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당신을 위해 준비해 온 따뜻한 목도리 - 뮤지컬 '실비아, 살다'

글 입력 2023.03.19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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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뮤지컬 <실비아, 살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실비아, 살다>를 관람하기 위해 동생과 대학로를 찾았다. 동생의 첫 대학로 탐방과 첫 뮤지컬 관람에 내가 함께 있어 기분이 좋았다. 공연 관람 전까지 실비아 플라스에 대해 아는 것은 다른 책에서 인용되어 읽은 그녀의 글 한 편과 그녀의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오븐에 머리를 넣고 가스로 질식사한 그녀. 그리고 그전에 있었던 두 번의 자살시도. 실비아 플라스의 삶보다 죽음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멋쩍음과 미안함을 느끼며 극장으로 발을 옮겼다.

 

막이 오르기 직전 앙상블 배우들의 익살과 활기가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바지 주머니에서 탄산수를 꺼내 관객에게 선물을 하는가 하면 난데없이 ‘시리야’를 외치고 ‘하이 빅스비’를 외쳤다. 알고 보니 극 중 실비아의 이름을 외칠 일이 많은데 종종 아이폰의 시리가 대신 대답을 해주는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 관객들은 서둘러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를 껐다. 그래서 사진 촬영은 스페셜 커튼콜 무대-매번 곡이 바뀐다고 한다-를 선보일 때만 가능하다는 점, 유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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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이 시작되었을 때 무대는 기차 안이 된다. 실비아 플라스 역의 배우가 아이 목소리를 내며 지금의 실비아가 어린 소녀임을 알린다. 어린 실비아는 이 기차에 타는 걸 바라지 않았던 듯하다. 그러나 착하지, 라며 다독이는 엄마 아빠의 말에 얌전히 ‘정해진 자리’에 착석한다.

 

소녀가 기차 여행을 이어가는 동안 한 역에서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묘령의 여인이 타더니 실비아의 옆자리에 앉는다. 어딘가 불안정해 보이는 이 여인은 이상한 말만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선문답. 미래가 과거를 바꿀 수 있을까? 아니면 실비아의 기차표에 적힌 종착역이자 목적지 ‘아홉 번째 왕국’ 얘기를 하며 꼭 거기에서 내리라고 당부한다. 그리고는 붉은 털실로 열심히 뜨개질을 한다. 소녀 실비아가 묻는다. 그건 뭐예요? 여인은 답한다. 목도리야. 어떤 소녀에게 줄 거야.

 

그런데 기차 안이 갑갑하고 무서워진 소녀 실비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차에서 내리겠다고 말한다. 여인은 만류한다. 이 기차에 탄 건 네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도중에 내릴 수는 없어. 소녀는 답한다. 방법이 있어요.

 

“비상정차를 할 거예요.”

 

소녀 실비아의 이 의미심장한 대사를 마지막으로 암전. 도입부 장면이 끝나고 다시 불이 켜졌을 때는 캠브리지에서 문학가들의 파티가 진행 중이다. 어른이 된 실비아는 장학금을 받고 캠브리지에 입학했고, 파티에도 참석한다. 거기서 자신의 시를 ‘여류’ 시인의 미성숙한 시라고 폄하하는 한 남성 비평가에게 빅토리아 루카스라는 여성과 함께 그러는 당신은 ‘남류’ 비평가냐고 반문한다.

 

파티에서 만나 의기투합한 빅토리아에게 실비아는 위대한 시인이 될 거라는 자신의 포부를 밝힌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여성의 듀엣곡은 이 젊은 시인 둘이 희구하는 삶의 모습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면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나로 살고 싶다는 가사의 말미가 각각 다르다. 실비아는 ‘그렇게 살고 싶어’라는 미래형으로 노래한다면 빅토리아는 ‘그렇게 살고 싶었어’라는 과거형으로 일관한다. 여기서부터 불안한 마음이 든다. 빅토리아는 산 사람이 아니겠구나. 아니면, 적어도, 자기가 바라는 삶을 처절하게 실패한 사람이겠구나.

 

파티에서의 운명적인 만남은 한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곳에서 실비아는 전도유망한 시인 테드 휴즈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묘하게 빅토리아가 그 둘의 만남을 저지하려 한 것 같지만, 테드의 눈길이 비추는 세상에 싹이 트고 황량했던 들판이 푸르러지는 것만 같은 환상적인 감각을 실비아가 느껴버린 이상 그 사랑을 누가 걷잡을 수 있겠는가? 실비아가 테드의 뺨을 물어뜯은 전설적인 첫 만남의 사랑은 눈밭을 구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만난 지 반년도 안 되어 부부가 된다.

 

테드는 함께 시를 쓰는 동료 작가이자 실비아의 아버지처럼 그녀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남자다. 테드에게서 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며 아버지의 죽음과 아버지를 그리워한 자신의 첫 번째 ‘비상정차’에 관해 얘기하는 실비아. 그렇다. 비상정차는 삶이 갑갑하고 무섭고 서러운데, 삶은 자신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계속 달려가는 기차처럼 느껴질 때 거기서 벗어나려는 실비아의 자살시도를 의미했다. 테드는 실비아에게 부드럽고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그랬었냐고, 하지만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한다.

