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낄낄 사이언스

사랑하는 사람들로 나를 설명하기
글 입력 2023.03.27 14:4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나의 취향을 보여준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나의 예민한 부분을 드러낸다. 그래서 한 사람을 알아가려면 그가 좋아하는 것을,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면 그가 싫어하는 것을 공부해야 한다. 그렇게 팽창한 우주는 다시 줄어들지 않는다. 그 사람을 보내주어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가끔씩 절대 보내주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찾아와 내 우주를 감당할 수 없이 요동치게 한다. 나는 그런 친구가 넷이 있고, 이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이상할 정도로 잘 알거나 혹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내 우주를 온갖 이상한 것들로 채워준 이 사람들을 소개하는 것이 나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믿는다.

 

 

내 프로젝트.jpg

 

 

 

A에 대해서


 

A는 내일 일본에 간다. 나는 A를 한 달 넘게 만나지 않은 적이 없다. 서로가 어디에 있든 우리는 주기적으로 만났다. 알아주는 내향인인 나에 비해서도 굉장히 집을 좋아하는 A는 제발 밥 좀 같이 먹어달라고 열 번을 말해도 한 번 나올까 말까 한다. 사실 혼자 밥을 먹는 것은 익숙하다. 그다지 외롭지도 않다. 그렇지만 굳이 A를 부르는 이유는 A와 시간을 보낼 때 하는 이야기가 좋아서다.

 

A와 나는 중학교 동창으로, 둘 다 일본 서브컬쳐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친해졌다. 영화와 드라마 등 콘텐츠 분야와 일본 서브컬쳐 사이에서 애매하게 줄타기를 하다 결국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린 나와는 달리 A는 지금까지도 메인 장르를 일본 서브컬쳐로 두고 있다. 덕분에 A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일본어를 능통하게 하는 사람이다. 단순히 어떤 나라의 콘텐츠를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그 나라의 언어를 잘 할 수 없고, 세상이 으레 그렇듯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는 것을 A는 굳이 티를 내지 않는다.

 

A의 그런 무던한 성격은 나의 예민함과 상충한다. A와 함께 있으면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웃을 수 있다. 이상한 의성어로 대화를 하고 시답잖은 일로 웃는다. 내가 A를 만나지 않고 못 배기는 이유는 그런 것이 그리워서다. 그래서 나는 A를 만나러 일본에 갈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매일 대화를 나눌 것이지만 그래도 직접 만나는 것이 더 좋으니까. 공항에 내리자마자 하는 말이라고 해봤자 뭐 재밌는 거 없냐? 겠지만 사실 많이 보고 싶었을 거니까.

 

 

 

B에 대해서


 

B는 나와 이름이 비슷하다. 자음 한 글자만이 다른 우리는 키도 비슷하고 외모도 크게 다르지 않아 어딘가에서 이름을 말하면 자매 혹은 친척으로 오해받는 일이 잦다. 사실 살면서 서로의 이름을 말해야 하는 장소에 함께 가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이 말인즉 B와 나는 서로의 모든 병원 생활에 동행한다는 말과 같다. B와 나는 중고등학교 동창으로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며 친해졌다. A와 나는 집이 5분 거리였던 까닭에 등하교길을 내내 함께했다. 그 이후로 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 없었지만 동시에 한 번도 떨어져본 적 없었다.

 

우리는 여전히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검진을 받고 함께 밥을 먹고 낮잠을 잔다. 함께 사진을 찍거나 어딘가로 놀러가본 적은 없지만 우리는 가능한 한 거의 모든 일상을 함께한다. 나는 B를 만나기 전까지 사람에게 무언가를 잘 베푼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B는 좋은 곳을 가면 나에게 알려주었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 내 것까지 사왔고 아무 날이 아니더라도 나에게 편지를 쓰고 선물을 주었다. 그건 B가 친구를 대하는 일반적인 방식이었고 나는 B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덕분에 나도 이제는 가끔 친구들에게 밥을 사고, 생각나는 게 있으면 선물을 주고 편지를 쓰는 사람이 되었지만 아직 B의 마음을 따라가기에는 멀었다.

