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쩌다 어른에서 비로소 어른이 되기까지 - 어쩌다 어른

글 입력 2023.04.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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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유명한 수식어가 되면서부터 그 뒤에 어떤 단어가 붙어도 크게 이상하지 않은지 오래지만, 그래도 가장 자연스럽고 어쩐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위치는 ‘어른’ 앞일 것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가지게 되는 이름표가 있다. 그중에서 내게 가장 무겁게 다가오는 건 ‘어른’이라는 이름표다. 그 무게만큼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는 싶은데 어떻게 살아야 그렇게 되는지 몰랐다. 물론 지금이라고 아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계속 고민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에 비슷해지지 않을까,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다 어른>은 너무도 쉽게 내 눈길을 잡아끈 책이었다. 첫인상만큼이나 내면도 인상적이었다. 저자의 일상과 취향, 크고 작은 모든 이야기를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와 함께 풀어낸 사색이 돋보였고, 그 다양한 사색의 줄기가 모여 ‘서툴고 미숙하지만 꽤 괜찮은 어른’이라는 올곧은 방향을 향해 당차게 뻗어가는 것 같아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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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두렵다.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 같아서. 어쩔 땐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몰라 두렵다. 엉뚱한 선택을 하고 후회한다. 사람들은 이 길로 가라 하는데 자꾸 옆길로 샌다. 내가 선택해서 샛길로 가놓고는, 두고 온 길을 동경한다. 비틀비틀 지그재그 매끄럽지 못하다. 그래도 계속 살아간다. 왜냐고 묻는다면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것만이 나를 아프게 한다. 아름답고 싶고, 잘해보고 싶고, 꽤 괜찮은 모습으로 만들어 보고픈 내 삶이라서.

 

p. 150, 151

 

 

스스로에게 지칠 때가 있다. 무슨 일이든 너무 신중하고 어렵게 생각해서 나 자신을 괴롭히는 내가 싫어지는 때도 있다. 생각하는 것을 잠시라도 멈추고, 긴장하지 말고, 몸에 힘을 빼고 물 흐르듯이 살아가는 게 최선의 방법일 수 있는데 그렇게 할 수 없는 내 성향을 자꾸만 탓한다. 대체 왜 나이를 먹어도 쉬워지는 게 하나도 없는 거냐고, 왜 자꾸 작은 일에도 움찔하며 크게 반응하는 거냐고 따진다.


조심성 있고 신중한 것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있지만, 날 것으로 보자면 겁이 많고 융통성과 여유를 찾아보기 힘든 모습인 거다. 어쩌다 이렇게 겁이 많아져서 한 편의 글을 지어내는 데에도 망설이는 일이 잦아지는지. 제대로 된 글을 쓰고 있는 건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 건지, 괜찮은 미래를 그려가고 있는 건지,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도 되는 건지, 또 걱정하고 또 생각한다. 벗어날 수 없는 쳇바퀴에 갇혀있는 기분이다.


그런 내 모습은 내가 보아도 정말 멋이 없고 어쩐지 찌질해 보여서 노력해 보아도 도저히 좋아지지가 않았다. 그럴 만한 명분이 없어서 인지,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괜찮다고 자기 합리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분명 그랬는데,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고 싶어졌다. 내가 이토록 멋이 없고 찌질할 수밖에 없는 건 내가 그만큼 내 삶에 진심이고, 내 인생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나 자신이 때때로 미워 괴로웠던 거라고. 사랑하는 것만이 나를 아프게 하니까.

  

누군가 이상한 논리의 지독한 자기 합리화라고 말해도 할 말 없다. 그래도 괜찮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려고, 내 인생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들로 채우고 싶어서,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언젠가는 ‘괜찮네’하며 잠시라도 흡족하고 싶어서라면. 다른 무엇도 아니고 그게 사랑이고 진심이라 그런 거라면 아주 오랜 시간을 쳇바퀴에 갇혀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

 

 

스무 살의 나와 지금의 나, 분명 지금의 나는 스무 살의 나보단 나 자신을 덜 아프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가 갖지 못한, 잘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에 대해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고 담담히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조금씩, 나 자신과, 세상과 화해하며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마흔이 되어도 쉰이 되어도 여전히 성장통은 있을 테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덜 쓰라리기를 기대하며.

 

p. 172

 


예전에는 어떤 일이 생겨도 초연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으며 어떤 일을 하든 자연스러운 사람이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더해서, 쉽게 상처받지 않아야 했다. 그리고 또 더해서, 대범하고 용기 있어야 했다.


지금도 그런 모습을 동경하는 건 변함없다. 다만 어른이라고 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는 나이가 되었다. 꼭 그렇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그렇지 않은 어른이 더 많을 수 있다는 것도. 그리고 나도 그 과반수에 속한다는 것도.


현실과 이상의 간격은 매우 크다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그래서 나 자신이 아직 내가 동경하는 어른의 모습을 닮지 않았다는 것을, 아니 닮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여전히 어렵다. 그게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은 위로로 다가왔다. “내가 갖지 못한, 잘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에 대해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고 담담히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조금씩, 나 자신과, 세상과 화해하며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누구나 공평하게 새해가 되면 새로운 나이를 만나고, 처음으로 그 나이의 자신과 마주한다. ‘처음’ 접한 것에는 자연스럽고 유연할 수 없다. 상처받지 않는 것도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그렇지 않은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고 조금씩 인정해야겠다. 그렇게 나도 천천히 화해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

 

사실 앞서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했지만, 언젠가 몇 번은 이런 생각도 했었다. 어쩌다 어른이 된 것뿐인데 그 와중에 또 괜찮은 어른까지 되어야 되나? 사회의 한 구성원치고는 참, 뭐랄까, 상당히 무책임한(?)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양심에 찔리기도 했다. “실제로 저렇게 늙어야지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은 반면,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싶은 사람은 왜 그리 많은지.” 대목에서는 반성하기도 했고.


저자는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교무실로 호출한 뒤부터 글을 잘 쓰는 아이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너의 시가 좋다, 앞으로도 기대할게라는 선생님의 한마디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기대한다는 말은 기분 좋으면서 부담스러운 이상한 말이다. 경쟁이나 라이벌이 성장 동력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기대해 주는 사람이 던져준 부담감도 사람을 성장시키기기도 한다. 그리고 그 ‘기대하는 사람’이 반드시 타인일 필요는 없다. 스스로에게 ‘괜찮은 어른, 나쁘지 않은 어른’이라는 기대를 심어주면 조금씩 달라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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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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