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와 가족의 관계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미술/전시]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기획전 〈K의 이름〉 관람 후기
글 입력 2023.04.05 12:2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흔히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이 말에는, 단순히 선택해야 할 일이 많다는 뜻 말고도 개인에게 있어 자신의 삶은 스스로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는 주체성에 관한 시각이 들어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가족 공동체 역시 그중 하나이다.

 

지난 2월 16일부터 4월 1일까지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에서 진행되었던 〈K의 이름〉은 태어남과 동시에 결정되는 가족 공동체와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한 전시였다.

 

 

700.jpg

 

 

전시 제목의 "K"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성 the castle』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소설 속 측량사 K는 성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으나 정작 성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외부 마을에서만 겉돌 뿐이었다. 곧 "K의 이름"은 사회와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존재가 역할로서 위치 지어짐과 그 규칙을 벗어났을 때의 '나'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20230302-20230302_110239.jpg

 

 

맹성규, 〈세계로 트래블 어댑터〉

 

〈세계로 트래블 어댑터〉는 세계의 다양한 콘센트 형태에 적합하게 만들어진 멀티 어댑터이다. 건물 같은 외관은 바로 목사인 작가의 아버지의 "세계로 교회"를 본뜬 것이라고 한다. 어댑터의 단자는 열고 해체하는 과정을 통해 사용할 수 있다.

 

이는 작가가 어댑터를 직접 설명하는 영상과 작가의 부모님이 시연하는 영상 두 가지 방식으로 제시된다. 작가가 어댑터를 해체하고 새로운 형태로 조립하는 행위는 아버지가 지었던 종교적인 "세계로"를 일반적인 여행의 과정으로서 "세계로"로 재구축하는 것을 나타낸다.

 

종교는 내가 태어난 가족 공동체, 더 나아가 특정 사회 문화권에 의해 결정되는 요소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이겠지만, 공동체의 종교적인 결속력에 따라 그 과정에서 불가피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개인 주체를 형성하는 데 커다란 변곡점이 될 수 있다.

 

 

20230404233800_ykmxhzik.jpg


 

민진영, 〈Overcome Chora〉

 

뾰족한 원추형의 빛이 테트라포드 형상을 뚫고 나온다. 빛은 그대로 머물지 않고 더 먼 곳으로 나아가려는 듯 동세를 지닌다. 작가는 근원적 공간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하는 자신 삶을 〈Overcome Chora〉를 통해 형상화한다.

 

제목 "Chora"는 어머니의 자궁과 연결되며 밝게 빛나는 광선은 마치 세상으로 나온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널리 퍼지는 듯한 다감각적인 느낌을 준다. 생각해볼 점은, 작품에서 빛은 테트라포드의 틈을 통해서만 분출되며 전방향적으로 퍼지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20230302-20230302_105014.jpg

 

 

임윤경, 〈이름 던지기〉

 

화면 속 사람들이 서로를 부르며 공을 주고받는다. 처음엔 아들, 엄마와 같은 호칭으로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가족 간의 호칭이 아닌 각자의 이름으로 불린다. 사람들 간의 좁았던 거리가 점차 멀어지기도 한다.

 

작가는 〈이름 던지기〉를 통해 가족 공동체 안에서 관계성에 의한 개인이 아닌, 독립적인 개인 주체가 존재할 수 있는지를 질문한다. 이는 전통적인 가족 호칭-엄마, 남편, 딸 등-에 부여된 역할과 지위에 대한 관습적인 의존을 해체하고 한 명의 개인으로서 구성원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과정이다.

 

그 중간 지점을 찾아가는 길, 그것이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길임을 보여준다.

 


20230302-20230302_103815.jpg

 

 

배지인, 〈Women in boxes〉 외

 

어느 집에나 걸려있을 법한 가족사진들이지만, 특이한 점은 인물의 얼굴이나 배경이 흐릿하다는 것이다. 인물은 모두 가족 혹은 가족 같은 사이로, 누구인지 구별할 수 없는 형태로 존재한다. 따뜻하고 편안해지는 추억의 이미지들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휩싸인다.

 

작가는 가족으로부터 독립을 원했으나, 결국 도착한 곳은 가족이었다고 말한다. 가족 공동체는 단순한 생물학적 혈연관계 이상의 결속력을 갖고 있으며 유년기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만큼 쌓인 기억들은 이러한 유대에 기여하는 요소이다.

 

독립에 대한 의지가 견고한 기억 이미지들을 흔들지라도 의식 너머에 침잠해있는 감각들은 우리가가 다시 가족을 찾게끔 한다.

 

 

20230302-20230302_104640.jpg

 

 

현세진, 〈지우고 그리고 지우기-나의 방〉

 

〈지우고 그리고 지우기-나의 방〉은 이혼한 부모 각자의 집에 있는 작가 자신의 방의 위치를 표시한 뒤 두 평면도를 겹쳐 그린 것으로, 겹친 두 방의 그림은 전시장에 횟가루로 다시 그려진다. 평면도 속 선들은 공간의 뚜렷한 구분을 암시하지만, 전시장의 횟가루는 자유롭게 뛰어넘어 다닐 수 있다.

 

작가는 전시 기간 동안 관람자들이 선을 마음대로 해체하거나 다시 그릴 수 있게 하였다. 그럼에도 선을 쉬이 지우거나 그릴 수 없었다. 이는 개인에게 있어 스스로를 형성/구축하는 기존의 질서를 부수고 재구성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까닭이다.

 

 

20230302-20230302_111836.jpg

 

 

황예지, 〈파파 papa〉

 

작가는 〈파파 papa〉를 통해 그의 '아빠'를 인터뷰한다. 단정한 복식과 함께 카메라의 존재를 암시하는 화면은 가정에서 아버지와 딸이 이야기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지만, 아버지는 딸에게 차분히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족의 역사에서 한발짝 물러나 조금은 거리를 두고 지켜봄으로써 너무도 가까워서 인식하지 못했던 가족의 연대에 대해 살펴보는 자리다.

  

가족은 한 개인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구성원이 되는 공동체다. 그와 함께 사회에서 가장 작은 공동체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개인이 가장 자기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자기자신이 형성되는 곳이다.

 

〈K의 이름〉은 가족이라는 가장 내밀하고도 미세한 관계를 통해 개인 주체의 독립, 존재성에 대한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전시였다.



 

[정충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