 

 

 

C에 대해서


 

C는 내일이 생일이다. A와 각별한 C이니만큼 그의 생일날 A가 떠난다는 것이 유독 더 마음에 걸린다. 우리는 같은 중학교를 졸업했지만 그때는 A와 C만 서로 친했고, 고등학생이 되어서 어떠한 기회로 다 함께 친구가 되었다. 내가 아는 가장 똑똑한 사람들 중 하나인 C는 내가 C를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순간부터 수학과 과학에 특출났다. MBTI가 막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C를 극강의 T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맞았다. C의 이과적 성향과 전공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녀의 화법 때문이었다.

 

C는 인터넷과 현실 모두의 대화에서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한 편이라 사람들이 흔히 기대하는 부드러운 말투와는 거리가 멀다. 때문에 내가 C를 잘 몰랐을 적엔 C가 나에게 화나지 않았는지, 혹은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는지 나를 돌아본 적도 많았다. 그렇지만 C는 그저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C의 다정함은 C의 화법처럼 무뚝뚝하지만 솔직하다.

 

C가 친구들에게 주는 생일선물은 지나가는 말도 지나치지 않는 사려깊음 덕에 실패하는 법이 없고, 누군가 유독 힘들어 보이면 무리한 일정이더라도 밥을 함께 먹어준다. 우리 다섯 명은 반 년마다 호텔을 잡고 나름의 모임을 즐기는데 C는 그것이 자신에게 무리한 일정이든 혹은 왜 굳이 1박을 하는지 모르겠든 나름의 애정으로 우리를 대하고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

   

 

 

D에 대해서


 

D는 우리 중 가장 활동적이다. 자타공인 우리 중 가장 ‘일반인’에 가까운 D는 운동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다니면서도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았던 까닭에 활달한 성격과 경험이 모여 압도적으로 사회생활에 능통하다. 가장 빠르게 어른이 되었지만 가장 감정적인 D에게는 유난히 울 일이 자주 생기는 모양이지만 그럴 때마다 D가 우리를 찾아 주어서 좋다. 내가 D를 좋아하는 만큼 D도 나를 좋아한다는 뜻인 것 같기 때문이다.

 

D의 건강한 삶은 본보기가 되며 D의 끊임없는 자기계발은 자극이 된다. 사람들과 잘 교류하지 않는 내향인이 바깥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암담해질 때 D와 이야기하면 D는 내가 원한 바로 그 ‘평균적인 삶’에 대해 말해준다. D는 나를 사람들의 유행이나 문화로부터 뒤처지지 않게 만든다. 동시에 D는 그 자신의 삶으로 건강하게 살려면 어떤 운동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 무슨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어려운 것들을 증명해낸다.

 

어려운 시험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고 성실하게 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아무리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여전히 나의 삶은 내가 살아가야 하며 아무도 나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것을 매번 알려준다.

 

 

 

그리고,


 

그리고 내가 있다. 나는 A, B, C에 비해 예민하고 D에 비해 무던하다. C, D에 비해서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지만 A, B에 비해서는 외로움을 많이 탄다. 더위를 많이 타는 A, B와 일반적인 계절감의 C, D와 다르게 나는 추위를 많이 탄다. B와 D는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A와 C, 나는 강아지를 좋아한다. B와 C, D는 아이돌 노래를 잘 아는 편이지만 A와 나는 전혀 모른다. 나는 우리 중 가장 영화와 드라마와 책을 좋아하며, 우리 중 가장 키가 작고 근육이 적고, 우리 중 유일한 문과 출신이다. 포지션으로는 70퍼센트 정도 놀림을, 30퍼센트 정도 공격을 담당하고 있다.

 

어디선가 ‘친구 다섯 명의 평균이 나의 평균’이라는 말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친구들의 평균이 나라는 사실이 진짜라면 나는 꽤 좋은 사람이다. 이 친구들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평균 낸다면 그 결과값 또한 좋을 것만 같다. ‘낄낄 사이언스’라는 말을 좋아하는 건 단지 우리가 비슷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우리네 방식으로(끼리끼리를 낄낄로 농담하여) 바꾸어 말했기 때문도 있지만 이런 소속감은 꼭 우리를 헤어지게 두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내 친구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 중 하나고 이들이 나를 설명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잘 좋아하고 싶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명함.jpg

 

 

[김지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