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음식으로 남긴 기록이자 증거, 소울푸드

글 입력 2023.04.27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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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푸드란, 주로 자신만의 추억을 간직한 음식이나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을 말한다. 영혼을 뜻하는 soul, 음식을 뜻하는 food가 합쳐진 말로, 국립국어원에서는 ‘위안 음식’이라는 순화어로 명명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좋아하는 음식과 소울푸드는 완전히 다르다. 좋아하는 음식은 본인의 입맛에 가장 잘 맞고,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음식이다. 소울푸드는 좋아하는 마음에서 나아가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하고, 추억이 있는 음식이다. 이야기와 감정이 있는 음식이나 다름없어서 ‘소울푸드’라는 명칭만 들어도 마음이 든든하고 편안해진다. 때로는 아련함이나 그리움이 밀려오기도 한다. 나의 소울푸드는 꽤 많은데 그중 세 가지만 뽑아봤다.

 

 


식사 메뉴 : 생선요리와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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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리지 않고 뭐든 잘 먹고, 낯선 음식에 도전도 잘하는 편이다. 어릴 때부터 주는 대로 잘 먹었지만, 한 가지 음식만 매일 끼니마다 먹는 건 선호하지 않았다. 골고루 먹는 걸 좋아해서 반찬이 적은 것보다는 많은 걸 선호했다. 그래도 주어진 밥상에서 먹는 즐거움을 찾으려해서 같은 메뉴가 계속 나오거나 반찬이 적더라도 불평불만을 갖지 않고 맛있게 잘 먹었다. 


구이, 찌개, 찜, 전 등 다양한 생선요리가 우리 집 식사 메뉴 단골이었다. 그중 생선구이는 거의 매일 저녁 식탁 위에 올라왔다. 다른 음식은 아무리 좋아해도 매일 끼니마다 먹으면 질렸는데, 생선요리는 예외였다. 한 가지 종류로만 구이로 계속 올라와도 한 번도 질린 적이 없었다. 언제나 처음처럼 맛있게 먹었다. 엄마한테 들어보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생선을 좋아해서 매일 생선을 줘도 잘 먹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좋아하는 음식 1위가 생선요리다. 


요리 솜씨가 좋은 엄마 덕분에 비린내보다는 생선 특유의 향을 즐길 수 있었다. 육즙처럼 살코기에서 양념이나 기름이 생선의 맛과 어우러져 나오는 게 좋았다. 살코기가 부드러워 입에 넣으면 적당한 식감과 함께 살살 녹았다. 고기에 비해 먹고 나서 더부룩하지 않아 고기보다 생선이 더 좋았다.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한 생선구이의 맛이 좋아서 생선요리 중 구이를 가장 좋아했다. 


생선 요리가 나오면 항상 개인 접시가 놓여있었다. 찌개나 찜 같은 경우에는 먹고 싶은 만큼 개인 접시에 덜어가며 먹었다. 구이는 개인 접시에 인당 1~2토막씩 주셨다. 나는 이 점이 좋았다. 나만 많이 먹는 건 아닌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내 몫으로 놓인 생선을 볼 때마다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편하게 먹을 수 있어 좋았다. 


거의 매일 인당 1~2토막씩 주어지는 생선요리가 마냥 좋았는데 문득 의문점이 들었다. 형편이 넉넉한 편은 아니라 늘 생선을 구매하는 게 부담될 텐데, 매일 먹을 수 있는 게 이상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엄마의 마음이라는 답이 나왔다. 


어릴 때부터 스물여덟까지 아무리 잘 먹어도 항상 체중미달이었다. 왜소하고 마른 데다 잔병치레까지 많아서 부모님은 항상 걱정하셨다. 그런 딸을 위해 가장 좋아하는 반찬으로 밥을 좀 더 많이 먹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늘 생선요리를 부족하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건 엄마의 마음 덕분이라는 생각에 그 후로 생선요리가 더욱 좋아졌다. 생선요리가 있는 밥상을 볼 때마다 마음이 따스해졌다.


자취하면서부터는 생선요리를 쉽게 볼 수 없었다. 레시피를 찾아보니 생선요리는 쉽지 않은 요리였고, 기름과 냄새가 잘 빠지지 않아 원룸이나 오피스텔에서 요리하기 어려운 메뉴였다. 손질, 요리, 뒷정리까지 손이 많이 가고, 어려운 생선요리를 엄마는 싫은 내색 없이 거의 매일 해주셨다. 생선요리는 큰 정성이 담긴 음식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음식 1순위인 생선요리는 자연스럽게 나의 소울푸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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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종류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데, 라면을 제일 좋아한다. 라면은 생선요리처럼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은 아니지만, 자주 찾았다. 지금은 건강을 생각해서 자제하는 중이다. 생선요리는 좋아하는 음식에서 소울푸드로 발전했다면, 라면이 소울푸드가 된 건 추억의 영향이 더 크다. 


