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노르웨이의 숲

세나씨에게
글 입력 2023.04.16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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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씨, 막 하루키 상실의 시대를 다 읽었습니다. 밤이 적당히 깊었네요. 종장을 덮기도 전, 오늘, 대낮에 울린 서간문의 알림을 맞닥뜨린 순간으로부터, 그러니까 회사에 있는 동안, 그리고 이따금 혼자 담배를 피느라 멍하니 명정상태에 처해있는 동안에도 나는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머리 안으로는 자꾸만 여러 가지 구절들이 떠오릅니다. 아직 허락을 구하기도 전에, 그것도 지금에 와서는 벌써 다 잊혀, 모조리 지워져 버렸지만요.


그대가 내게 상실의 시대를 권한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로서는 그것을 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강렬한 부름이었거든요. 지난주 토요일이 그래서 아직도 기억에 선히 남아 있습니다. 나는 기억력이 대단히 나쁜 사람이에요. 그것은 나의 축복이기도, 아니 오직 축복이겠습니다만, 그날, 그리스 신화에 대한 강연이 막 끝나갈 때쯤의 오후 햇발은 앉으신 뒤쪽의 책장을 어느 각도로 비집어 들어차 있던지까지도 나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날 우리는 제우스라든지, 아폴론이라든지 그런 이야기를 했더랬습니다. 그리고 디오니소스가 어떻고 헤르메스가 어떻다는 둥 그런 이야기까지 했죠. 나는 이 강연을 퍽 좋아합니다. 아니 매우 그렇다고 해두어야겠네요. 격주에 한 번씩 있는 이 일정이 드물게 외출하는 일이니만큼, 그것이 이따금 미뤄지는 것은 섭섭합니다. 그것을 제하고는 오직 글 쓰는 일상 속, 2주 전에 한번 휴강이 있었으니 꼬박 1달 만이었고, 그날은 1달만큼의 기다림이었습니다. 한편 이맘때쯤의 1달은 꽤나 급변하는 무언가라서, 일기는 놀라울 만치 훌륭한 것이 되어 있었습니다. 강연이 시작되기 전, 꽤 일찍 와 근처 루프탑 카페에서 일광욕을 해주었습니다. 날씨가 과히 좋아서, 나는 그냥 이대로 쭉 있어버릴까 잠시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그날은 그 정도로 아름다운 날이었어요, 하필 말입니다. 좋은 건 한 번에 몰려 오는 것 같아요. 나는 맛있는 반찬을 맨 나중으로 미뤄두는 성격인데 말이지요. 


4시간의 강연이 끝나가는 즈음이니, 아마 18시 30분 어간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겨우내 겪은바, 일몰은 30분 전이 가장 알차더랍니다. 주광이 역력한 것이, 사람이 일몰을 두고 감격하는 순간은 아마 바로 그 시점입니다. 그리고 참 느닷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건 참 느닷없는 일이었어요. 나는 그때 곧 강연이 저물고, 나서는 길로는 곧잘 무엇을 해볼 것이며, 여남은 2주를 또 무엇으로 보낼지를 잠깐 골몰하려는 참이었습니다. 그런 중, 그러니까 즐거운 하루가 저물 즈음 상념의 기로에서, 그대는 내게 와타나베를 닮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상념이 일순 바람에 씻기어 날리듯이 흩지덥니다. 그리곤 곱게 빻여 머리 위로 내리는 듯 착각했습니다. 그 멋진 햇살을 부닥이면서 말이죠. 나는 이 즐거운 오늘이 며칠 더 연장될 것임을 예감하였습니다. 그대로서는 참으로 소박한 말씀이었으리라만, 내겐 하필 이런 전처들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날더러 상실의 시대에 등장하는 와타나베를 닮았다고 말해준 이상, 나는 그것을 읽어야만 했습니다. 누군들 그러지 않았을까요. 더구나 연세가 지극한 좌장께서 '오, 그건 정말이지 그렇군. 이건 진심으로 칭찬이라네.'라고 더얹어주신다면 세상의 어떤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러니까 나처럼 책을 읽지 않는 사람으로서도 읽을 도리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그렇지 않습니까? 만약 책의 내용을 미리 알고 계신 분이라면, 더하여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속들이 아는 사람이라면, 나아가 곧 있어 서간문의 일정이 있을 줄을 미리 아는 사람이었더라면 내가 지금 이렇듯 편지를 쓰게 되는 것이란 한 가지 굳은 사실로 기 정해져 있었음을 알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현실적으로 말해보자면, 내가 그 책을 미리 읽었고, 어깨너머로 곧있어 서간문이 계획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더라도 이 편지는 말씀과 동시에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는 말이 됩니다. 


