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그해 여름

글 입력 2023.04.0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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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괄편집_화면 캡처 2023-04-09 093555.jpg

 

 

 

나는 그때 인피니트의 그해 여름을 듣고 있었다.

 

 
‘늘 난.. 그리움에 살아~’
 

 

우습게도 그때는 겨울이었다.

 

난 겨울보다 여름을 좋아했다. 우리 엄마는 추위를 많이 탔는데 나도 그걸 꼭 닮았었다. 부산에 사는데도 나는 기모레깅스에 내의를 꼭 챙겨 입었다. 엄마는 아예 내의 자체를 바지 안에 입었었다. 엄마와 내가 겨울에 좋아하는 거라곤 군고구마밖에 없어서 5일장이 열리면 매번 같이 팔짱을 끼고 고구마를 사러 가곤 했다. 매번 사면서도 엄마는 늘 “이 고매 맛있습니꺼?”하고 물었고 아주머니는 늘 “아유~ 이게 꿀고매라하이. 알면서도!” 하면서 고구마를 까만 봉지에 넣어주시곤 했다.

 

그 날도 학원을 마치고 집에 가서 엄마와 군고구마를 먹을 참이었다. 눈 안 오는 부산에 이례적으로 눈이 온 날이었다. 너무 추워서 노래라도 여름 노래를 들으면 좀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까 싶어 MP4에서 ‘그해 여름’을 틀고 이어폰을 꽂았다. 휴대폰은 무음 상태였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종종걸음으로 바삐 걷던 나는 휴대폰을 볼 생각은 못 했다. 그리고 엄마의 부재중이 찍혔다. 아마 엄마도 일을 마쳤다고 말할 참이었겠지. 엄마는 그날 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부산은 눈이 5mm만 와도 교통이 마비되는 곳이었다. 근데 그날은 4.2cm가 왔다. 채 다 녹지 못한 눈은 얼음이 되었고 그 얼음에 차도 엄마도 횡단보도에서 둘 다 미끄러졌다. 엄마의 마지막 전화는 평생 부재중이 되었다.

 

그게 벌써 10년 전 일이다. ‘올해도벌초하러오나’ 이모의 문자가 찍혀 있었다. ‘가요.’ 나는 늘 여름의 끝자락에 엄마의 묘에 갔다. 산이라고 하기엔 조금 낮고, 언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높은 엄마의 가족묘지. 나는 보통 이모와 단둘이 올라가 잡초를 뽑고 묘비를 반듯하게 닦았다. 처음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과일이며 음식을 싸들고 올라갔는데, 도저히 그 앞에서 먹을 수가 없어서 그 뒤로는 그냥 꽃만 사 갔다. 엄마를 잃은 자식이나 동생을 잃은 언니나 시간이 지나도 그 앞에서 술 한 모금도 편히 못 넘기는 것이었다.


 

“자, 이거 무라.”

“이게 뭔데요?”

“고매.”

 

 

그런데 뜬금없이 오늘 이모가 먹을 걸 챙겨온 것이다. 도시락통을 열어보니 정말 고구마였다.


 

“이 여름에 어떻게...”

“니 엄마가 좋아했다아이가.”

 

 

순간 울컥, 하고 목이 메였다. 엄마의 묘 앞에서 뭘 먹어본 적이 없었다. 이모가 고구마를 반으로 갈라 나를 주는데 이모도 벌써 코가 빨갰다. 나도 타는 목에 흠흠, 헛기침을 하며 고구마를 받아들었다. 이모는 들어가지도 않는 것 같은데 고구마를 입에 턱 넣었다. 나도 이모를 따라 고구마를 입에 넣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랑 매 겨울에 같이 먹었는데.. 지금은 여름에 나 혼자 먹는다. 엄마 앞에서 나 혼자. 아니다. 이건 혼자가 아니다. 분명 엄마도 지금 우리 옆에서 같이 먹고 있을거야. 엄마가 좋아하던 고구마, 맛있게 먹고 있을 거야.. 이모도 그런 생각으로 싸 왔겠지. 눈물 때문에 잘 씹히지도 않는데 우적우적 먹었다. 눈물이 주룩주룩 났다. 엄마가 좋아하던 음식을 이제야 가져오다니, 나는 생각도 못 했는데. 나도 참 나쁘지. 미안해 엄마. 내가 너무 힘들어서 엄마 생각을 못 했어..

 

그 날 이모와 난 눈물 젖은 고구마를 다 먹지도 못하고 엉엉 울기만 하다 내려왔다. 이모 앞에서 그렇게 소리 내 운 것은 처음이었다. 이모도 엄마의 죽음 후 이렇게 운 것은 처음일 테지. 소중한 가족을 잃은 슬픔을 우리는 1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공유한 것이다. 어려웠는데, 막상 하니까 마음이 후련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용기 내어 ‘그해 여름’ 노래를 재생했다. 10년 만에 처음이었다. 

 

 
‘내가 이만큼 자라 늘 지켜볼게’
 

 

그때는 마냥 연인의 헤어짐을 담은 노래로 들렸는데 다시 들으니 부모 잃은 자식의 심정도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노래를 들으며 창밖을 보는데 노을이 지고 있었다.

 

 
‘늘 난.. 그리움에 살아...’
 

 

그해 여름, 난 10년 만에 엄마와 같이 군고구마를 먹었다.


 

 

주영지_컬쳐리스트.jpg

 

 

[주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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