우리 가족은 야식을 자주 먹었는데, 특히 아빠와 내가 야식을 좋아했다. 아빠와 나는 부녀관계이자 야식 메이트였다. 아빠와 야식 시간을 가질 때마다 기뻤다. 엄마가 일을 하면서부터 내가 항상 밥상을 차렸는데, 가끔 하기 싫었다.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고, 국이나 찌개를 가스 불에 데워 식탁 위에 올려놓기만 하면 되는데 귀찮았다. 

 

힘든 날에도 아플 때도 친구들과 놀고 싶을 때도 늘 동생의 밥과 아빠의 식사를 챙겨야 하는 상황에 지칠 때도 있었다. 한편으론 나는 보호 받고 챙김 받아야 할 미성년자인데 엄마가 집에 없으면 늘 내가 아빠의 식사를 챙겨야 한다는 점이 억울하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아빠가 담당인 야식 시간이 좋았다. 아빠가 만들어준 음식을 함께 먹는 시간이 행복했다. 


우리의 야식 단골 메뉴는 라면이었는데 아빠는 라면이 좀 지겨웠는지, 기본 라면에 무언가를 첨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장 기본적인 파나 계란을 넣었고, 다음에는 고추장, 그다음에는 양파 마지막에는 국물 없이 볶음면처럼 하기도 했다. 모양새가 그다지 먹음직스러워 보이지 않은 라면도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모두 맛있었다. 


가장 맛있었던 라면은 고추장을 넣고 끓인 라면이었다. 느끼하고 인공적인 맛이 덜하고 훨씬 개운하고, 담백했다. 라면 사리를 넣은 찌개 같기도 했다. 라면 하나에 이것저것 도전해 보며 신나 보이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덩달아 신이 났다. 아빠의 요리하는 즐거움과 정성이 담긴 라면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가공식품(군것질거리) :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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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규칙이 있었다. 남동생이 유아기가 지났는데도 아토피가 가라앉지 않고 점점 더 심해져서 엄마는 가공식품을 먹지 못하게 했다. 학교에 있을 때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가공식품을 사서 먹었지만, 집 안에서는 그 규칙을 철저하게 지켰다. 엄마는 가공식품을 못 먹게 하는 대신 매작과(생강 맛의 전통 과자), 도넛 등 다양한 간식을 직접 만들어주셨다. 엄마가 일을 하게 되면서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지자, 군것질거리로 소량의 가공식품을 사 놓으셨다. 하지만 엄마가 정해놓은 횟수대로만 먹어야 했다. 예를 들면 이틀에 한 봉지 이런 식이었다. 대신 돌아서면 배고플 성장기인 점을 고려해 카스타드와 오예스는 다른 가공식품보다 좀 더 먹을 수 있었다. 가장 많이 먹을 수 있었던 것은 빵이었다.


동생의 아토피 때문에 나까지 가공식품을 못 먹는 상황이 억울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억울하거나 갑갑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침 나는 빵순이라고 불릴 정도로 빵을 매우 좋아했기 때문이다.


아빠도 나만큼 빵을 좋아했다. 그래서 아빠는 여유가 될 때마다 빵을 사 오시곤 했다. 손에는 빵이 들어 있는 봉투가, 얼굴에는 뿌듯함과 신남이 있었다.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재미있었던 건 아빠가 사 온 빵들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아빠의 pick은 맘모스빵, 소보로, 고로케, (길쭉하게 생긴) 생크림빵, 단팥빵, 완두앙금빵, 꽈배기, 밤 식빵, 여러 개의 작은 빵이 붙어있는 이름 모르는 빵이었다. 이 빵들을 모두 한꺼번에 사 온 게 아니라 돌아가며 몇 개씩 사 오셨다. 빵집에 자주 가다 보면 새로운 빵들이 눈에 들어왔을 텐데, 아빠의 pick은 한결같았다.


아빠가 좋아하는 것만 사 오고 내 취향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아빠가 고른 빵들을 구경하는 게 마냥 재밌었다. 지금도 빵집에서 아빠의 pick 들을 보면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사실 고로케, 생크림빵, 꽈배기, 이름 모르는 빵을 제외하고 나머지 빵들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빵순이인데도 그 나머지 빵들은 아무리 먹어도 맛있지 않았다. 그 빵들을 먹으며 아빠는 어디서 맛있다고 느낀 건지 연구해 본 적도 있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뿌듯함과 신남을 가득 안고 빵을 사 온 아빠의 모습과 한결같은 아빠의 취향을 재밌어했던 내 모습이 있는 추억으로 빵은 나의 소울푸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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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요리, 라면, 빵은 먹을 때마다 힘이 난다. 헛헛한 마음이 채워지고 위안이 된다. 부모님이 생각나거나 추억이 떠오르며, 힘든 하루 끝에 먹으면 보상받는 기분도 든다. 


나한테 ‘소울푸드’는 힘들었던 순간이 많았지만 빛나는 순간들도 많았다고 증명해 주고, 추억과 소중한 사람들을 기록해 준 존재이다. 그러므로 나의 ‘소울푸드’는 음식으로 남긴 기록이자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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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득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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