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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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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를 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가만 생각을 해보니 본 적이 있긴 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내가 본 것이 과연 진짜 등대일까? 하는 의구심이 샘솟았다. 단순한 관광용이었던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 나는 어쩌면 진짜 등대를 본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


등대라는 단어를 들으면 낭만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제대로 본 적도 없는 등대에게서 무슨 낭만을 찾느냐며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분명 등대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꽤 낭만적이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 한밤중 바다 위에 우두커니 서 있는 등대를 떠올리면 마음속이 뭉근해진다. 그런 모습이, 주변 환경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할 일을 하는 모습이 나에겐 퍽 낭만적인가 보다.


책 <세상 끝 등대>의 저자 역시, 사실은 등대를 접한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어느 날, 마치 운명처럼 등대에 매료되며 등대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내 그것들을 모아 책으로 출판하기에 이른다.


그에게 등대는 어떤 의미였던 것일까? 작가의 말을 참고하면, 책 <세상 끝 등대>는 단지 등대에 관한 책이 아니다. 그는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인간 조건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 자신의 모습고독 속에서 사는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것이며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우리가 타인에게 얼마나 많이 의존하는지, 나아가 극단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맞이할 비참한 현실과 인간의 위대함을 탐구하는 기회를 얻게 될 것(p.10)이라 말한다.


무슨 등대 하나를 가지고 이리도 거창한 언변을 구사하는 것일까?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도 전에 의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저자의 제언을 따라, 지도첩의 형식을 따르고 있는 책 속 곳곳에 표시되어 있는 등대를 상상해 보기로 했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무엇보다도 실제 등대를 본 적이 없으니, 오히려 상상해 볼 용기가 났다.


'나는 지금 한국이 아니다. 세상 곳곳의 등대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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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곳 한 곳,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등대들을 따라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더 세상은 넓었고 등대 역시 다양했다. 본디 역할은 동일하다 할지라도 생김새나 그에 얽힌 사연 등은 가지각색이었다.

 

그들 중 현재 가동을 중단한 등대들에 유독 눈길이 갔다. 한때는 야심찬 목적으로 나름의 의미와 역할을 가지고 세워진 등대들이지만, 지금은 그저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감내하며 언젠가 자연의 일부가 될 그날을 기다리고 있는 사연이 왜 그리도 먹먹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나는 그들에게서, 사그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등대들에게서 저자가 말한 인간의 모습, 그중에서도 고독을 본 것인지 모르겠다. 결국은 인생은 개썅마이웨이라는 진리를 등대들에게서조차 보고만 것은 아닐까? 아무리 그 누가 대단하다 할지라도, 진정 영원한 영광이란 없는 모양이다.


모든 것엔 '한때'가 있다. 그때가 지나가면 서서히 숨을 죽이게 되기 마련인 것 같다. 참으로 서글프고 아쉬운 말이지만, 영원할 것이라는 자만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딱히 특별한 일 없이도, 그저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렀다는 이유만으로 과거의 일부가 되어버린 이들은 등대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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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하니 낭만적으로 느껴졌던 등대가 갑자기 쓸쓸하고 외롭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또한 자연의 섭리라 말한다면, 그런 아쉬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보다는 그들의 영광스러운 순간을 함께 추억해 주는 것이 더 건강한 방향인지도 모르겠다.

 

과거에 빠져 살라는 말이 아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되,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일반적인 건물처럼 해체 작업이 쉽지 않아, 그저 멀리서 등대가 허물어져가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등대 역시 자신이 노쇠해져 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을 테니까.


시작은 의심이었지만, 이처럼 결론은 인정이었다. 책 <세상 끝 등대>가 스페인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이제는 그 이유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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