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문을 닫고 내딛어야 할 내일의 발걸음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이 재난 뒤에 남겨진 사람들을 다루는 법
글 입력 2023.03.22 17:24
댓글 1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시간을 거스르는 운명으로 이미 일어난 재난을 없던 것으로 만든 <너의 이름은>에서, 신을 거스르는 순수함으로 이미 희생된 소수를 다시 구해낸 <날씨의 아이>까지. 일본인의 시선에서 재난을 그려온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이번에는 ‘재난 3부작’의 마침표를 찍는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돌아왔다.

 

이전의 작품들은 스토리 전개를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서 재난을 사용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재난 자체와 그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고민이 크게 읽힌다.

 


[크기변환][포맷변환]common2.jpg

 

 

이야기는 일본에서 일어나는 지진을 막아내는 ‘요석’을 우연히 뽑아버린 스즈메가, 이 행위로 인해 일본 각지에서 열리게 된 재난의 문을 닫으러 다니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스즈메는 실제로 재난이 일어난 적 있는 일본의 다양한 지역들을 돌아다니며, 그곳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기억을 마주하곤 한다. 우여곡절 끝에 스즈메는 문 너머의 세상에서 또 다른 대지진을 막아내고, 그곳에서 만난 과거의 자신에게 희망을 이야기한다.

 

전반적으로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주인공들의 감정선은 다소 갑작스러운 면이 있고, 사건 전개도 명확한 개연성을 가지고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영화관을 나와 대사와 소재의 의미 하나하나를 되짚어가다 보면, 이 영화가 화려한 이미지의 단상들 너머에 생각보다 깊은 위로의 말을 숨겨 두었음을 알게 된다.

 

 

 

죽어도 괜찮다던 소녀가, 살고 싶다는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


 

작중에서 주인공인 스즈메는 무모할 정도로 용감한 캐릭터로 묘사된다. ‘여고생의 체력으로 저 정도의 여정을 소화하는 게 가능한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생전 처음 본 붉은 물체를 향해 몸을 던지고, 멋대로 전기가 켜져 돌아가는 대관람차에 몸을 맡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아무리 소년만화가 성행하는 일본이라지만, 초인도 아닌 스즈메가 이 정도로 과감한 건 그닥 개연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 전체의 소재인 ‘동일본 대지진’을 생각해 본다면, 이런 캐릭터성은 어느 정도 의도된 면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대지진으로 인해 허무하게 어머니를 잃은 스즈메는, 그 뒤로부터 사람은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체념하게 됐을 테다.

 

실제로 작중에서 지진을 상징하는 ‘미미즈’는 그 어떤 규칙이나 일관성도 없이 튀어나온다. 그렇게 무작위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재난에 스러져 간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나 또한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스즈메는 운에 불과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그보다 자신의 어머니를 앗아간 것과 같은 재난을 막아내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스즈메는 이후 두 번째 상실을 경험한다. 여행을 인도하던 ‘토지시’인 소타가, 중반부에 도쿄의 대지진을 막기 위해 스스로를 바쳐 재난을 막는 요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여전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던 스즈메는, 소타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요석이 되겠다는 각오로 마지막 모험길에 오른다.

 

 

[크기변환][포맷변환]common (1).jpg

 

 

스즈메의 이런 마음은 죽어가는 소타를 구하면서 바뀐다. 명확한 언급이 나오지는 않지만, 스즈메는 죽어가는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소타를 구하는 과정에서 스즈메는 죽어가는 소타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볼 기회를 얻는다.

 

소타 역시 스즈메처럼 다수를 위한 스스로의 희생을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을 때 살고 싶다고 외친다. 설령 내 목숨이 귀하지 않더라도, 내가 살아 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은 귀하니까. 내가 죽는다면, 내게 의지하던 너는 죽을 만큼 슬퍼할 것이니까.

 

그 마음을 직시한 스즈메는 그제서야 ‘널 위해서라면 난 죽어도 좋다’는 마음 대신, ‘널 위해 내가 끝까지 살아가겠다’는 마음을 받아들인다. 그녀가 재난의 문을 닫으며 마주쳐 온 희생자들의 일상의 기억 너머엔, 그들의 죽음으로 슬퍼할 현실의 누군가가 있을 터였다.

