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내가 사랑한 '맘마미아!'의 순간들

글 입력 2023.03.2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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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해변을 비추는 뜨거운 햇살, 하얀색 벽의 건물들, 거기서 알록달록 채도 높은 옷을 입고 춤추며 노래하는 사람들. 우리가 <맘마미아!>에서 떠올리는 이미지는 상당 부분은 2008년에 개봉한 영화 <맘마미아!>에 근거한다. 섬 풍경을 충분히 보여주기에 어쩔 수 없이 극장이라는 공간적 한계가 있었던 뮤지컬과 달리 영화에는 우리가 <맘마미아!> 넘버를 들으며 머릿속으로만 그렸던 아름다운 풍경이 그대로 담겨 있다.


영상미를 살리면서도 원작 뮤지컬의 춤과 음악을 충실하게 재현한 영화는 뮤지컬이 그랬던 것처럼 흥행에 성공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요즘도 <맘마미아!>를 자신의 ‘인생 영화’로 꼽는 사람을 종종 만난다. 아무 생각 없이 보기 시작해도 나중에는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 언제 어디서 어떤 장면부터 보든 늘 여름인 채로 우리를 반기는 영화가 바로 <맘마미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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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은 뮤지컬 <맘마미아!>와 영화 <맘마미아!>를 함께 만나볼 수 있는 해다. 뮤지컬 <맘마미아!>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공연을 보기에 앞서 영화를 예습 삼아 가볍게 보고 간다면 뮤지컬을 더 깊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둘을 비교해 보며 영화와 뮤지컬 장르 각각의 고유한 매력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맘마미아!>의 빛나는 장면과 넘버를 소개한다.

 

 

 

Mamma Mia: 속절없이 다시 설레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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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Mamma Mia’는 도나가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과거의 세 남자(샘, 빌, 해리)와 재회하는 장면에서 부르는 넘버로,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곡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도나는 세 남자가 헛간에 숨어 있다는 걸 눈치챈 다음부터 창문으로 헛간을 훔쳐보고 헛간으로 통하는 문 앞에서 안달하며 노래를 부른다. 앞서 ‘Money, Money, Money’를 부르며 현실의 문제로 골머리 썩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20년이라는 시간을 건너뛰어 세 남자와 만났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도나의 얼굴에 설렘과 흥분이 그대로 드러난다. 속절없이 마음이 다시 흔들린다.


유독 ‘맘마미아’의 뜻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별 뜻 없이 놀라움 또는 괴로움을 나타내는 이탈리아의 감탄사다. 예상치 못하게 옛 인연과 마주친 순간의 심정을 표현하기에도 더없이 적절한 말이면서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나타내는 제목으로도 잘 어울린다. 결혼식날 함께 입장할 아빠를 찾기 위해 엄마의 옛 남자들을 몰래 초대한 상황부터가 ‘맘마미아!’이기 때문이다. 감탄사는 멋대로 요동치는 마음처럼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 마음을 도나는 어떻게 다잡을 수 있을까. 결말을 다 알아도 들을 때마다 두근거리는 넘버이다.

 

 

 

Dancing Queen: 철들지 않는 여자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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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 자료는 없지만, <맘마미아!>에서 떠오르는 곡 하나를 꼽으라면 절반 정도가 이 곡을 이야기하지 않을까. 옛 인연과의 재회에 설렌 것도 잠시, 도나는 소피가 세 남자의 존재를 알게 될까 봐 두렵다. 잠깐 활기를 주었던 과거는 이내 도나를 옭아매는 족쇄가 된다. 침대에 엎어져 있던 도나의 손을 잡고 끌어당기는 건 오랜 친구 로지와 타냐다. 옛날의 도나는 어디로 갔냐는 질문에 도나는 “정신 차린 것(I grew up)”이라고 답하지만, 여기에 두 친구는 “정신 차리지 마(well then grow back down again)”라는 답을 돌려준다. 그 후 ‘You can dance’로 시작되는 익숙한 노래는 세 사람이 서로에게 해주는 말인 동시에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건네고픈 말처럼 들린다.


영화에서 ‘Dancing Queen’이 흘러나오는 장면은 뮤지컬 영화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 처음에는 도나의 방에서 세 사람만 부르던 노래가 후반으로 가면 다양한 여자들이 함께하는 합창이 되기 때문이다. 섬의 여자들은 자신의 일을 잠깐 내려놓고 세 사람의 춤과 노래에 합류해 작은 축제를 벌인다. 이들은 화면 너머에 있는 관객들에게 하루하루 너무 빠르게 흐르는 시간과 해야 할 일들 앞에서 주눅 들지 않아도 된다고, 당신은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춤출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준다. 언제나 여름인 <맘마미아!>의 분위기가 잘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S.O.S.: 너에게만 닿지 않는 나의 구조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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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마미아!>에는 남녀가 함께 부르는 대표적인 듀엣곡 두 곡이 있는데, 하나는 1부에서 스카이와 소피가 부르는 ‘Lay All Your Love On Me’고, 다른 하나가 2부에서 도나와 샘이 부르는 ‘S.O.S.’이다. ‘Lay Aall Your Love On Me’가 두 사람이 현재에 경험하는 열정적인 사랑을 노래하는 내용이라면, ‘S.O.S.’는 과거에 뿌리를 둔 샘과 도나의 갈등이 표출되는 곡이다. 샘은 도나의 호텔 일과 자신의 딸일지도 모르는 소피의 결혼식에 관심을 보이지만 도나는 20년 만에 나타난 그의 관심이 부담스럽다. 영화에서는 도나가 호텔 고치는 걸 돕겠다는 샘을 거절하며 넘버가 시작된다.


