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음 타자는요 [공간]

타(他)자 또는 타(打)자
글 입력 2023.04.2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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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민에게 서울은 멀지만 가까운 곳이다.

 

최소 한 시간 이상 이동해야만 밟을 수 있는 땅이지만, 문화생활 혹은 쇼핑을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방문해야 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주말만 되면 학교와 직장에서 풀려난 이들의 발걸음이 서울로 쏠리기 때문에, 일찍이 차편을 예약해 놓지 않았다면 그날의 서울 방문은 무산이 될 수도 있다. 오가는 길이 불편하다는 점도, 트렌드가 반영된 다양한 공간과 상품들을 만나려면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서울에 도착하면 너무나도 익숙한 냄새가 난다. 기차역의 쇠 냄새나 길 위를 점령한 버스들이 내뱉는 매연의 냄새와 같은, 우리 지역에서 풍기는 것과 다르지 않은 냄새들 말이다. 그리고 휴대 전화에 시선을 고정하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은 경기도민이 살던 지역에서도 심심치 않게 보던 모습들이어서, 내가 방금 한 시간가량 기차를 타고 온 것이 아니었더라면 발 디디고 서 있는 그곳을 경기도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다. 그만큼 이젠 수도권과 서울의 격차가 그리 크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수준에 다다른 것이다. 여기나 저기나, 다 사람 사는 곳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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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을 위해 상경하는 경기도민은,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려면 서울에 도착하고서도 적지 않은 시간을 길에 버려야 한다. 어떤 교통수단으로 서울에 도착했느냐에 따라 '힙하다는' 동네에 가는 데 걸리는 시간도 다 다르다. 버스와 기차, 지하철에 몸을 싣고 멍 때리는 순간, 문득 들었던 생각들. 오늘은 공간과 동네,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온라인인지, 오프라인인지.


  

급변하는 트렌드에 맞춰, 현 세대가 찾는 공간들의 형태도 옷 갈아입듯 빠르게 변화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트렌드'가 '트렌드'가 아니게 되는 시대의 간격이 많이 짧아진 것을 가장 잘 느끼게 하는 것이 공간의 인테리어와 컨셉인 것 같다. 앞에서 언급한 성수동도 마찬가지다. '성수동'의 번화를 이끈 것이 어떤 공간인지는 모르지만, 아마 그때 가장 빛나는 감각을 가진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공간이 어딘지 특정할 수 없다는 점이 반증해 주듯이, 새로운 감각을 지닌 공간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사랑받고 있다.

 

이런 현상이 성수동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익선동이 가장 트렌디했는데, 지금은 을지로가 가장 힙하고. 을지로가 가장 최신의 동네인가 했더니, 용리단길이 또 핫하다고 하고. 사실 지방에 살고, 학교 공부 외에 딱히 큰 관심을 두는 분야가 없는 나에겐 다 생소하긴 하다. 

 

요즘은 사람들 사이에서 '핫플'로 통하는 번화가가 참 셀 수 없이 많아진 것 같다. 그리고 그곳의 공간들이 다 하나같이 '새로운 것', '이목을 이끄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생각하다 보면, 그런 현상이 서울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 외에 수원의 어디, 천안의 어디 등등, 서울보다는 파급력이 조금 떨어질 수는 있지만 나름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진 동네가 하나 둘 등장하고 있긴 하니까.

 

그리고 그 공간과 동네들에 대한 정보는 온라인에서 얻을 수 있다. 온라인 중에서도 특정하자면, 인스타그램인 것 같다. '좋은 곳', 또는 '좋은 것'을 보았다며 남기는 사람들의 인증샷과 댓글들이 가장 활발하게 오가는 플랫폼이니까. 너무 비약인가, 싶기도 한데, 트렌드의 흐름과 세련된 공간의 시작도 SNS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변화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들이 가장 많이 담론을 펼치고 여론을 형성하는 곳이 가상의 공간인 인스타그램이다.

 

그래서 추측해 본 건데, 트렌드의 급변을 적시에 반영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과 달리, 공간은 유형(有形)인지라 그 파도를 감당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아무리 새롭다 해도 이제는 더 새로운 것이 눈 깜짝할 새 나타나는 시대인데, 그 참신함을 모두 반영하기엔 동네의 크기도, 공간의 개수도 한정되어 있다. 공간을 바꾼다 해도, 원래 가지고 있는 형태와 위치를 바꾸기엔 무리가 있는 것이다. 바꾸더라도, 또 금방 새로운 것이 나타나고.

 

월세의 인상으로 인해 쫓겨나 자릿값이 낮은 동네를 찾아야 하는 영세한 업자들의 애환, 즉 젠트리피케이션이 주된 이유겠지만, 서울 안에 참신한 공간들이 모인 동네가 여러 개인 것에는 위와 같은 요인도 반영된다고 생각한다. 월세가 싼 곳을 찾아 자리를 옮기더라도, 또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위해 다른 보금자리를 찾더라도 요즘 세대는 곧잘 따라오니까. 공간이 그만한 메리트를 가지고 있다면 말이다.

