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망망대해를 가로지르는 기억, 세상 끝 등대

낭만의 뒤엔 사람들이 있다
글 입력 2023.04.03 14:4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la-jument-7[6].jpg

 

 

바다는 정말 무시무시하구나, 언젠가 정보의 바다를 유영하다 그런 생각을 했다. 위 사진이 어디에서 찍힌 것인지, 혹은 장 귀샤르라는 사진작가의 아주 유명한 연작인지도 알지 못했던 때다.

 

단순히 공중에서 아찔한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해냈다는 데 가치가 있지 않다.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것도 한순간이면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공포심, 그런데도 느껴지는 섬뜩한 아름다움과 감사. 한 컷의 사진이 모든 것을 전달하고 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을 위해 등대는 만들어졌다. 그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무사히 가족의 품에 돌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나 첨단화된 기술로 만들어진 최신의 부품들을 장착하게 될 때까지, 바다의 수호자 등대는 홀로 태어나 자연을 버티고 서있진 않았다. 거기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 중 많은 이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목 졸라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피로, 외로움으로 질식할 것 같은 수개월 혹은 수년을 버티며, 조금만 날씨가 사나워지면 파도에 잡아먹히고 마는 그것을 철옹성의 보금처라 믿어야 했던 이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아와야 했을까?

 

수많은 사람과 재물을 안전히 이동시키도록 도와주었던 등대지기들이었으나 그들이 직접 자기 손과 입으로 전한 기록은 없다시피 하다. 그뿐만 아니다. 등대를 짓거나 등대지기들과 교류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곤 남의 입을 빌려 전해지는 등대의 전설, 동화, 그도 아니면 미스터리다.

 

하다못해 저 유명한 장 귀샤르의 사진도, 우리는 사진 속 남자가 '살아있는지만'이 궁금할 뿐 그 외의 것은 궁금해하지 않아 한다.

 

<세상 끝 등대>는, 그렇기에 그 모든 이들이 머물렀던 '등대'를 소개한다. 각 등대에 얽힌 짤막한 이야기와 이미지, 도면과 지도. 객관적인 정보와 기록된 풍문을 단서로, 이젠 다른 별 이야기가 되어버린 - 멸종에 처한 지 오래되어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던 등대지기와 그들과 연계된 이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겪고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 시대 낭만의 아이콘이 된 등대라는 건축물은 과연 무엇을 보았고 어떤 이야기를 감추고 있을까.

 

 

[표1] 세상 끝 등대.jpg

 

 

 

등대는 만났다, 그 기술자들을


 

책을 읽고 깨달은 것이 있다면, 등대는 실은 낭만보다 과학기술의 집합체에 가깝다는 것이다.

 

바다를 비추기 위해선 시계 기술자부터 물리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공학자, 석공 등 노동자와 배로 자재를 조달해 줄 숙련된 선원 등 수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혹여나 설계자가 자연환경을 잘 파악하지 못한다면, 엄청난 비용과 노고가 들어간 등대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자연에 무참히 패배하고 만다.


내가 아는 등대는 영화 속 어둠을 밝히는 커다랗고 은은한 조명이었을 뿐, 이토록 많은 사람이 투입된 복잡한 과정이 있었을 것이라곤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등대마다 각자의 환경에 맞는 고유의 설계면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해본 적도 없다.

 

자신을 탄생시키기 위해 지형과 날씨를 면밀히 조사하던 사람들과 기반을 만들어 준 사람들, 수백 척의 뱃소리와 바다의 흔들림 속에서 부지런히 내부를 채워주던 사람들, 언제까지고 낡고 상한 부분을 수리해주던 사람들, 그러다 바다에 잡아먹힌 이들까지.

 

그 모든 노고와 허망함, 그리고 발전을 등대는 만났고,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등대는 느꼈다, 그 등대지기들을


 

나의 상상 속 등대지기는 한가하다. 끝없는 바다가 창 너머로 펼쳐지는 넓은 방에서 책이나 좀 읽다가, 수신호가 들리면 한 번 확인하고 적정한 조치를 하면 할 일이 끝나는 것이다. 그렇게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책 속에 빠져들었다가 라디오를 듣고, 음악을 들으며 잠에 빠진다.

 

그러나 이것은 현대기술과 미디어가 맞물려 탄생한 환상이었다.

 

자동화 이전까지 등대지기의 삶은 아주 팍팍했고 위험했다. 잠은 거의 잘 수 없고, 날씨가 좋지 않으면 식량도 제대로 조달받지 못하는 데다, 정신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죽는 것이 예삿일이었다. 한 번 들어가면 최소 몇 달은 육지로 나갈 수도 없다. 하루에 수 십번 연료를 채우기 위해 저 높은 등탑까지 오르고 내려가는 길은 그중 가장 별 볼 일 없는 축에 속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등대지기 중엔 너무나 고립된 나머지 미쳐버려 인륜을 진 이부터 도리어 영웅이 된 이까지 다양한 사람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여자와 아이들만 남게 된 클리퍼턴섬의 착취자가 된 등대지기 알바레노, 등대 안에서 수많은 사건사고를 목격하고 수많은 이의 생명을 구한 라임록 등대의 아이다까지, 등대 속에는 수많은 사연을 가진 등대지기들의 숨결이 담겨있다. 어쩌면 그들의 영혼까지도.

 

 

 

등대는 보았다, 바다의 이야기를


 

<세상 끝 등대>는 단순히 각지의 등대에 대한 작은 사실들을 제공해줄 뿐이지만, 그것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상상해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수많은 어선이 평화로이 물결을 가르는 풍경, 암초에 부딪혀 가라앉는 배와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 무더운 여름날과 눈 폭풍이 몰아치던 겨울, 갈매기가 잔뜩 날아다니는 하늘, 멀지 않은 육지의 마을에서 보이는 등대의 빛, 전쟁이 바다에 불길을 만들어내는 장면 등 온갖 세상의 희로애락을 한 자리에 가만히 서서 등대가 지켜보다, 시간이 흘러 무너져 내리는 광경 말이다.

 

그리고 이런 상상과 함께 책을 덮으면 마치 내가 바다의 한가운데 서 있는듯한 울렁거림이 느껴지는 듯하다.

 

 

  

유다연.jpg

 

 

[유다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