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사랑의 이해 - 닮은 이에게 받는 이해와 사랑

글 입력 2023.03.26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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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색무취에 빠졌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무책임한 말을 자주 하기 시작했고, 자아를 드러내기보단 호불호를 숨기고 생각을 감췄다. 무탈한 하루를 보내기 위한 나만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너무 숨는 것도 손해라 가끔은 생각을 강렬히 주장할 때도 있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비슷할 테다.

 

하지만 사람마다 인내심의 마지노선도 다르고, 인간은 사회와 떨어질 수 없으니, 얼마나 조율을 잘하는가에 따라서 평판이 달라질 거고 이것을 우리는 사회생활이라 대신해서 부른다.

 

사람마다 주장을 발산하고 표현하는 방법이 각양각색이라 본인의 노력만으로 안 될 때가 많다. 당장 나만 해도 견딜 수 없는 인간 문제로 속앓이를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까. 앞으로 살아갈 나날 중, 더한 것도 있을 거다. 세상엔 얼마나 다양한 인간군상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 나는 그것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외롭고 기나긴 싸움을 어떻게 버텨야 할지, 그러면서 무색무취의 평범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당장 나조차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는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과 부대끼며 평생을 살아간다니. 하루를 탈 없이 마무리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소원인 나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사람들이 말하길 가장 어려운 일이라 한다. 평범함의 기준이 제각기 다르니 넓은 아량으로 이해할 것이 참으로 많다고. 또 궁금해졌다. 균일하지 않은 세상을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일까. 이 또한 사람들이 말하길, 사랑을 하라더라. 연애하면 살맛 난다고.

 

하지만 둘 다 내게 어려웠다. 이 또한 나뿐만이 아닌지 모두의 고민이 담긴 작품을 발견했다. ‘사랑’과 ‘이해’를 담은, 현실적인 취향을 담은 드라마이자 소설이었다. 이름도 ‘사랑의 이해’. 이건 꼭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만큼, <사랑의 이해>는 상당히 포괄적으로 들렸다. 단순히 사전적인 의미의 ‘사랑’을 이해한다는 말일까? 아니면 우리가 느끼는 각각의 사랑을 헤아린단 말일까? 작품은 본인들의 기준으로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미경, 상수, 수영, 종현이란 캐릭터를 통해 각각의 사랑을 보여준다.

 

 

사랑의이해_입체12.jpg

 

 

드라마는 요약하자면,KCU은행 영포점에서 벌어지는 사각 관계 멜로물이었다. 제목처럼 이해가 필요해서 그런가, 사랑을 말하기 전에 독자가 공감할 수 있도록 주인공들의 삶부터 보여준다. 왼쪽은 증권가, 오른쪽은 50년 전통의 재래시장. 그사이에 위치한 KCU은행 영포점 사람들은 아침부터 바쁘다. 오픈자가 문을 열면, 하나둘씩 출근한다.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조회에 참석, 그리고 각자 자리로 돌아가 업무 준비를 한다.

 

정각 9시, 메인 데스크에 놓인 황금색 교탁 종이 울리면 그제야 은행 문이 열린다. 그들은 예금부터 대출 등. 일반 고객부터 VIP까지. 개개인별이 가진 숫자를 세며 그에 합당한 대우를 제공한다. 이것은 본인들에게도 마찬가지. 정규직과 계약직으로 나뉘어 편을 가른다. 취미생활부터 주말 아침에 마시는 커피까지. 미경은 에스프레소 머신, 상수는 캡슐 커피, 수영은 커피 스틱, 그리고 종현은 커피 믹스를.

 

그들은 성장한 환경이 달랐기 때문에, 주고받았던 사랑의 형태도 달랐다. 자고로 인간이란 본인이 배운 경험 그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다 보니 사랑하는 형태도 다르다. 좋아하는 마음보다 이성적인 판단이 앞서 신중히 감정을 표하는 상수와 수영과 달리 순수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미경과 종현은 부잣집 딸이고, 경찰을 꿈꾸는 시골 청년으로 주인공 중 제일 양극단에 서 있었다.

 

출발점은 달라도 공통점은 있다. 우리도 그렇듯 그들 또한 명징하고 명쾌한 사랑을 꿈꾼다.명품 가방에 마카쥬하다 여럿 버려도 문제없는 미경도, 강남 오피스텔에 살고 강남 8학군 출신이지만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란 상수도, 바람 잘 날 없는 시장통에서 성장해 그늘진 수영도 똑같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명쾌한 관계를 통해 확실한 안정감을 추구했다. 이는 막연한 미래 속 보장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기인한 게 아닐까 싶다.

 

 

수영 (말 돌리듯, 미경 똑바로 보고) 하계장님 좋아하세요?

미경 (헉! 뭘 이렇게 묻나 싶지만) 어, 티나?

수영 조금요.

미경 좋은 걸 못 눌러 내가.

