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나의 삶 속으로 뛰어들고 싶다

제 인생의 속도를 소개합니다
글 입력 2023.04.05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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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나 자신을 정의하는 것은 매우 쉬운 동시에 어려운 일이다. 바야흐로 자기 PR의 시대, 난 평생을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애를 쓰며 스스로를 포장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공적이고 사적인 자리에서 적당히 나를 소개하고 정의해 온 단어들은 정해져 있다. 웃음이 많고 밝으며,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다. 매사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한다. 집중력이 좋고 꼼꼼하다. 고백하자면 후자는 종종 덤벙대는 스스로를 눈 딱 감고 모른척한 뒤 붙인 수식어다. 취미는 독서, 음악 듣기, 산책하기, 글쓰기, 끄적거리며 낙서하기. 끝. 평범하고 재미없는 수식어들의 향연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더 사적인 자기소개를 해 볼까 한다. 정말 내 가까운 사람들만 아는 버릇이라던지, 절친들만 아는 추억이라던지, 나만 아는 어느 한 페이지의 귀퉁이 같은 것들. 


가끔은 세상의 가치로 환산될 수 없는 보잘것없는 것들이 나의 삶을 가득 채우곤 한다. 남들 보기에 무언가를 해내고 이뤄내는 것보다 종종 내 삶에서 중요한 것들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했던 어느 날의 저녁, 날 좋은 날 길가에 피어있던 이름 모를 노란 꽃 몇 송이와 같은 것들이다.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을 바라보며 느꼈던 알 수 없는 감정과 같은 것들이다. 


그럴 때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가령 사랑, 우정, 희망과 같은 것들. 흘러가는 시간과 같은 것들.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내 삶을 이루고 나 자신을 정의한다.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서 있는 나 자신을 사무치게 느끼게 한다. 


이러한 작은 조각들을 모으고 모아서 누군가에게 잘 보이거나 눈에 띄기 위해서가 아닌, 정말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어렸을 때 나의 꿈은 ‘책’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은 왔다가 가고 태어나고 죽지만

책은 영원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렸을 때 내 야심은 자라서 한 권의 책이 되는 것이었다.

작가가 아니라 책 말이다. 


- 영화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중

  


기억나지도 않는 어린 시절부터 내 손엔 항상 책이 들려 있었다. 책과 글, 이야기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가리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주구장창 읽어댔다. 활자 속에서 펼쳐지는 무한하고 아름다운 세상은 언제나 나를 매료시켰고, 그 세계에 푹 빠져 있을 때만큼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첫 장을 펼치고 첫 문장을 읽을 때마다 언제나 난 새로운 문을 열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섰다. 마지막 장과 함께 닫히는 한 세계의 이야기는 언제나 내게 진한 여운을 남겼고, 몇 권을 읽어도 그 감정엔 익숙해 질 수 없었다. 그러면 난 또 다른 책을 집어 들고 또 다른 세계를 펼치곤 했다. 


내가 초등학생 때 – 라떼는 – 마침 전성기였던 만화 채널 ‘투니버스’가 당시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과 낭만을 책임지고 있었다. 명탐정 코난, 짱구, 도라에몽, 프리큐어, 포켓몬, 유희왕 등등. 그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은 ‘이누야샤’였는데, 강아지같이 쫑긋거리는 귀를 가진 남자주인공 이누야샤를 꽤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한창 투니버스에 빠져 있던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엔, 이누야샤 속에 나오는 ‘시대를 초월한 우물’을 통해 다른 세계 - 가령 만화 속 세상 - 에서 살아보는 것이 꿈이었다. 구몬도 없고 학원 숙제도 없는 그 곳에선 흥미진진하고 새로운 모험만이 가득할 것만 같았기에.


글, 책, 드라마, 만화, 웹툰, 영화 등등, 여전히 나는 콘텐츠와 이야기를 사랑한다. 언제나 글과 이야기 가장 가까운 곳에서 걸어가고 싶다는 나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쪽으로 걷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걸으며 반짝였던 모든 순간들을 이으면 그것이 나만의 별자리가 되는 것은 아닐까. 


글과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언젠가 내게 커다란 위안과 위로가 되어 주었던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몰입해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세계들을 기억한다. 나도 그런 이야기들을 창작하고 때론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간 나의 이름이 적힌 글과 책을 출판해 보는 것이 꿈이다. 



 

서울은 멋진 도시이지만



 

우린 당당히 서울 시민이 되었지만

아직... 서울 사람은 될 수 없었다.

