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죽음 전에는 삶이 있으니 - 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
글 입력 2023.04.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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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부터 나는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죽음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고, 죽으면 어떻게 될지 등을 자유롭게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게 좋았다.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다 보면 같은 주제라 할지라도 생각이 시시때때로 변하고, 나의 논리에 맞지 않게 이랬다 저랬다 말이 달리지기도 한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톨스토이의 명언 중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는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
 


나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톨스토이의 말이 조금은 바보같이 느껴졌다. 우리는 겨우살이에 대한 예측은 할 수 있지만, 죽음에 대한 예측은 할 수 없다. 내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죽음’ 자체만 확실할 뿐, 그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을 준비하겠는가? 우리는 당장 내일 일을 갈 준비로 바쁜데, 불확실한 죽음까지 준비할 사정이 되는가 싶었다.

 

조금 지나서는 톨스토이의 말에 공감이 되었다. 사람들은 항상 죽음과 맞닿아 있으면서 왜 그것에 대해 말하고 생각하기는 꺼려 할까? 죽기 전에 이루고 싶은 것들을 생각해보면 안 되는 건지, 죽음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죽은 후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지(혹은 완전히 지워지고 싶은지) 따위를 말할 수는 없는 걸까 등의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또 지나서는 그렇게 죽음을 인식하다 보면 지금 내가 서 있는 삶을 완전히 영위할 수 있을까 싶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공부를 해야 하는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저축을 해야 하는가,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 오늘 이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가 같은 조금은 어긋나고 못말리며, 한편으로는 사실이라 힘 빠지는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만큼 죽음은 별거 아니면서 복잡하고, 가벼우면서 무겁고, 일상적이면서 낯선 무언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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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싶은 할머니의 이야기다. 매 장마다 할머니의 현재 일살과 할머니의 과거 회상이 같이 전개된다. 유도라 허니셋은 본인이 모습을 생각하며, 그리고 본인의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며 선택하는 죽음을 소원하게 된다.


 

내 나이가 여든다섯이에요. 나는 늙었고 피곤하고 외로워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보고 싶은 사람도 없어요. 우울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 단지 삶이 끝났을 뿐이에요. 요양원애서 시끄러운 텔레비전 앞에 앉아 기저귀에 오줌이나 지리면서 죽고 싶지는 않다고요. 나는 품위를 갖추고 조용하게 세상을 뜨고 싶어요.

 


그러나 당연하듯 이 죽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유도라는 이 일을 담당하는 기관의 직원과 박사와 여러 번 대화하고, 서류를 여러 번 제출해야 했다. 그렇게 죽음을 준비하는 중 유도라에게는 재미있는 이웃이 생긴다. 바로 어린 소녀 ‘로즈’의 가족이다. 로즈는 처음에는 유도라에게 조금은 귀찮은 존재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소녀는 유도라에게 소중한 친구가 된다.

 

로즈로 인해 유도라는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변화를 맞게 된다. 스탠리라는 또 다른 노인과 친구가 되기도 하고, 그렇게 친구가 된 스탠리를 따라 파티에 가기도 하고, 파티에 가기 위한 쇼핑을 하기도 하고, 로즈의 동생 낳는 것을 돕게 되기도 하는 등으로 말이다. 유도라는 그 과정에서 어린 시절 가지고 있던 죄책감이나 아픈 마음들을 조금씩 치유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나오지만, 그게 주가 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독자를 우울하지 않게 만들고 있다. 유도라의 과거 이야기를 읽으며 분노를 느끼게 되기도 하고, 어느 순간은 유도라의 선택들이 미련하게 느껴지기도 할 만큼 책 읽는 내내 유도라의 삶에 푹 빠져 버리게 만들기도 했다.

 

책에서는 크게는 아니지만 독자로 하여금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만드는 말들이 조금씩 등장한다.


  
"죽음은 탄생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탄생은 기뻐하지만 죽음은 두려워하죠.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이 일을 하면서 이런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많이 만나봤고 그 여정을 함께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죽음의 순간이 사랑, 웃움, 눈물, 희망, 기쁨으로 가득 찬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두려운 순간도 있어요. 그럴 때는 그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게 통증 완화 팀과 함께합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좋은 죽음이 가능하도록, 그리고 남은 이들이 긍정적인 기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저는 사람들이 편안하고 두려움 없이 이 세상을 떠나길 바랍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두려워해야 하는 대상은 결코 아닙니다."
 
"모든 건 다 순간이야. 영원히 지속되는 건 없지."
 
"저는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근거 없는 믿음과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우리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말할 줄 알아야 하고 성숙한 어른으로서 죽음에 대해 논의해야 해요."

"명심해야 할 것은, 남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거야."
 


나는 사실 이 책을 죽음에 대해 조금 더 철학적이고, 죽음 그 자체에 시선을 두고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읽어 보기로 마음 먹은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것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 <“삶이 끝났다”라고 말하던 노인에게 그를 살도록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 생겼고, 노인은 그들과 함께 끝을 준비하게 되는 이야기> 쯤이 이 소설의 줄거리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 나름대로 매력적이었다. 누군가의 오랜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이 어린 아이의 순수한 마음이고, 죽음이라는 것이 마냥 두렵고 무거운 것인 아니지만 그 앞에서는 신중해야 함을 놓치지 않고 말하고 있다. 누군가의 탄생과 죽음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 현실적인 모습도 소설 속에는 잘 담겨 있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소설 <고독 공포를 줄여주는 전기의자(최옥정)>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생각보다 죽음은 조용하고 일상적인 일이었다. 더 놀라운 건 죽음은 굉장히 빨리 잊힌다는 사실이었다. 저 사람이 없으면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울부짖던 극도로 의존적이던 가족도 죽음과 함께 후닥닥 자기 자리를 찾았다.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의 삶을 금방 자유롭게 했다. 즉음은 기다리는 일이 어렵지 막상 일어나면 그냥 일상일 뿐이었다.
 


죽음이라는 것은 참으로 알 수 없는 듯하다. 살 사람은 살아야 하고, 그럼에도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어렵다. 또 어떤 이의 죽음은 가십거리가 되어 버리곤 한다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만들기도 한다.


죽음을 아무렇지 않은 것이라고 말을 많이 하고, 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싶다가도, 그것이 진정 죽음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게 닿아 그를 자극하는 말이 되면 어쩌나 싶기도 하다.

 

또한 사실 안락사 이야기는 내가 중학교 때부터 도덕 교과서에 있을 정도로 그 논쟁이 어어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와같이 긴 과정을 통해 사람이 직접 선택하여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올바르다 싶다가도, 안락사가 허용되면 그것이 올곧이 본인의 선택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을까. 누군가의 눈치로, 암묵적인 강요로 이루어지지는 않을까 따위의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죽음만을 기다리던 이가 어떻게 삶을 바라보게 되었는지가 참으로 따뜻하고 정겹게 그려지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본인은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독자들이 한 번씩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에디터 명함.jpg

 

 

[박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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