두 사람의 엇갈리는 마음을 표현하는 넘버이기에 듀엣곡이면서도 노래를 부르는 두 사람의 시선이 좀처럼 마주치지 않는다는 것이 넘버의 특징이다. 샘이 노래할 때는 호텔 건물 밖에 서서 건물 안에 있는 도나를 보고, 도나가 노래할 때는 반대로 안에서 바깥에 있는 샘을 바라본다. 앞서 소피와 스카이의 듀엣곡에서 두 사람이 시종일관 서로 마주 보고 눈을 마주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렇지만 구조신호를 보낸다는 것은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 가사를 살펴보면 감정을 드러내는 정도와 타이밍이 다를 뿐, 서로를 완전히 놓지는 못한 두 사람이 보인다.

 

 

 

Slipping Through My Fingers: 엄마와 딸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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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마미아!>는 사랑과 청춘을 노래하는 이야기인 동시에 엄마와 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Slipping Through My Fingers’는 다른 넘버만큼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소피를 향한 엄마 도나의 사랑이 절절하게 담겨 있는 넘버다. 이 넘버가 나오기 전까지 소피는 주로 스카이나 자신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도나는 옛 다이나모스 멤버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좀처럼 둘만 있는 장면이 없다. 소피가 도나에게 결혼식 드레스 입는 걸 도와달라고 하면서 비로소 두 사람은 결혼식 전 모녀만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제목 그대로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짧기만 한 시간이다.


결혼하지 않고 홀로 소피를 키운 도나와, 빨리 그럴듯한 결혼식을 하고 싶어 하는 소피.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결혼을 둘러싼 가치관 차이를 보여주던 두 사람은 이 넘버와 함께 서로를 좀 더 깊게 이해하게 된다. 애초에 이 이야기는 아빠에 대해 좀처럼 말해주지 않는 엄마 대신 스스로 아빠를 찾겠다는 소피의 다짐에서 비롯되었으니, 두 사람이 서로 소통하는 장면이 반드시 필요했다. 결국 소피는 아빠가 아닌 엄마에게 결혼식장에 함께 입장해 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The Winner Takes It All: 사랑이라는 게임의 패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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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에 나오는 도나의 넘버 ‘The Winner Takes It All’은 뮤지컬 2부의 하이라이트이다. 소피의 결혼식장에 아버지로 참석하고 싶다는 샘에게 도나는 지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며 노래를 시작한다. 이 넘버에서 사람 관계와 사랑은 게임에 비유된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 이 게임에서 이기지 못한 자신에게는 더 이상 아무 선택지가 없다고 털어놓는 도나에게 원망하는 기색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떠나야만 했던 게 운명이었고, 이미 그렇게 완결된 과거를 바꿀 능력이 자신에게는 없다는 걸 인정한다. ‘S.O.S.’에서와는 달리 도나가 샘을 똑바로 바라보며 부르지만, 그 가사 내용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넘버의 백미는 도나가 감정을 실어 부르는 마지막 후렴구이다. 잠깐 잠잠해졌다가 ‘But you see’로 시작되는 이 후렴구에서 도나의 감정은 폭발하는데, 도나 역을 맡은 메릴 스트립의 섬세한 연기를 볼 수 있다. 영화에서 이 넘버를 부르는 도나는 빨간색 숄을 두르고 있다가 넘버가 끝나갈 때쯤 섬을 뛰어 올라간다. 카메라가 바람에 날리는 숄과 섬의 전체 풍경을 익스트림 롱 샷으로 잡으며 또 하나의 명장면을 만들어낸다.

 

*

 

소개한 넘버 외에도 말하고 싶은 곡이 많지만, 분량의 관계로 다 담지 못해 아쉽다. <맘마미아!>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넘버와 장면을 가장 좋아하는지 물어본다면 다양한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와 뮤지컬을 다 관람한 사람과 둘 중 하나만 본 사람의 감상은 어떻게 다른지도 궁금하다. 

 

어디서든 아무때나 원하는 만큼 좋아하는 장면을 돌려 볼 수 있다는 게 영화의 매력이라면 뮤지컬의 매력은 내가 지금 보는 공연이 세상에 유일무이하다는 데 있다. 영화 <맘마미아!>에만 익숙한 사람이라면 여러 번 봐 왔던 자신의 '최애' 장면과 넘버가 무대에서는 어떻게 구현되는지 확인해보면 어떨까. 어쩌면 영화를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부분에 마음이 갈지도 모른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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