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나의 시네마천국

영화를 사랑하는 중입니다.
글 입력 2023.03.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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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일주일 동안 제자리걸음을 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일까,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이 별로 없어서일까. 너무 바빠서 나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요즘의 내게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만들어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백지장같이 하얘진 머리에 당황하기만 했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내가 지워진 사람이 되어버렸는지, 속상해하다가 시간이 다 갔다. 이쯤 되면 이 미션은 실패한 듯하다.

 

하지만 글을 쓰기로 한 약속을 지켜야 하기에 마음을 다잡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한 문장을 쓰는 동안에도 수시로 멈칫거리던 나의 손가락들이 오늘만이라도 멈추지 않고 신나게 춤을 추기를 바라며 노트북을 열었다. 이름, 나이, 사는 곳, 하는 일, 가족 관계 등 자기소개를 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기본 정보들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이것들을 일절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좀 새로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만약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지금까지 내가 이곳에 올린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언제부터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엄마 아빠를 따라 영화관에 자주 갔던 나는 '좋아한다'라는 감각까지는 없더라도 항상 마음속에 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극장에서든, TV로든 영화 보기를 즐겼고 영화배우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당시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배우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제시 아이젠버그였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내게도 영화가 오락에 불과했다. 가족들과 여가를 즐길 때 가는 곳이 영화관이었고, 친구들과 놀 때 보는 것이 영화였다. 그런데 2016년 1월을 기점으로 영화는 내 삶에 있어서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중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방학의 어느 날, 엄마의 추천으로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를 보게 되었다.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를 바라보면서 영화가 단순 재미를 넘어서서 아름다움을 체험하게 해주는 예술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낀 나는 <중경삼림>을 보다가 큰 충격에 빠졌다. 

 

살면서 이런 영화는 처음이었다. 지금도 그때의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나를 둘러쌌고, 어느 순간부터는 심장이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뜨거워진 심장을 부여잡고 문득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런 영화를 내 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독한 운명론자인 내게 그날의 일은 하늘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점지해 주었다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체험이었다. 그리고 1년 후, 나는 커서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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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아이러니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가지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학교엔 영화 동아리가 없어서 대신 연극 동아리에서 연출을 맡으며 부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공부를 해야 할 시간에 영화를 보고, 꿈을 꿨다. 나는 친구들이 붙여준 '윤 감독'이라는 별명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가진 것만으로도 내가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았고, 친구들이 나를 그렇게 불러줄 때마다 꿈이 현실과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꿈 하나로 내 자신감과 자존감은 절정을 찍었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비관적인 시기가 될 수도 있었던 고등학교 3년을 나는 희망으로만 가득 채웠다. 꿈이 있다는 건 그런 거였다. 

 

자유롭게 내 꿈을 펼쳐야겠다는 의지를 갖고 진학한 대학교에서 정작 나는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포기했다. 두려웠다. 성인이 되어 마주한 현실의 무게는 생각보다 너무 버거웠다. 머릿속에서 그린 꿈을 가지고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그냥 한번 부딪혀보자니 나는 걱정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소심하고 소극적인 사람이었다. 

 

현실적인 목표에 깃발을 꽂고 전속력으로 달려 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나도 어느새 꿈을 접고 다른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원점으로 다시 돌아갔지만, 여전히 영화는 좋았다. 아니, 오히려 영화에 대한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져만 갔다. 그래서 꿈은 포기해도 사랑은 포기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쉬지 않고 영화를 보고, 영화와 관련된 책을 읽고, 영화에 대한 글을 썼다. 

 

2년이라는 시간을 이제는 취미의 일부가 되어버린 영화를 마음껏 사랑하는 데 쓰고 나니, 나는 감독을 열렬히 꿈꾸던 고등학생 시절의 나보다 영화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대책 없이 몽상에만 빠져 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현실적인 접근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정작 더는 영화감독이 될 생각이 없다니. 인생이란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항상 가난할 때 찾아오고, 여유가 생겼을 땐 이미 떠나고 없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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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비명


 

그러나 이번에도 어김없이 새해가 밝았고, 나는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가슴에 품은 지 7년 만에 처음으로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이다. 딱 한 번만 배워보겠다는 마음으로 들었던 시나리오 강의가 끝나갈 때쯤, 3년째 유령처럼 붙어 있던 학교의 영화 동아리에서 감독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떴다. 완성에 가까운 시나리오를 하나 가지고 있었던 나는 7년 전의 그날과 같이 하늘의 기운을 느끼고는 고민도 하지 않고 홀린 듯이 지원서를 제출했다. 

 

요즘 나는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팀을 꾸리고, 발표를 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고민하느라 영화 한 편 볼 시간조차 없다. 7월에 찍게 될 영화를 준비하면서 참 많은 것을 느끼고 있다. 어떻게 보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결과물을 담보로 수많은 사람의 믿음을 사는 행위인 것 같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을 불확실성과 싸워 이겨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영화를 만드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매일 밤, 잠을 자려고 누우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과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마구 헤집어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팀원들에 대한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영화를 찍기로 결심하고 나서 얻은 거라곤 아직 불면증과 만성 피로뿐이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나와의 오랜 약속을 지키게 되어 참 뿌듯하고, 7년이나 묵은 나의 열정이 대체 어떤 작품을 만들어낼지 궁금해서 설레기도 한다. 외할머니의 말씀대로, 이건 정말 '행복한 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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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계속될 나의 '영화사'



나는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그냥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나는 영화를 그냥 좋아하는 게 아니라 아주 많이 사랑하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근 몇 년간 하루도 영화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없고, 영화가 없는 나의 삶을 상상할 수도 없다. 실제로 내가 지나온 삶을 돌아보다 보면 항상 지금까지 영화가 내 인생을 어떻게 끌고 왔는지를 보게 된다. 내게 영화란 바로 그런 존재다. 오락거리였다가, 꿈이었다가, 취미였다가, 결국에는 삶 그 자체가 되고 마는 소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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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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