 상황이다. 티에리는 직감이 이끄는 대로 작품 가격을 정하고 어찌어찌 설치를 끝마친다.

 

이렇게 열린 전시회는 대성공이었다. 작품을 팔아 백만 달러에 가까운 수익을 냈고, 마이애미, 뉴욕, 런던, 파리, 심지어는 베이징에서까지 티에리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뱅크시의 말에 따르면, 티에리는 유명한 아이콘들을 무의미해질 때까지 반복함으로써 하나의 표현을 만들었다. 무의미를 만든 것이다. 뱅크시는 티에리의 성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며, 이전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예술을 해보지 않겠냐고 권하곤 했으나 이제는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아마도 티에리는 처음부터 천재였을 것이다. 운이 좀 좋았던 것 같다. 어쩌면 예술이 약간의 농담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

 

- 뱅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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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라는 제목은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보고 출구로 나가려면 반드시 선물 가게를 지나야 한다는 뜻으로, 예술의 상업성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자신을 포함한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의 무대가 거리에서 미술관으로 옮겨간 지금, 뱅크시는 또 어떤 메시지를 던질까?

 

2016년 한국에서도 미스터 브레인워시의 전시회가 열렸다. 'Life is Beautiful'을 주제로 유쾌한 농담을 던지는 그의 작품들은 전 세계의 미술 애호가들을 사로잡았다. 지난해에는 코엑스에서 어반&스트리트 아트페어 <어반 브레이크>가 열렸다. 키아프(Kiaf)나 화랑미술제를 비롯한 많은 아트페어들과 같은 공간에서 거리 예술 행사가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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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리는 순식간에 작품으로 많은 수익을 내게 되었다. 그의 작품이 비싼 값에 팔렸다고 해서 높은 가치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혹은, 그가 미술을 배우지 않았고 운 좋게 스타덤에 올랐다고 해서 그의 작품에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예술의 가치는 어떻게 매길 수 있을까? 티에리는 예술가일까? 만약 아니라면, 누가 예술가일까?

 

티에리가 빈티지 숍을 운영하던 당시 헌 옷을 50달러에 사서 5000달러에 판 것처럼, 예술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그 값이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예술은 무엇일까?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 사이의 경계가 혼란스러워진 지금, 미니멀 아티스트인 도널드 저드의 말로 이 글을 마친다.

 

 

"비미술", "반미술", "비미술 미술", "반미술 미술"은 쓸모가 없다. 누군가가 자신의 작품을 예술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예술이다.

 

("Non-art", "anti-art", "non-art art" and "anti-art art" are useless. If someone says his work is art, it's art.)

 

 

[김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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