나는 살면서 누구를 닮았다거나, 누구와 비슷하다거나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손에 꼽습니다. 이제야 나의 자랑스러움이라지만, 그건 한창 자라나는 때에는 이상스러운 일이었어요. 쟤는 누구랑, 얘는 또 다른 누구랑 닮았다고 서로 짝맺기를 하는 중에, 나만 멀뚱히 빠져있는 꼴이 아니겠어요? 그렇게 서로 닮은꼴로써, 닮은 부분만을 매만지며 서로 쉬이 친숙함을 획득하는 모양새를 보고 있자면, 내가 어딘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만은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날 닮았다고 하는 것에는 유독스러운 관심을 가져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서재에서 끝내 책을 덮었습니다. 버스도 지하철도 아닌, 이곳에서 덮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그래야 곧잘 명상, 아니 공상에 빠져들어 갈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나는 호흡을 고르고 책을 음미하며, 둔탁한 기억 속에 몇 가지 잊고 싶지 않은 구절들을 드밀어 넣는 데 필요한 잠깐의 시간조차 마다하고 곧잘 편지의 첫 페이지를 엽니다. 그 정도의 달뜸. 그보다 전에는 세나 씨에게 카카오톡을 했었지요. 거의 책을 덮자마자 서간을 예고하는 카톡을 보내곤, 답장을 기다리지 않은 채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만약 그대에게 괜스러움이나 부담스러움이라면, 당장 모조리 지워버릴 것임에도. 


*


어쩌면 편지를 쓰는 편이 이 책을 기억하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주인공의 생애에 부러울 것이라곤 없었지만 단 한 가지, 실컷 편지를 쓰는 것만은 부러웠거든요. 그건 정말이지 좋은 일일 거예요. 편지를 한 아름 써서 부칠 데가 있다는 사실과 그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란. 부러운 나머지 나는 이렇게 소박한 계기를 밑천 삼아 편지를 쓰렵니다. 날 닮았다고 일컬어진 어느 주인공을 모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편지는 장차 이 책에 대한 기억의 가장 단단한 표지가 되어 줄 것이고, 아주 가끔씩은 편지를 쓰는 와타나베에 대한 단편 기억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것이 어느 길 위를 홀로 거닐다가 불쑥 찾아올지를, 나는 설렙니다. 


한편 나는 짓궂어 책이 다 담아낼 수 없는 시간들, 편지를 써냄과 동시에 생겨나는 것인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들, 그것의 길이가 가지는 차갑고도 단단한 막막함을 부러 생각합니다. 와타나베가 나오코와 레이코에게 편지를 주고받는 일에 대해, 쓰는 이의 기쁨을 공감해버리는 순간 답장을 받기까지의 초조함을 한 가지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단 몇 줄에서 한 장짜리의 분량으로, 30초의 분량으로 그려져 버린 수개월의 기다림에 대해 골몰하는 것입니다. 이내 자신이 없어지더군요. 나는 저처럼 기다림을 꼭 붙잡고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아요. 고로 애초 기다리지 않거나, 기다림을 밀어내는 편이지요. 많이 조급한 편입니다. 그래서 나의 것으로는 서간문이 좋겠습니다. 이건 편지의 형식을 모사하지만, 답장을 기다리게 만드는 것, 예쁜 봉투와 그에 꼭 걸맞은 우편을 고르기 위한 기쁨과 수고스러움마저 지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만약 그런 편지에 대해서라면 나조차도 기다림을 마다하거나 밀어낼 수는 없었을 거에요. 