 

-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중

 

 

대학교에 진학한 후 경기도민이었던 나는 왕복 4시간의 통학 길을 오가며 학교에 다녔다. 지하철로는 4번을 갈아타야 했고, 버스를 타고 가도 두세 번 정도 갈아타야 하는 먼 길이었다. 돌이켜보면 한 번 학교에 갈 때마다 거의 뭐 로드 뮤비 한 편을 찍는 일상들이었다.


내게 서울은 매우 넓고, 번잡하고, 흥미롭고, 새로운 도시였음을 기억한다. 정말 매일매일이 새롭고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초중고를 모두 한 동네에서 쭉 나왔던 나에게, 만원버스와 지하철에 낑겨서 오가는 통학길조차 새로웠다. 


20살 성인이라는 신분과 함께 주어진 자유 앞에서 나는 가끔 갈팡질팡했고 낯설어했다. 나 자신을 온전히 책임진다는 말의 무게는 여전히 알 수 없었고, 대학 동기들과의 왁자지껄한 술자리 후 집으로 돌아가는 막차 안에서 느꼈던 쓸쓸함과 공허함의 이유 또한 알 수 없었다. 여전히 공부보단 노는 게 더 좋았다. 소주는 쓰고 맛없었다.


그렇게 수십 번, 수백 번의 날들이 지나갔다. 붐비는 버스와 지하철 속에 낑겨 몇 번이고 서울을 오고 가며 어린 20대의 나날들을 보냈으며 그만큼 많은 한강의 노을을 보았다. 그리고 그 수많았던 길 속에서 이제야 나는 내가 진정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게 된 것만 같다. 


서울은 멋진 도시였지만, 내겐 결국 집이 아니었다. 서울에 살고 있지 않았던 내게 서울이란 언제나 머물렀다가도 돌아가야 하는 곳이었다. 막차 시간을 걱정하고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 곳이었다. 내 한 몸 뉘일 작은 공간조차 없는 곳이었으니까. 반짝이는 서울의 수많은 야경의 불빛 중 하나는 내가 아니었다. 


출퇴근길 같은 곳을 향해 걷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 낑겨 지하철을 탈 때면 가끔 숨이 막히고 멀미가 나곤 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가끔 내 속도를 잃었다. 바쁘게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휩쓸려 걷다보면 종종 내가 정말 가고 싶은 곳을 잊었다. 


서울은 가능성 넘치는 도시였으며 그곳에서 난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많은 것을 배웠지만, 여전히 내게 낯선 곳이다. 영원히 익숙해지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나는 길을 걸을 때 풀 내음 나는 거리를 좋아하고, 수많은 사람으로 꽉 찬 버스보단 여유롭게 앉을 자리가 있는 마을버스를 좋아한다. 인스타 핫플이라며 수백 수천 명이 닳고 닳게 다녀간 곳보다 나만의 새롭고 멋진 곳을 찾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은 곰곰이 생각할 수 있고 나의 속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로운 풍경을 사랑한다. 


내가 머물고 싶고 바라보고 싶은 풍경을 자주 생각하는 요즘이다.

 

그곳이 꼭 서울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나의 자리에서 반짝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인프제의 아날로그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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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는 신뢰도와 타당도가 떨어지는, 말하자면 공신력 없는 검사이다. 그래도 사주팔자와 혈액형 같은 유사과학에 열광하는 한 명의 한국인답게 심심풀이로 말해 보자면 내 mbti는 INFJ(인프제, 선의의 옹호자)이다. 몇 번을 해봐도 똑같이 나온다. 


전 세계 인구 퍼센테이지로 따지면 1% 미만인, 16개의 성격 유형 중 가장 희귀한 유형이라고 한다. 해당되는 유명인으로는 히틀러와 간디가 있었는데, 때문에 종종 내면에 히틀러와 간디가 공존하는 특이한 성격으로도 알려져 있더라. 솔직히 읽으면서 좀 재밌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말이 있다.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mbti 검사라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하고 또 재미있어하는 이유는 나 자신을 정의하고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은 것만 같은 느낌 때문은 아닐까. 말로 정의하고 언어로 표현할 때 뭉뚱그려 느꼈던 나에 대한 인식은 더욱 정확하고 명료해지는 법이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처럼 우린 평생 우리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정의하려고 노력하며 살아간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성격인지, 어떤 사람인지 정의하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나 또한 INFJ 설명란에서 나 자신을 정의할법한 언어들을 찾고 얼마나 재미있고 흥미로웠는지 모른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누구나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간다지만, 전부터 난 내 안의 가면이 유독 많다고 느꼈다. 내 안의 내가 너무 많고 가끔은 나도 날 잘 모르겠다. 종종 멍때릴때마다 생각은 드넓은 우주, 추상적이고 명확히 개념화할 수 없는 무언가로 끝도 없이 뻗어 나가곤 한다. 기본적으로 생각이 많고 잡생각은 더 많다.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도 혼자 고독을 즐길 시간이 필요하다.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로 냉소적이다가도 끝내는 선하고 따뜻한 무언가를 믿고 싶어진다. 결국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좋은 사람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또 생각한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은 내 첫인상을 ‘친절하고 부드러운 동시에 어떤 부분에선 취향과 신념이 확고한 사람’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게 느껴진다고? 놀랐던 동시에 곰곰이 생각해보면 또 맞는 말 같아서 또 통찰력 있는 내 친구들에게 조금 감탄했다. 평상시엔 유연한 편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취향이나 정해놓은 기준에 대해선 확고한 고집이 좀 있는 것 같다.


