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자기소개를 싫어하는 사람의 자기소개

소소한 삶을 꿈꾸는 사람
글 입력 2023.03.3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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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자기소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난 미취학 시절부터 나 자신을 소개하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얼마나 짜증 나고 긴장됐냐면, 자기소개 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지금 당장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꽤 했을 정도이다. 새벽 3시에 컨저링 혼자 볼래, 자기소개 1분 할래? 하면 무조건 전자 고르는 사람이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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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까지 싫어해?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진 적이 있다. 어차피 취업하려면 자기 PR은 기본인데. 하다못해 아르바이트 구할 때도 적어야 하는 게 자기소개 항목인데. 사실 자기소개야 특징 나열하면 되는 거고, 장점 위주로 후다닥 보여주면 되는 일 아닌가.


이에 대한 결론을 지은 건 올해가 시작된 지 한 달도 채 안 됐을 때다. 대외활동을 준비하면서 불현듯 스치는 생각. 분명 내 소개를 하는 건데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느낌. ‘가공된 나’를 내보내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누군가에게 호감을 얻고 뇌리에 잘 남기기 위해 진짜 내 성격은 소거하고 딱히 장점도 아닌 것 같은 걸 부풀려 말하는 게 오글거린다고 해야 할까. 자신에게 거리감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이나마 ‘진짜 나’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한다. 비록 나조차도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는 데다가 이 글도 결국에는 가공의 과정을 거치겠지만, 이번이 아니면 영영 자신에 대해 진정으로 소개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다소 비약적이고 편협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진솔하게 한 자 한 자 적어서 나에 대해 표현하고자 한다.

 

 

 

눈에 띄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재미없게 살고 싶지는 않아



일단 극도로 내성적인 사람이다. MBTI에서 내향형 비율이 93%나 되는 궁극의 내향인. 뭘 나서서 하는 성격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눈에 띄는 걸 별로 즐기지 않는다. 아니, 극도로 혐오한다. 조용하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 최대한 화제의 중심이 되지 않는 가장 보통의 존재를 꿈꾼다.


동시에 나는 쾌락주의자이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꼭 해봐야 해서, 할 일을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는 사람. 하고 싶은 거 있으면 꼭 해야 하고, 싫으면 곧 죽어도 안 하는 사람. 도라에몽 노래처럼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취직하고 돈 벌어서 자립하는 게 어른의 완전체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고 싶지만, 그래도 어른이 되고 싶긴 하다.


정리하자면 일단 나는 모순적인 사람에, 고집도 세다. 그러니까, 외로움은 타지만 혼자 살고 싶고, 조용하게 살고 싶지만 내가 재미를 느끼는 일들은 계속하면서 일상에서 쾌락을 즐기고자 하며, ‘하기 싫지만 그래도 해야지’와 ‘하기 싫은데 왜 해야 해’의 마인드가 공존하는 사람.


이런 성정을 지닌 나의 최종 목표는 좋아하는 일로 가득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 돈을 백만장자처럼 벌진 못해도(만약 그렇게 된다면 정말 좋겠지만)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갖고, 몇십 년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 분야에서 활동하고, 퇴근하면 내가 즐기는 걸 할 수 있는 삶. 그러니까, 남들이 보기엔 소소하고 평범해 보일지라도 사소한 부분에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삶을 꿈꾼다.


아, 하지만 평범한 삶을 원해도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 일단은. 지금으로선 내가 곧 죽어도 하기 싫은 일 중 1위다.

 

 

 

취미 콜렉터



생활 속의 행복을 좇는 사람이기에, 내 삶에는 색채가 가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보통의 삶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것들로 가득한 그런 일상.


그런 소망의 발로인지는 모르겠으나, 취미도 다양하다. 지금은 학교에 다니느라 상대적으로 취미생활을 할 여유가 줄어들었지만, 휴학생이었을 때에는 숨 돌릴 여유가 없을 정도였다. 밑에 기술한 것은 나의 주된 관심사들이다. 사실 이것보다 훨씬 많지만, 그중에서도 엄선된 취미들이다. 이것들이 존재하기에, 정신없고 퍽퍽한 현실에서도 나만의 빛을 어렵지 않게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 독서 - 가장 애착을 지닌 취미이다. 어디서든 나와 함께한다. 어디에 가서 뭘 하던 언제나 가방 속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나의 작은 친구이자, 세계의 개척자이자, 스트레스 해소법.