 

 

 

그 안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OO인


 

소외감이라, 학교 다니면서도 많이 느꼈었다. 반 배정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서 원래 친했던 친구들 사이에 홀로 낀 느낌 다들 느껴본 적 있지 않나. 그와 동류의 감정을 서울 내 교통수단 안에 있을 때 가장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이방인이 된 듯한 느낌' 말이다. 지하철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곳이 익숙한데, 나만 내릴 곳을 놓칠까 전광판을 힐끔거릴 때 특히 그렇다.

  

근데, 그런 감정도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면 싹 사라진다. 그도 그럴 게, 그곳에는 원래 살던 주민보다 타지 사람이 훨씬 많다. 시끌벅적한 거리.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신경 쓴 패션. 눈에 띄게 세련된 가게 앞면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그곳은 오히려 누군가의 고향이라기보다 말 그대로 타지인을 위해 마련된 쉼터 같다.

 

최근에 성수동에 방문했을 때 이 부분을 생전 가장 크게 느꼈던 것 같다. 가는 길이 너무 길어 도착할 때쯤은 지쳐서 몸에 힘이 한 알갱이도 없었는데, 내리고 나니 쉴 곳이 너무 많았다. 그냥 쉬는 곳들도 아니었다. 좋은 것들, 아름다운 것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 앉아서 바라보기만 해도 힐링 되는 곳들이었다. 오히려 앉아 있는 것이 낭비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여기 있는 것들 다 집으로 들고 갈 수도 없는데, 조금 더 가까이서 만져도 보고, 사진도 찍어 놓아야겠다, 싶었다.

 

정신없이 사진 찍고, 맛있는 것 먹고 돌아다니다 보면 또 금방 집에 갈 시간이라 아쉬움을 안고 버스에 오르곤 했다. 그리고 마주하는 것은 지쳐있는 서울 사람들. 집에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이었다. 들떠 있던 마음이 가라앉고 지쳐 있던 몸의 신호를 마주하고 나면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이, 집에 빨리 가고 싶은 사람 1이 된다.

 

버스 창에 머리를 기대고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든 생각이, '아, 성수동 사는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거기서 버티는 거지'였다. 원래는 폐공장들이 모여있던 곳이라지만, 그래도 사람이 살던 곳이었을 텐데. 원래 거기 살던 주민들은 그 시끄럽고 사람 많은 외계와도 같은 동네에서 어떻게 정을 붙이고 살까. 그들에겐 돌아갈 집이 그곳일 텐데. 아무리 좋은 게 많다지만, 그래도. 나라면 현지인보다 타지인이 더 많은 동네에 산다는 게 그다지 반갑진 않을 것 같다. 매일이 익숙할 수 없는 일상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오히려 그곳을 찾은 타지인으로부터의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가치의 팽창과 시대의 향기


 

한 해가 지날 때마다 다음 해의 트렌드를 예측하는 책과 자료들이 쏟아져 나온다. 코로나 이후로 더 많아진 듯한 트렌드 보고서들은, 날을 잡고 읽어도 그 끝을 보기 어렵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와 사회가 중요시하는 가치가 상충할 때도 많고, 어디서 나왔는 지 모를 경향성들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가치 팽창'의 부작용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다양화되고 세분화됨에 따라, 각 집단별로 새롭다고 느끼는 가치들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그들의 산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가치가 다양화되고 많아지다 못해, 사회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팽창하는 것 같다.

  

트렌드를 담고자 하는 공간도 해가 지날 때마다, 또는 분기가 지날 때마다 변화하기 마련이다. 방문하는 입장에서는 온라인을 통해 미리 찾아보는 재미도, 직접 가서 실제로 보는 재미도 있어 좋다만, 그게 현지인들에게도 마냥 좋기만 할까, 싶긴 하다. 원래 그곳에 살던 입장에서는, 젊은 사람들, 또는 특정 계층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유형의 공간들이 생기고 사라지길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새로운 것을 이해하는 것도 노력이 필요할뿐더러, 원래 그 동네만의 분위기도 사라지는 것이다.

 

내가 사는 동네도 지금 재개발이 진행 중이라, 온통 공사판이 되었다. 이전에 아이들이 뛰어놀던 아파트 앞도, 가을이면 온통 황금빛이었던 벌판도 거의 다 사라졌다. 새로운 유형의 사람들이 들어와 집을 짓고 가게를 여는 게 반가우면서도, 예전의 우리 동네가 그리울 때도 종종 있다. 시대의 향기랄까, 유년의 기억들을 담았던 공간들이 사라지는 듯해 아쉬울 때가 많다. 서울도 그렇지 않을까? 어쨌든 그곳도 사람 살던 곳인데, 점점 타지인이 원하는 대로 바뀌어가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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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서울이 어떨진 모르겠지만, 그저 방문하는 이들만을 기다리기만 하는 도시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추억까지도 지켜줄 수 있는 동네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언젠가 타지인이 방문했을 때도, 이곳은 이런 분위기와 추억을 간직한 곳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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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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