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은 구원이 아니다 [영화]

<오아시스>, 종두가 '완벽한 남자'가 아닌 이유
글 입력 2023.04.0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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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인 <오아시스>는 제5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신인배우상을 받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뺑소니 사고를 낸 형을 대신하여 감옥에 갔던 종두는 출소 후 찾은 피해자의 집에서 홀로 남겨진 공주를 발견하게 되고, 그 뒤로 공주를 종종 찾아오기 시작한다. 영화는 그렇게 종두와 공주가 두 사람만의 세계에서 그들만의 모양으로 사랑을 빚어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시작에 대한 오해


 

종두와 공주의 사랑은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다. 이 영화는 인물 설정부터가 다르다. 종두는 어딘가 조금 모자란 전과 3범이고, 공주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장애인이다. 관객들이 범죄자와 장애인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감정을 마치 자신의 감정처럼 이해하고, 더 나아가 이들 간의 사랑을 아름답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공주가 뇌성마비 환자라서 자기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는 점은 그들의 사랑을 더욱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든다. 영화는 시작부터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종두는 공주의 집을 몰래 침입해 공주와 억지로 관계를 맺으려 하는데, 그날 거품을 물고 쓰러졌던 공주는 시간이 지나자 종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그를 집에 초대한다. 그리고 공주는 종두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점점 그를 깊이 사랑하게 된다. 

 

어떤 관객들에게는 이런 상황이 그들 관계의 시발점으로 작용한다는 것, 그리고 공주가 그런 종두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것이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종두는 이미 주거침입과 강간미수로 경찰에 넘겨졌어야 마땅하니까. 하지만 만약 이 영화가 단순히 종두의 범죄를 사랑으로 미화하고, 피해자인 공주는 가해자를 사랑하는 인물로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영화를 한 번 더 볼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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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는 신데렐라가 아니다


 

작년 여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주인공 영우가 맡은 사건 중에서도 유독 인상적이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가져다주었던 것은 바로 지적 장애가 있는 한 여성과 그를 상대로 성폭력을 행했다는 혐의로 법정에 선 남성의 이야기였다. 여러 가지 증거들이 남성의 혐의에 무게를 실었지만, 여성은 직접 영우를 만나 그를 사랑한다며 감옥에 가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결과적으로는 남성이 유죄 판정을 받으며 이야기가 끝이 나지만, 이 에피소드는 시청자들에게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감정을 따르고 자발적으로 선택할 권리를 세상에 빼앗긴 사람들의 마음을 돌아볼 기회를 주었다.

 

장애인한테도 나쁜 남자와 사랑에 빠질 자유가 있다는 영우의 대사는 비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에피소드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솔직히 <오아시스>에 등장하는 종두도 그렇게 사랑하고 싶은 남자는 아니다. 말과 행동이 어눌하고, 종종 충동적이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기도 한다. 종두는 말 그대로 ‘완벽한 남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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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두가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공주의 사랑이 더 쉽게 이해되었을지도 모른다. 더불어 그들의 사랑도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워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은 구원이 아니다. 공주는 완벽한 남자에게 부족함 없는 사랑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불행을 이겨내는 동화 속 신데렐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공주는 뇌성마비로 인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만, 상상의 세계 속에서는 장애의 장벽을 뛰어넘어 종두에게 말을 걸고, 장난을 치고, 화도 내고, 그와 싸우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마음에 넘쳐흐르는 사랑을 매 순간 종두에게 온전히 주기 위해 노력한다. 현실에서는 대부분 종두가 몸이 불편한 공주에게 무언가를 해주지만, 어쩌면 그는 종두보다 더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사랑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공주와 종두를 바라보듯



공주가 사랑을 하든 말든 사람들에게 그는 그저 ‘장애인’일 뿐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여성의 엄마가 자기 딸이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오아시스> 속 공주의 사촌오빠 부부도 공주와 종두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목격하자 당연히 공주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공주가 장애가 있어 자신의 감정과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사촌오빠 부부의 머릿속에는 공주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누군가가 공주를 사랑할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공주와 종두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에는 분명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투영되어 있다. 종두의 가족들은 종두가 집안 행사에 공주를 자기 친구라며 데려오자 몹시 불편해한다. 공주의 사촌오빠 부부는 공주와 종두가 잠자리를 갖는 장면만 보고 그들의 관계를 피해자와 가해자로 단정 짓고, 심지어 형사들은 장애인 여자와 성관계를 한 종두를 신기하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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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관객으로서 공주와 종두가 함께 쌓아간 시간을 지켜본 우리는 자연스럽게 조금 다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임을 안다. 그들을 향한 이러한 ‘이해’는 단지 <오아시스>라는 영화 속 세계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는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 더욱 힘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더 좋은 사회, 누구에게나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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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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