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은 완벽해요. [영화]

영화 <경계선> (2018)
글 입력 2023.03.28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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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반복해서 기존의 구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것을 세우는 속성이 있다. 이를 증명하듯 상반되는 것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기존의 관념을 모호하게 하는 영화, <경계선>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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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섦에 대한 혐오


 

주인공 '티나'는 남들과 다른 외모를 가진 선박 출입국 세관의 직원이다. 후각으로 감정을 읽는 특별한 능력으로 세관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심사한다. 오로지 냄새만으로 아동 성 착취물이 든 USB를 가진 남자를 알아보기도 한다.

 

술을 불법으로 반입하는 미성년자를 잡아내는 장면에서의 '못생긴 년이 재수 없게'라는 대사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한다. 낯선 모습을 한 티나에게서 혐오감을 느꼈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하루는 어딘지 자신과 닮은 남자 '보레'에게서 무언가 수상한 느낌을 감지하고 그의 짐을 검사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의 몸을 수색하고 나온 동료 직원은 보레의 몸에 이상한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겉으로 보기에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여성의 성기를 지녔고, 꼬리뼈 부근에 흉터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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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흉터를 가지고 있는 티나는 보레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검문실로 들어간다. '당신은 누구인가요?'라는 티나의 질문에, 보레는 대답 대신 자신이 여행 중이라고 말한다.

 

며칠 뒤 보레가 지내는 호스텔로 찾아간 티나는 보레가 권하는 구더기를 먹는다. 보레와 달리 '문명화'된 삶을 살고 있었지만 몸이 그것을 원하는 것이었다. 그 후로 티나는 보레에게 강한 이끌림을 느끼고, 자신의 집에서 지내게 한다.

 

영화에서 트롤은 여성이 남성의 성기를 갖고, 여성의 성기를 가진 남성이 월경과 출산을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는 기존에 갖고 있던 성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뒤엎는다.

 

 

 

당신은 완벽해요.


 

'나는 기형이에요.'라는 티나의 말에 보레는 '당신은 완벽해요.'라고 한다. 그 말에 감격한 티나는 얼굴이 붉어지거나 미소를 짓는 대신 마치 동물처럼 포효하고 키스신이 이어진다.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낯선 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덕분에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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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에 집착하는 사람 치고 강박이 없는 사람은 없다. 외모에 대한 강박, 맞춤법을 틀리면 안 되는 강박, 말실수를 하면 안 되는 강박, 컵을 식탁 끝에 놓으면 안 되는 강박까지.

 

언제나 못생기고 별난 사람이라고 여겨졌던 티나에게 '완벽하다'라는 수식어를 붙인 건 보레가 아마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완벽이라는 말을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싶었다. 대학교 때 한 교수님은 예술에서 완벽을 논할 수는 없다며 A 점수는 절대 주지 않았다.

 

물을 엎지르면 어떤가. 여드름이 나면 어떤가. 우리들 모두는 지금 그대로 완벽하다.

 

 


나는 누구일까요?


 

인간들 사이에서 늘 자신이 기형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티나는 보레에게 '나는 누구일까요?'라는 질문을 한다. 당신이 누구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던 보레는 이제야 당신도 나와 같은 트롤이라고 대답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된 티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이후 티나와 보레는 숲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며 사랑을 나눈다.

 

티나는 아버지를 찾아가 자신의 친부모에 대해 묻고, 트롤이었던 친부모는 인간들의 실험에 의해 학살되었음을 알게 된다. 보레 또한 이런 인간들에 대한 증오를 갖고 살고 있었다. 하지만 티나는 모든 인간이 사악한 것은 아니라며, 예를 들면 아버지 같은 사람도 있다고 말한다.

 

 


선택의 경계선


 

아동 성 착취물 수사 과정에서 티나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는데, 보레가 바로 아동을 바꿔치기해 성 착취물을 만들도록 하는 범인이었던 것이다.

 

티나는 경찰들을 동원해 보레를 체포한다. 트롤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인간들 사이에서 직업을 갖고 살아가던 티나가 결국 범죄를 저지른 연인이자 트롤인 보레를 체포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 부분에서 영화의 첫 장면이 떠오른다. 티나가 나무에 있던 벌레를 잡아들었다가 내려놓는 장면이다.

 

티나는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트롤임을 알게 되어 자유로워졌고, 인간이 트롤을 학살한 역사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 사회의 정의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티나에게 택배가 도착한다. 티나와의 사랑으로 보레가 출산한 아기와 함께 핀란드 여행 엽서가 들어 있다. 여기에서 티나는 선택의 경계선에 서 있다. 스웨덴에 남아 이전처럼 살아갈지, 핀란드의 트롤 마을로 떠나 보레와 다른 트롤 종족들과 함께 살아갈지 결정해야 한다.

 

 

 

아름다운 사랑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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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많은 사람들이 <경계선>을 '아름다운 사랑 영화'라고 말한다. 축축하고 어두운 색감과 내내 들려오는 으스스한 배경음악은 로맨스보다는 스릴러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 것은 두 시간 남짓 동안 우리의 관념이 전복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는 다른 나라와의 경계선에 서서 오가는 이들을 심사하는 직업을 가진 티나를 통해 관객들이 수많은 경계선을 맞닥뜨리도록 한다. 아름다움과 추함, 현지인과 이방인, 남성과 여성, 인간과 트롤, 사랑과 혐오, 로맨스와 스릴러의 경계선이다.

 

우리가 이 경계선의 어느 쪽에 있는지 보다는 이 경계선이라는 것이 무의미하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한다.

 

 

[김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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