 

그래서 편히 씁니다. 만약 그렇지 않더라면 나는 쓰지 않았을 거에요. 그러니까 쓰는 기쁨과 동시에 받고자 하는 강박이 웬만큼 커갈 것을 예기하는 순간, 나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쓰지 못하리라는 것을 내가 잘 아는 까닭입니다. 이 부분이 내가 와타나베와 상당히 다른 부분입니다. 그래서 줄곧 궁금했습니다, 나의 어떤 부분이 와타나베를 연상시킨 것일지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어떻게 비추이고 있는지를 궁금해하며 내내 읽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달콤한 오해이더군요. 너무 감미로워서, 그냥 덥석 믿어볼까 생각케 만들 정도로. 왜냐하면 와타나베는, 내가 아직 젊을 때 열렬히 동경하던 모습의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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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당대 일본에는 하루키 열풍이라는 것이 있었다죠? 그 말 만큼은 곧잘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쿨하고 스윗해보였습니다. 냉담히 따뜻했어요. 그래서 비현실적이지만, 왜냐하면 그 두 가지는 현실의 동토 위에선 주로 대류하는 성질을 띠기에, 그러나 여전히 소박한 것이라 능히 존재하리라 믿어보게 만드는, 사실 그리 믿고 싶게 만드는 담뿍한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것쯤은 쉬이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말인즉 소박하고도 비현실적인 멋짐이었다는 것이요, 어딘가 비현실적이나 너무 소박해 그다지 파헤쳐볼 까닭일랑 없는 멋짐이었다는 말입니다. 


짐작건대는 어떤 센티멘털한 음울함이라든지, 적막함이라든지, 어딘가 표백된 담담함에 있어 닮아 보일 수도 있겠거니 생각키도 했지만, 그는 너무 차분합니다. 애초 텅 빈 것처럼 고요했어요, 그렇기에 그처럼 나지막이 정다울 수도 있었던 것이겠지만. 본 적 없는 노르웨이의 숲은 이 사내처럼 담숙하고 고요하게, 젖은 채 멀찍이 흔들리고만 있으려나, 싶었습니다. 반면 나는 대단히 뜨거운 종류의 사람이에요. 쿨한 쪽도, 스윗한 쪽도 아니지요. 방증으로 나는 화라든지 아우성이라든지 여하간 이 안에 참 많이도 들어 있습니다, 그저 삼켜야 할 뿐인. 그건 내게 사랑이 많다는 것을 함의하기도 합니다만 그저 내가 침묵을 택한 까닭이란, 내가 너무 시끄러운 사람이라서입니다. 내가 고독을 택한 까닭은 너무 혼란스러운 사람이라서입니다. 그래서 조금 식혀내려는, 그런 오랜 중입니다. 차라리 나는 사막에 가깝습니다. 


달콤한 오해더군요, 그대에게는 실례가 될 말씀임을 잘 압니다만, 내가 이런 부분에서는 좀 고집스러워 말이에요. 너무 감미로워서, 그냥 슬며시 붙잡아 믿어보고는 아닌 척 쑥스러워만 볼거나, 나도 그런 인간적인 감정을 느껴볼 만큼은 웬만치 정열적인 사람이지만, 그냥, 습관이 오래서 빙긋 웃으며 밀어젖혀 둡니다. 그러나 그와 내가 이처럼 다른 곳으로부터 와 닮은 곳에 닿아 있었다는 것은 내게 좀체여 귀한, 새 생각의 질료가 되어줍니다.


