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상을 바꾸는 가장 작은 힘, 다음 소희 [영화]

들리지 않는 비명에 귀 기울이며
글 입력 2023.04.1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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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는 춤을 추고 있다. 귀에 줄 이어폰을 끼고 반복해서 회전을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넘어지고 만다.

 

유진이 소희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재생한다. 녹화된 영상 속에서 소희는 마침내 회전에 성공해 밝아진 얼굴로 몸을 움직이고 있다.

 

자꾸만 넘어지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 도전할 수 있는 아주 어린 나이.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소희는 생을 마감한다. 사인은 명백했다. 사회에 의한 타살이었다.

 

 

 

네 인생은 너의 책임?


 

종종 덜 자란 이들의 귀로 어른들의 무책임한 조언이 들리곤 한다.

 

"알바하지 말고 공부해. 공부해서 장학금 받으면 되지."

 

그렇게 말하는 얼굴들은 진심 가득하다. 딴에는 진정성 있는 한 마디다. 그리고 그 점이 속을 답답하게 만든다. 자신과 다른 환경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음을 생각하지 못하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조언을 거꾸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공부를 못하면 잡일로 돈을 버는 거야, 라고. 아! 이 세상 물정 모르는 어른들.

 

<다음 소희>는 세상 물정을 알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머리가 나빠서, 게을러서,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성격이 사나워서, 기타 등등. 웃기지도 않는 모함들을 견디고 그들이 자랐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자란 환경이 인생의 방향을 가장 크게 좌우한다는 것을. 대치동 아이들이 의사를 꿈꾸듯이,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아이들은 어쨌거나 취업을 꿈꾼다. 집안의 부담을 한 명이라도 덜 수 있을 테니까.

 

그게 소희였다. 집 안에 한 대쯤 있다는 태블릿이나 컴퓨터도 없는, 어쨌거나 취업하고 싶은 고등학생. 첫 직장이 대기업의 사무직으로 결정이 난 것에 마냥 신이 난 맑고 예쁜 청년. 근로계약서니 뭐니, 선생님이 내미는 서류를 읽지도 못하고 싸인한 후 들어간 첫 직장은 그러나 상상과 다른 것이었다. 하청의 하청의 하청. 300명이 들어가면 250명은 1년 안에 퇴사하는 곳. 지독한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젊은 여성들이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외쳐야 하는 콜센터였다.

 

살벌한 환경에 놀라던 소희는 그래도 열심히 버텼다. 고객이 다짜고짜 욕설을 내뱉으며 화를 내도, 신고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은밀한 성희롱 전화를 하더라도. 원래 사회는 팍팍하다니까. 그렇게 어른이 되는 것이라니까. 또 열심히 목표량 이상을 채우면 인센티브도 들어올 것이다.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 화장품을 조금 사면서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나마 소희를 잘 대해주던 관리자가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당하기' 전까지 말이다.

 

흔히들 힘든 업종일수록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혹은 하도 많은 논란 탓에 처우 개선이 많이 됐다고 예측할 것이다. 그러나 소희는 현장실습생이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 수 있지도 않고, 실적 위주로 돌아가는 센터는 처우 개선은 커녕 야근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소희는 빠르게 무너졌다. 견디다 못해 팔목을 그어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로 위태로웠다. 나 일 그만두면 안 돼? 작은 목소리로 묻는 목소리를 부모님마저 듣지 못했다. 주위를 둘러본다. 함께 춤을 추며 유대를 쌓아가던 친한 오빠 태준과 다른 친구들도 일과 상황이 다를 뿐 똑같이 힘겹게 삶을 버티고 있다.

 

네 인생은 네가 책임지는 거야. 그 문장이 이 영화에 들어서면 마냥 의문스러워진다. 모든 책임이 소희에게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네 환경이 그랬잖아, 네가 그 학교를 선택했잖아, 네가 서류에 싸인을 했잖아, 네가 네 직장생활이 어려워지도록 자초했잖아, 네 불행을 네가 끌어들였으니 어쩔 수 없지.

 

말에도 가시가 있다. 네 인생은 네가 책임지는 거야. 정말 비겁하고 교묘한 가시가 아닐 수 없다.

 

어린 학생들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게 만들고, 경쟁을 부추기고, 성희롱과 괴롭힘을 모른 척하고, 야근은 자발적이라고 속이고, 비용 절감을 위해 계약서까지 이중으로 작성하게 하며, 죽음을 입막음하고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이들은 그럼 어떤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인가? 엉뚱한 일터에 아이들을 던지고 버티지 못하면 모욕과 낙인을 찍어 주류사회에서 몰아내는 이들은 아무 책임이 없나?

 

 

 

누가 아이를 밀었나?


 

그러므로 저수지에 빠져 사망한 소희를 두고 자살이라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실패해도 언제고 일어나서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아이를 밀어 죽인 것은 그들, 정확히는 사회의 무책임과 무관심이었다.

 

형사 유진이 소희의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회사를 찾아갔을 때, 회사는 이런 불안정한 학생을 추천한 학교가 문제라며 책임을 떠넘긴다. 학교는 취업률에 따라 지원금을 받기에 어쩔 수 없다고 되뇔 뿐이다. 학생들의 실습 현장 노동환경을 확인할 의무가 있는 노동부는 잘못된 구조를 만들어낸 교육청을 탓한다. 회피, 회피, 또 회피. 잘못된 상황은 있는데 잘못한 이들이 없다. 온 세상이 그저 숫자놀음을 하고만 있다.

 

무책임뿐 아니다. 아이가 무슨 일을 했는지 대답할 수 있는 어른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일을 주선한 선생님도, 아이를 끔찍이 아끼는 부모마저도 그렇다. 무관심하다 못해 남보다도 알지 못한다.

 

소희는 죽기 전 홀로 맥주를 마시던 가게에서 따사로운 햇볕 한 줄기가 발아래를 선명히 비추는 걸 바라보았다. 그의 흔적을 추적하던 유진도 같은 가게에서 맥주를 마시며 그 햇빛을 마주했다. 소희의 마음을 유진은 알아내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관심을 가지고 바라봐 준 최초의 어른이자, '책임'의 범인을 찾고 싶은 마찬가지로 힘없는 형사였으니까.

 

태준과 만난 유진은 그에게 말했다.

 

"욱하면 누구한테라도 말해. 나한테라도 말해." 그러자 태준이 울었다. 너무나도 서럽게. 소희 역시도 그 말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두고, 자신을 짓누르는 책임의 무게를 덜어 가주길 바랐으리라. 심금을 울리는 대사다. 무엇 하나 해결해 줄 순 없을지 몰라도, 내가 너에게 귀를 기울이겠다는 온전한 관심의 표현이니까. 그렇게나마 조금이라도 무게를 나눠가질 수 있으니까.

 

관심.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다. 이게 쌓이고 쌓여 파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

 

또 다른 소희가 나오지 않도록 관심 가져 달라고 부탁하기에, 이 영화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작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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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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