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시린 봄을 겪고 있어요

날씨도 춥고 내 마음도 춥지만 그래도 봄이네요
글 입력 2023.04.08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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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비가 오기 전까진 따뜻했다. 아니, 오히려 더웠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릴 것이다. 작년 이 맘 때 사진들에선 털옷을 입고 있던 나도 올해는 얇은 자켓을 입어도 더워서 낮이면 벗곤 했다.


꽃도 작년보다 훨씬 더 빠르게 개화했다. 3월 초에 확인했던 뉴스 기사에는 벚꽃이 절정으로 만개할 시기를 4월 초로 계산했던 것으로 기억하나 이미 3월 말에 활짝 피기 시작한 벚꽃은 4월이 되자 이미 흩날리고 있었다.

 

올해는 내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아주 바빠서, 벚꽃은 커녕 개나리나 진달래만 봐도 충분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의 소중한 여우씨와 함께 간간히 시간이 될 때마다 도서관 등의 장소 주변을 걸으며 꽃 구경을 하곤 했는데 꽃들이 활짝, 온갖 장소에서 피어나서 생각보다 꽃 구경을 잘한 셈이 되었다. 각자의 할 일로 지친 얼굴이지만 서로가 함께 있음에 꽃들도 반겨주는 듯한 모습이 좋아 괜시리 나는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숨기곤 했다.

 

비가 대차게 내려서 기온이 갑자기 내려간 것은 며칠 전 일이다. 원래도 비가 오는 날씨를 좋아해서, 비가 오는 김에 전국적으로 문제가 되던 산불이 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가 밖을 나가려니 너무 추웠다. 급기야 겨울에 입고 다니던 털옷을 다시 꺼내 입었지만 바람이 아주 강하게 불어대서 무용지물이었다. 목도리가 아주 간절하게 생각날 정도였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털옷을 두 겹이나 껴입고 목폴라티를 입은 상태이지만 밤이 되면 분명 또 추위에 벌벌 떨 게 분명하다. 벌써 아득해진다.

 

비가 온 후에 날씨가 추워지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너무 심한 게 아닌가 싶어서 이번 주 날씨를 검색해보았다. 정말 절망적이게도 일교차는 갈수록 심해진다. 최고 온도는 이제 10도 후반대인데, 최저 온도는 아직도 0도 대이다. 도대체 어떻게 입고 다녀야할지 도통 모르겠다. 감기나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가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이 몸이 벌써 안 좋아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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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불만을 가지고 툴툴거릴 땐 항상 바닥을 보고 걷게 된다.

 

비바람에 온통 져버린 꽃잎들이 바닥에 스려져가고 있는 모습을 봤다. 꽃이 얼마나 졌나 싶어서 산책로에 들어섰는데, 나의 처참한 예상과는 다르게 오히려 더욱 푸르른 잎사귀들이 빗물에 젖어 반짝이고 있다.

 

비록 벚꽃은 져버렸지만 벚나무의 나뭇잎들은 전보다 울창해져서 햇빛을 받고 있는 모습에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꽃이 다 졌다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나무들은 오히려 더 행복해하고 있으니, 너무 내 주관대로만 세상을 이기적으로 바라보고 있던 게 아닐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추운 봄이다. 봄이지만 너무 춥다. 시리다. 목을 움츠리게 된다. 날씨도 너무 춥지만, 내 마음도 한순간에 추워졌나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를 보면서 '어쨌든 봄은 봄이라는 것인가'라고 생각했다. 따뜻한 것도, 추운 것도, 결국 봄의 한 특성이고, 나무는 그걸 자신의 또 다른 성장으로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살아내고 있었다. 자연에 불만을 가진 것은 나 하나였다.

 

지금 내가 마음이 추운 상태로 불만을 가졌던 것도 추운 봄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항상 따뜻한 날만 있겠는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은 나의 이기심이었다. 그저 자연스러운 순리를 인정하면 되는 것이었다.

 

지금도 춥다. 솔직히 말해서, 외적으로 추운 건 어찌할 방도를 모르겠다. 하지만 내적으로 추운 건 결국은 더욱 따스해질 봄을 기다리며 녹여갈 수 있을 것 같다. 시린 봄을 살아가고 있는 나를 위해 털옷을 좀 더 입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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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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