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상의 끝이자 시작, 등대 - 세상 끝 등대

외로움의 이면으로
글 입력 2023.03.29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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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등대>는 작가 곤살레스 마시아스의 오랜 끌림 대상이었던 등대에 대한 이야기 모음집이다. 책엔 등대의 자세한 위치, 크기, 작동 여부, 삽화 등이 함께 삽입되어 있어서 정보, 기록의 역할도 충실히 해낸다. 한 등대에 보통 한 장(2페이지)을 할애해 에피소드 형식으로 책이 전개된다.

 

그러나 이러한 철저한 형식에도 불구하고 등대들이 가진 이야기, 역사, 감정들의 복잡함 때문인지 전혀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거기엔 삽화도 한몫을 한다. 아주 낮은 해상도를 일부러 표방하여 등대가 가지는 고유한 외로움, 인간미, 자연성을 표현하려고 한 것인지, 감성적인 면들이 살아있다.


작가의 말엔 작가가 이것을 의도했음이 명시되어 있다.


[“당신의 손에 들려있는 이것은 단지 등대에 관한 책에 그치지 않는다. 이책을 통해 인간 조건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고,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우리가 타인에게 얼마나 많이 의존하는지 인정하게 될 것이고, 극단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맞이할 비참한 현실과 인간의 위대함을 탐구하는 기회를 얻을 것이다.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 의해 보호받지 못할 때 느끼는 공허하고 허무한 감정은 누군가에겐 지옥 같을 수도 있다. 반면 찰스 부코스키 같은 사람에게 고립은 선물이다.”] - 작가의 말 中

 

작가 찰스 부코스키를 생각하면 붐비는 인파 속의 고립, 도심 속 외로움이 떠오른다. 어쩌면 그자는 어디서도 고립될 수밖에 없는 자라는 생각도 들지만, 부코스키가 등대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장면은 왜 이렇게 자연스러운 걸까.

 

어쩌면 부코스키에게 등대는 세상의 끝이라기보다는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올 수 있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표1] 세상 끝 등대.jpg


 

내용이 마냥 긍정적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래도! 노란 파스텔 색조의 책 표지를 보면 그런 기대를 했던 것이 내 탓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내 기억 속 등대는 늘 맑고 정적이다. 관광지나 인스타그램 포토존의 일종이었다. 그러나 책 속 등대는 수많은 죽음, 좌초, 실패, 실종, 고난, 비극의 무대였다. 지리적 특성 때문이겠지만, 소통할 거라고는 경유지를 지날 뿐인 기계 불빛과 날씨가 좋아야 그나마 들어오는 보급선 뿐이다.

 

고립, 공허, 외로움이 등대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그런 종류의 반전을 주기 위해 파스텔톤 표지를 정한 건지 몰라도, 따뜻한 색과 그림과는 너무도 다른 글자들이 쓰여있다. 우울할 때는 차마 읽으라고 추천하지 못할 만한 책이다. 그러나 만약 자신이 붐비는 도시 생활과 현대사회의 정신적 고통에 지쳤다면, 자신이 마치 찰스 부코스키처럼 느껴진다면 한 번쯤 추천하고자 한다.

 

책의 21번째 목차 [마치커 등대]의 내용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마치커 등대는 시속 100킬로미터의 맹렬한 바람이 부는 척박한 섬에 서 있는 등대이다. 그곳에 8년을 일한 등대지기 존 쿡은 수많은 자연으로부터 받는 생존 위협을 수도 없이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이렇게 말한다.

 

"육지에서 살 때에 비해 내 몸이 더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매번 외로움과 권태를 어떻게 견디느냐고 물어보곤 했다. 하지만 감각을 깨어있게 만들다 보면 온몸에 힘이 솟구친다."

 

존 쿡은 <마지막 등대지기>라는 회고록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는 유언에 영원히 마치커 섬에서 잠들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외로움은 감정이라기보단 정신적 통점에 가깝다. 그렇기에 외로움은 사람을 예민하고, 섬세하고, 강렬하게 깨어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 책 속 일화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신체적으로 강했고 정신적으로 늘 곤두서있는 사람들이다.

 

온종일 망망대해를 보고, 거친 신체 노동을 한다면 신경이 날카로울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감각이 붕 뜨고 마취되어 둔화한 듯한 현대 사회에선 그 날카로움이 날 악몽에서 깨워주는 유일한 동아줄일 수도 있겠다.

 

수많은 비극 속에서도 사람들은 늘 그 이면을 찾아내곤 한다. 이 책에서의 등대는 사람이자, 자연스러운 성장 일기이자, 모두의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승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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