그와 내가 같은 내음의 고독을 매달아 놓고 거닌다 한들, 내가 열사의 가운데를, 그가 축축이 젖은 삼나무 숲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내가 지나친 불씨를 안고서, 그가 축축한 허무를 안고서 각자 같은 모양의 고독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어 보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일 겁니다. 그는 내가 한때 열렬히 동경했던 모습의 하나라고 말씀드렸지요? 나도 저렇게 고요하고 싶었더랬습니다. 왜냐하면 무언가를 지나치게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불길하게 끓어오르는 힘을 내포시키기 때문이에요. 쉽게 말해서는 집착하게 만드는 것이고, 그 집착이 심장을 자꾸 쥐어짜내다가 보면, 의지와는 하등의 상관도 없이 못난 모습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에요. 심지어 나는 비교적 몸이 크고 얼굴도 사납게 생겨서, 이 실루엣을 얹고서 세상에 태어나는 막대함은 쉬이 다른 사람을 두렵게 했습니다. 우습게도, 남몰래 나의 유약함이란 거기서 또한 할퀴어지고요. 그래서 나는 정다운 타인들과 본질적으로는 나를 위하기로서니 거듭 밀어내 거리를 벌리려거나, 그렇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꼭꼭 잠궈두려고 하는 것이고, 그래서 와타나베의 마음속에 드리운 허무를 동경했습니다. 물론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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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와타나베가 나오코를 물론 사랑하였으되 격정하지 아니하였다 생각합니다. 사랑과 격정이 인과로 엮여있는 것은 맞지만, 필연은 아닐 터이니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지요, 다만 드문 것일 뿐. 웬만한 모든 사랑이 격정으로 곧잘 이어지는 나로서는 그의 사랑이 그리는 궤적을 멀뚱이 지켜만 보았습니다. 여러모로 생각해보아도 하필 둘의 사랑은 가장 자연스러운 결말로 흘러갔다고 생각지마는, 나는 사람의 감정이, 개중 으뜸인 사랑이란 저와 같이 멀끔하고 맵시 있게만 영위되기가 어렵지 않은가 하며 딴죽을 대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러워하였습니다. 모름지기 사랑은 저렇게 하여야 가장 멀리까지 흩뿌려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가 나오코를 집착했더라면 나오코는 일찌감치 멀어져야만 했을 거에요. 그녀의 시간을 자기의 시간대로 편입시키려고, 그 까닭의 자리로는 주체하지 못하여 들끓는 자신의 사랑을 가져다 대었더라면. 그럼에도, 그러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아주 멀어져 버렸지만 말이지요. 


집착하지 않는 사랑이라, 여전히 어딘가 쓸쓸하기도 하였습니다. 집착은 불길한 힘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증거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내 눈에는 나오코가 고개 들어 자꾸만 피어나려는 집착과 지독한 자기불신 사이를 오가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녀에게서 주체하지 못할 감정이 넘실거리는 기색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와타나베의 눈으로 파악한 나오코입니다. 그는 집착하지 않았기에, 집착 받는 것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가 집착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에게는 일찍이 내 동경하던 허무로 가득 차 있는데 말입니다. 허무라는 것이, 단순 무언가를 적게 원하는 상태일지 아니면 무얼 원하는지 모르는 상태일지에 대하여서는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집착하는 와타나베를 그려보지 못하겠네요. 


파란 달이 부서지는 가운데 나신으로 선 나오코에게서는 집착의 징조를 읽습니다. 그녀가 고양이의 발소리처럼 파문 없이 내딛는, 그 조심스러운 마음을 그려보았습니다. 한편 너무 조심스러웠다는 말이지요, 숨소리마저 죽이고서 그저 까맣게 응시하는 밤이란. 적어도 나오코에게 집착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었다고 하자면은 나는 그녀를, 그녀의 망설임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중의 하나일 거에요. 물론 나는 그녀를 밀어내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 우리가 집착을 소유할 수만 있다면, 능히 잡아 통제할 수만 있다면, 나로서는 그리 생각하곤 안타까워합니다. 우리는, 나와 나오코와 와타나베는 어딘가 닮아버리기도 했지만 여전히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같지 못 하다는 생각을 여기서 갈무리합니다.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에게만 꺼내 보이기로 했습니다. 그게 누구인지도 이제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때까지는 그냥 눌러 담고 있을 테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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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좀체 무언가를 느끼지 못하여 멀뚱히 있는 것이고, 나오코는 무언가를 느끼는 자신에 앞서 깊이 두려워하는 것이고, 나는 좋은 것에도 싫은 것에도 너무 많이 느끼어 가두어두는 것입니다. 내비치는 욕망에 있어, 와타나베는 그저 말갛고 하얗고 담백하였다면, 나는 깡그리 심장 안에 집어넣고는 기색을 지워보인 것입니다. 나오코가 깊이 두려워 산산이 흩어내는 것이라면, 나는 터질 듯이 모조리 품고서는 오기로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형질과 인과를 가진 것이건 고독이라는 상태는 그 자체로 고유한 냄새를 풍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여하간 나는 우리 곁을 감도는 연기 내음을 맡습니다, 매우 친숙한, 아마 그대가 나에게 겹쳐 보인 것이 이것이 아니었을지요. 