수영 박대리님은, 하계장님이 왜 좋아요?

미경 (표정)

수영 (정말 궁금한) 어떤 모습에 끌렸나 해서요.

미경 (생각하다)상수 같아서. (웃고)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변수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도 일정한 값을 유지하는 그 상수.

 

<사랑의 이해> 1권 중 265쪽

 

 

상수 (강하게 잡아주며)무게중심을 뒤쪽에 두지 말고.

미경 (다시 시도하며)대체 이런 게 왜 좋은데.

상수 빙판 위에선..명쾌하잖아. 넘어지지 않고 달린다. (웃는)그래서 좋아.

 

<사랑의 이해> 1권 중 225쪽

 

 

예를 들어, 상수는 아이스하키를 좋아한다. 빙판 위에서 넘어지지 않고 달린다는 점이 간단해서. 미경도 달리기를 좋아한다. 앞을 향해 달리기만 하면 되어서. 먹이사슬의 최고점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미경마저 사랑에 관해서는 한없이 유약한 점이 신기했다.

 

 

상수 저기, 또.., 또 볼 수 있나…?

수영 (깊게 보다가) …또 보면요? (우린 어떤 사이가 되는데?)

상수 (무슨 뜻이지…?) 또, 또 보면 좋지 않나…해서…

수영 난 애매한 관계는 싫어요.

상수 !

수영 (알아들었어?)

상수 (무슨 뜻인지 알겠고)…나도 확실한 거 좋아해요. 깔끔한 거.

 

<사랑의 이해> 1권 중 95쪽

 

  

 

상수 안수영은, 한번을 싫다고 안해. 힘든 일, 까다로운 일, 자기가 안 해도 되는 일, 한 번을 거절 안 하고 열심히 해. 힘들수록 태연한 척해. 그게… 꼭 나 같아서. 응원하고 싶게 만들어


<사랑의 이해> 1권 중 293쪽

 

 

3년 동안 눈치만 보면서 직장생활을 하던 상수와 수영도 마찬가지. 다만 제일 조심스럽달까? 중간 위치에 껴서 평범해지기 위해 애쓰는 둘은 싫은 소리 없이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편이다. 그 욕구는 자신이 이해받고자 염원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싶다.

 

 

수영 내가 하는 노력들… 의미 없는 거 같아요.

종현 (보다가, 밝게) 나 지도에도 안 나오는 시골에서 컸잖아요. 소 타고 다녔다는 거 농담 아니었는데, 5년 전에 나. 아버지처럼 소 몰고 살 줄 알았어요. 평생 그 시골에서. 근데 지금 서울에서 알아주는 은행에서 일하잖아요.

수영 …..

종현 5년 후의 안주임님은 더 근사해질 거예요. 지금은 상상 안될 정도로.

수영 (과연 그럴까…)

종현 우린 더 행복해질 거예요. 노력하고 있으니까.

수영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씁쓸한 미소)

종현 (가만히 수영 옆에 서있어주는)

 

<사랑의 이해> 1권 중 288쪽

 

 

주인공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하며 이해받았다. 그들은 자신이 생각한 평범한 기준에 맞추어 상대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현실을 살아갔다. 결국 개인의 경험을 기준 삼아 이해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바랐던 환상이 무참히 깨지고 실망하고 다퉜다. 하지만 그 과정이 담담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이라서 일하는 환경이 나와 달라도 쉽게 이입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직장인의 삶이 와닿아서 그런가. 출근 준비로 바쁜 시간을 쪼개어 조그마한 핸드폰으로 보다가, 주말에 몰아서 큰 화면으로 보기도 했는데, 엄청난 이벤트가 없어도 눅진히 녹아드는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마음을 간지럽히며 재미를 맛깔나게 만드는 사랑은 제목처럼 이해가 필요해서 그런가. 몰아치는 추세와 다르게 느렸다. 똑같은 말을 해도 이해하는 척도가 같지 않아, 본인의 예상과 다르게 상황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것도 안 좋은 방향으로. 독자가 장면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드라마에서 아리송했던 인물의 마음이 답답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나 쫀득한 연출이 아슬아슬한 긴장을 유지해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탄탄한 연기력으로 상황을 십분 공감했으나, 나 또한 상수가, 수영이, 미경, 그리고 종현이 아닌바. 도대체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리 말했을까.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대본집은 내레이션이 있어 그들의 속마음을 금방 캐치할 수 있다. 특히 영상 특성상 밀집된 대사가 금방 휘발되는데, 사랑의 이해를 모으고 모아 던진 대사이니만큼, 액기스를 곱씹을 수 있어 그들의 사랑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해’란 하고자 하는 사람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것을.

 


미경 … 아니 선배. 난 그럴 자격이 없어. (서글픔 감추는)연인 사이에 뭐든 할 수 있는 자격은…사랑받는 사람한테만 생기는 거야.


<사랑의 이해> 2권 중 408쪽

 


[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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