오직 활자만으로 다른 이의 이야기와 감정을 심도 있게 전할 수 있는 매체는 책이 유일할 것이다. 이것이 독서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본다. 한 권 한 권 읽어갈 때마다 내면의 우주 속 별들이 하나씩 늘어가는 기분이 든다.


SF 소설을 즐겨 읽는다. 담담하고 은근한 애정이 깃든 이야기도 좋아하는 편. 안전가옥 시리즈를 자주 읽고, 조예은 작가가 쓴 책이라면 무조건 읽어본다. 좋아하는 책은 「칵테일, 러브, 좀비」, 「뉴 러브」,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천 개의 파랑」.


# 기록 - 친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블친녀’라는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는다. ‘블로그에 미친 여자’라는 뜻이다. 맞는 말이다. 나는 기록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니 환장하는 수준이다. 일상을 블로그에 꾸준히 기록하려고 한다. 최소 일주일에 하나. 간혹 두세 번씩 쓰는 경우도 있다. 참고로 다이어리는 매일 쓴다.


‘나’라는 인물을 아카이빙하는 느낌이 좋다. 뭘 먹었고, 어딜 갔고,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간단하게 남기는 행위만으로 꽤 개성 있고 고유명사다운 삶을 살아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이 내게 흥미롭다.


# 노래 - 인생의 1/3을 대중교통 안에서 보낸다는 경기도민이다. 해가 지날수록 멀미도 심해져서, 에어팟 없이 밖에 나갈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런 반강제적인 이유로 음악을 자주 듣는 것도 있지만, 내가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향수의 역할을 하기 때문.


특정 거리나 상황이 됐을 때, 당시 들었던 노래가 떠오르곤 한다. 누구와 있었는지, 그때가 몇 시였고, 분위기는 어땠고, 주변 풍경이나 내 기분은 어땠는지 등등, 그 순간을 3분 내외의 짧은 선율로 압축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밴드, 락 장르를 자주 들으며, 청춘과 현실을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가사를 좋아한다. 자우림, 데이식스, Prince, The 1975의 노래를 자주 듣는다. 요즘 즐겨 듣는 노래는 Muse의 Panic Station과 자우림의 이카루스.


# 사진 -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찰나의 순간을 아주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다는 건 사진만이 할 수 있으며, 그때의 일순간을 가장 비슷하게 재현하는 것은 아직까진 사진이 유일하다. 무엇보다, 같은 모습을 봐도 찍는 사람의 관점과 취향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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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카메라로 사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요즘에는 여러 카메라를 써보려고 한다. 그래서 최근엔 필름 카메라보다는 디카를 좀 더 자주 쓰고 있다. 기종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찍힌다는 게 흥미롭다.


얼마 전에는 학교 사진동아리에 들어갔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진을 더 잘 찍고 싶었다. 찰나의 순간을 바로 알아보고 추억에 젖을 수 있을 그런 사진들을 촬영하고 싶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면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면의 사유지를 지닌 사람. 삶의 풍파가 머릿속을 헤집어놔도 뿌리만큼은 흔들리지 않는 사람. 어떻게든 먹고 살기 위해 정신없는 하루를 살아가느라 안광이 흐려지다가도, 회복탄력성이 좋아 자신의 반짝거림을 언제든지 되찾을 수 있는 사람.


어디서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은 순간의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간다던가. 평소에는 사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유난히 뇌리에 남는 경험을 다들 해봤을 것이다. 삶은 대체로 부정적인 감정들로 도배되어있지만, 짧고 눈부신 순간들로 우리는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그런 찰나의 순간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찰나의 순간들을 되도록 많이 남기려고 하고, 그것을 기록한다. 내가 좋아했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힘들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가도, ‘그래, 나는 이런 걸 좋아하고 즐겨 했었지.’라고 생각하며 다시 눈앞에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할 수 있는 심지 굳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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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난 후에도 여전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조차도 감이 쉬이 잡히지 않는다. 하나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일상의 소중함을 통해 굳건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향유하고, 그것들을 계속해서 기록하고 다니겠지.


그래서 나는 미래의 내가 걱정되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기대된다. 앞으로 어떤 멋진 순간들이 나의 버팀목이 되어줄까, 라는 생각을 하며 눈 앞에 펼쳐질 여정을 고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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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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