그대에게 와타나베는 무엇으로 닿았을는지. 그건 내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와서는 그게 제일로 궁금합니다. 당신에게마저 일말의 고독은 곁을 머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면 글쓰는 사람은 모두 고독에 익숙한 사람이어야만 할 테니까요, 의지와 상관없이, 글을 쓰는 동안에는 오직 고요 속에 담기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나는 당신과 당신을 닮은 사람들에게서 와타나베의 냄새라든지, 더구나 나오코의 것과 같은 것은 맡아볼 수가 없습니다. 아마 당신을 위시로 하여, 아트인사이트라는 플랫폼을 찾아 이 글을 읽어볼 줄을 아는 사람들은 고독에 대한 일말의 친숙함과 충분한 이해를 담지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내가 오래 궁금해하는 것이란, 여러분과 나와 와타나베가 어떻게 다른 것이며, 어디로부터 분화되었는지에 대함입니다. 


*


이 서간의 제목은 책의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 좋겠습니다. 상실의 시대는 서간문의 제목으로 채택하기에는 너무 진지해서요. 그건 마치, 지금부터 내가 써내려갈 서간이 진지하고 근엄하면서 한없이 무거운 무언가를 예고하는 것 같으니까요. 그런 건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에세이로도 충분합니다. 아 참, 다들 오해하는 것도 같은데, 내가 그런 무겁고 축축한 글을 쓴다고 해서 하루종일 그런 상태로 있는 건 아닙니다. 사실 그건 이미 지나간 것들이고, 말인즉 내 과거에 대한 이야기에요. 다만 하나도 빠트리고 싶지를 않아 오래도록 머물고 있는 것일뿐. 


아직도 빌 에반스와 쳇 베이커가 울리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주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반복하여 듣느라 쇼팽도 잘 틀지 않지만, 하루키 하면 떠오르는 게 재즈라서 틀어두었습니다. 그리 침잠하지 않아도 되기에 그랬습니다. 산뜻한 기분으로 글은 그침 없이 뻗어나는군요. 이에 비하자면 평소에 내가 쓰는 글은 고문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인지 단 한 마디에 대한, 어쩌면 소박한 것이었을 일전 부름에 빗대자면은 무지막지하게도 써내었습니다. 그저 고마웠습니다, 덕분에 즐거웠어요 하는, 감사인사의 한 가지로 치부하여 주기를 바랍니다. 


모쪼록 즐거움이었습니다. 나는 그대 덕분에 독후감을 편지처럼 남길 수 있게 되었어요. 차치하고서라도 읽는 내내가 즐거움이었습니다. 출퇴근 길에 유튜브 대신에 책을 꺼내어볼 수 있다는 건 내게 대단한 쾌감의 증거란 것을 아실까요. 퇴근을 한시 빨리 기대하게 하는 마음의 까닭에 한 권 책이 놓여있다는 사실이 얼만 한 놀라움인지까지도요. 그리고 센 바람이 잦았던 일요일에는 서재를 대신해 머리 위로 높이 뚫린 옥상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봄을 하염없었던 것마저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달뜸은 오랜만이었어요. 그리하여 나는 회사에서의 시간과 이따금 빈 시간 모조리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남은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을 슬퍼하였습니다만 편지를 골몰하느라고 즐거움을 며칠 더 늘여뜨립니다. 무어라 맺어야 하나. 모쪼록 그대에게도 닮은 행복이 찾기를, 그것이 이 무지막지한 편지가 되어준다면야 더없이 좋을 일이겠지만, 여하간 어딘가서라도 그대에게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분명, 하늘에서 철벅하고 떨어질테예요, 그대라면은.


 

[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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