가령 예를 들자면 아날로그 취향이 그러하다. 난 어쩐지 무선 이어폰이 싫어서 여전히 줄 이어폰을 쓰고, 전자 책보다는 종이 책을 선호하며,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다이어리를 꾸미는 다꾸 취미를 가지고 있고 엽서나 우편을 모으는 취미도 있다. 조금 앤틱한 인테리어에서 낭만을 찾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손글씨로 적어내려간 손편지를 건네주는 걸 좋아한다. 너무 빨리 바뀌는 유행에 휩쓸리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걸 좋아하고 싶은 고집이 있다. 그리고 그게 나만의 속도인 것 같다. 

 

 


여전히 사랑하는 것들


 

또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헤아려보았다. 


난 비 오는 날 창가에서 듣는 빗소리를 좋아하고, 그다음 날 풀 내음 섞인 깨끗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새소리도 바람 소리도 누군가의 일상이 지나가는 소리도, 역시 나는 붐비는 사람들 속 보다는 탁 트이고 여유로운 곳이 좋다. 낯선 거리를 걸으며 마주하는 새로운 풍경들,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은 언제나 날 설레게 한다. 새롭게 도전하고 걸어가는 나의 모든 순간을 사랑한다. 


또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데, 한때는 사진을 통해 내게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순간을 붙잡고 싶었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된 후에도 여전히 난 종종 사진을 찍는다. 내게 아름다웠던 순간의 조각을 남기려 노력하는 일은 나름 즐겁고 보람찬 일이다. 


맛있는 걸 먹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좋아한다. 친한 친구와 함께 카페에 마주 앉아 한없이 무거워졌다가 가벼워지길 반복하던 수다 속에서, 결국 남는 건 다 마신 커피잔과 돈독해진 우정뿐이었지만. 그런 모든 순간도 즐겁기 그지없다. 함께 반짝였던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해서 자주 위를 올려다보는 편이다. 이지러지는 노을을 바라보고 나서야 하루를 제대로 마무리했다고 느낀다. 언제나, 해가 지는 순간 가장 아름다운 곳에 서 있고 싶다. 그렇게 온전하고 더할 나위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


 


다시, 나의 삶 속으로 뛰어들고 싶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든,

난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될 거라고.

 

- 영화 '더 저지' 중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서 공부를 했고 대학에 갔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넓고 삶은 무한하다지만, 결국 우리에겐 우리 삶 속의 세상이 전부이다. 나는 나에서부터 시작되는 세상을 믿는다. 어디까지가 나인가? 어디까지를 나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할수록 나의 세상은 넓어지곤 했다. 


더 많이 느끼고 경험하고 싶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싶다. 내가 갈 수 있는 만큼 멀리, 멀리 가 보고 싶다. 수많은 이야기가 그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 또는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 세상의 수많은 풍경을 보고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난 지금까지 안전이 보장된 길로만 걸어왔던 것 같다. 나의 삶임에도, 언제나 몇 발짝 뒤에 떨어져 내 삶을 바라보곤 했다. 지레 결과를 속단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어떤 순간들이 요즘 문득 후회된다. 


이젠 나의 속도로, 나의 길을 걸어가보고자 한다.

 

인간은 그리 완벽한 존재가 아니여서 종종 비이성적이고 어리석기 그지없어 보이는 선택들을 한다. 그리고 우린 그것들의 총체를 삶이라 부른다.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불안해하며 현재를 흘려보낼 수는 없는 법이다. 실패가 두려워서 인생의 가장 행복하고 찬란할 순간들까지 포기할 수는 없는 법이다. 모순되고 어리석은 부분들까지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내 삶 속으로 뛰어들고자 한다. 새롭고 낯선 길로도 가 보고, 때론 좌절하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웃으며 그렇게 삶을 살고 싶다. 


앞으로 이어질 내 삶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나의 속도로 걸어갈 앞으로의 나의 삶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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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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