 

아무리 목숨이 덧없다지만, 그런 만큼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과 타인과 보낼 시간이 소중함을 아는 것. 그것이 긴 여정을 통해 스즈메가 깨닫게 된 마음이었다. 그러니 이 영화는 재난이 앗아간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영화이면서, 재난이 할퀸 자리 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이기도 하다.

 

 

 

발이 세 개 달린 의자처럼


 

이 영화에서 단연 시선을 끄는 건 발이 세 개 달린 의자다. 당연히 발이 네 개여야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하나가 빠져 있는 이 의자. 내일의 스즈메가 어제의 스즈메에게 전하는 이 물건은 영화 전체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상징물이다.

 

 

[크기변환][포맷변환]common111.jpg

 

 

여러 맥락을 고려했을 때, 이 불완전한 의자는 그 자체로 재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비유로 보인다. 잊을 수 없는 재난 뒤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말은 그 자체로 폭력일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재난의 존재를 기억에서 말끔히 지워 버리라고 말하는 대신, 재난이 일어났음을 받아들이되 그를 딛고 일어서라고 말한다. 비록 다리 하나가 없더라도, 작품 내내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고 믿을 수 없는 높이로 점프하는 이 의자처럼 말이다.

 

비슷한 의도는 스즈메의 이모의 말에서도 드러난다. 스즈메의 이모는 종반부에 신을 상징하는 사다이진에게 빙의되어, 스즈메가 자신에게 오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며 다소 과격한 발언을 쏟아낸다. 이후 신기가 풀리고 둘은 화해하지만, 이때 이모는 그때 한 말을 두고 “그건 진심이 아니었다”가 아니라 “그게 전부는 아니다”고 말한다.

 


[크기변환][포맷변환]common31.jpg

 

 

재난은 재난 끝에 살아남은 사람에게도, 그 사람을 부둥켜안아야만 하는 사람에게도 마음의 상처를 남긴다. 그러나 그 상처는, 끝까지 덮어두고 외면해야 할 것이 아닌 언젠가는 마음의 문을 열어 직시해야 할 것이다. 다분히 상징적인 이 영화 속에서, 스즈메가 우연히 문단속에 휘말리는 것은 과거의 상처를 마주보길 요구하는 어떤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그 시간이 왔을 때, 우리는 문을 열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우리가 가진 의자의 다리가 네 개가 아닌 세 개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그 세 개의 다리로 어떻게 내일의 발걸음을 내딛을지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음에 감사하기


 

‘다녀오겠습니다’로 시작되고, ‘다녀왔습니다’로 마무리되는 각자의 일상. 그러나 세상엔 일상을 시작하고 나서 영원히 끝맺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이 영화를 본 우리는 아직 그런 위협을 느껴본 적이 없을지 모르지만, 스즈메의 어머니가 그랬듯 갑작스러운 재난이 닥쳐왔을 때 우리가 그를 피해갈 방법은 없다시피 하다. 재난은 일면 ‘일상성’을 가진 존재다.

 

 

[크기변환][포맷변환]common21.jpg

 

 

<스즈메의 문단속>은 사실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국가인 일본의 특수성이 어느 정도 반영된 영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재난의 일상성이 우리를 비껴가는 개념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처럼 대형 사고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늘 뉴스에서 허무한 죽음을 맞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뉴스에 나오는 ‘A씨’가 우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건, 우리도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재난의 가능성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 재난을 피해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는 것은, 한편으로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하루를 무사히 마치고 다녀올 수 있는 것도, 그렇게 다녀온 누군가를 반겨줄 수 있는 것도. 누군가는 닫지 못했을 문을 걸어잠그면서 우리가 품어야 할 것은, 앞으로도 생겨날 그 누군가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위로할 수 있는 마음인 것 같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오늘을 지켜낸 데 대한 감사함도 함께.

 

 

 

에디터 태그.jpg

 

 

[강민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댓글1
  •  
  • ㅎㅇ
    • 굿굿굿
    • 0 0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