 

테드의 사랑은 실비아를 감싸고 보호하고 있는 것 같고 실비아는 그 관계 안에서 행복한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 테드는 실비아보다 인정받는 천재 시인이며 그녀가 뒷바라지해야 할 남편이다.(결혼 후 실비아의 인생에는 살림과 육아, 남편 테드의 글을 타이핑하는 일이 추가되었다) 학생 시절에 받은 스포트라이트에 비해 평단의 인정을 못 받고 있는 실비아는 자신의 시가 지면에 실리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또 다른 천재 시인이고, 한 남자의 아내이다. 실비아는 분명히 테드를 사랑하고 행복하지만, 이 관계에서 공포영화 같은 숨막힘도 느낀다.

 

실비아가 남편에게 느끼는 시기심과 결혼생활로부터 받는 시인 자아에의 위협은 테드의 지인들인 알바레즈, 아씨아와 식사 자리를 갖는 장면의 넘버 <쿵쿵>에서 고조된다. 그린 듯이 정숙하고 가정적인 여성 아씨아의 ‘짬 날 때 시를 써 보라’는 말에 실비아는 폭발한다. 짬 날 때라니, 시는 나의 대체물인걸! 인생인걸! 인생이란 걸 짬을 내어 할애할 수 있단 말인가? 손님들을 내쫓은 실비아에게 화가 난 테드는 실비아가 겪은 모욕감과 꾸준히 받고 있던 위협감을 이해하지 못한다. 성공한 남자 시인의 그림자가 될까 봐 사랑하는 사람의 성공을 온전히 축하할 수 없어 자괴감에 빠지고 마는 실비아의 입장을.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는 균열이 있다.

 

 

빅토리아와 실비아.jpg

서 있는 인물이 빅토리아, 앉아 있는 인물이 실비아이다.

 

 

한편 빅토리아는 실비아를 누구보다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는 인물이다. 난 진짜 이상하고 예민한가 봐, 라고 자책하는 실비아를 <술 탄 물> 넘버에서 변호해주고 북돋아준다. 술 탄 물을 계속 마시는데 취하고 진상짓하지 않고 배기겠냐며. 두 명의 앙상블과 빅토리아, 실비아가 술잔을 들고 정신없이 취하고 노래하고 춤을 춘다. 실비아는 그럼 물에 술을 타주는 사람은 왜 그러는지 의문을 가진다. 빅토리아는 실수로 그랬거나, 일부러 그랬거나, 자기도 그러는 줄 모르고 주는 세 경우가 있을 거라고 답한다. 실비아와 결혼한 테드가 마지막에 말한 유형의 사람이 아니었을까. 악의는 없었겠지만 결혼이 실비아 같은 여성 예술가에게 무슨 영향을 줄지 잘 몰랐고, 자기가 그 문제를 고찰할 필요도 없었던 사람.

 

정신과 의사 루이스 보셔 박사의 상담실로 실비아를 데려가는 이도 빅토리아다. 실비아는 박사에게 말한다. ‘글은 나의 대체물’이고 ‘선택이 아닌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실비아는 자신의 글이 세상에 훌륭하게 받아들여지길 바라다가도 실은 그저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글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을 쓰면 부모님에게 인정받던 어린 소녀일 때와 달리 이제 실비아는 자신의 글을 실어줄 지면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온 세상-비평가, 출판사, 남편 테드-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게재를 거절당하는 아픔과 두려움 때문에 차라리 쓰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결국 쓰지 않을 수는 없다. 글은 실비아의 대체물이자 실비아 자신이고 글쓰기는 선택할 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비아 플라스의 실제 일기를 보면 자신이 글을 쓰면 그것을 엄마가 가져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때문에 글을 시작하기가 힘들었다는 내용이 있다. 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 몫까지 대신하여 재혼하지 않고 혼자서 헌신하며 두 남매를 키웠던 실비아의 어머니, 아우렐리아 플라스. 실비아는 글로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은 한편 자신을 위해 평생 희생한 엄마에게 자신이 쓴 글을 헌납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렸다. 보셔 박사와 빅토리아는 그런 실비아에게 말한다. ‘엄마와 글은 상관없다.’ ‘아빠와 글은 상관없다.’ ‘엄마를 미워해도 된다.’

 

실비아도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러나 실비아는 성공한 시인이자 아내, 좋은 엄마이자 훌륭한 딸이 되고 싶다는 사람이다. 네 가지 역할 중 하나도 쉬운 건 없는데 그걸 다 이뤄내고 싶었으니 그녀 자신을 향한 내면의 꾸짖음은 얼마나 잦고 컸을까. 그런데 그 ‘좋은 엄마’, 위대한 엄마를 해낸 사람이 바로 실비아의 지척에 있는 엄마 아우렐리아였다. 자신은 새 코트 한 벌 사지 않아도 자식들에게는 새 교복을 입히고 비올라 레슨까지 받게 해줬던 엄마. 자신보다 훨씬 더 힘든 상황에서도 좋은 엄마였던 그녀를 떠올리면 실비아는 저절로 엄마로서, 아내로서 자신의 부족한 면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한편 아우렐리아는 누구보다 딸의 행복을 바라지만 딸의 세상을 한정 짓기도 했던 엄마였다. 예를 들면 다리를 모으고 예쁘게 앉을 것에서 시작하여, 궁극적으로는 좋은 남편을 만나기 위해 정숙한 여인이 될 것을 강요했다. 실비아는 엄마와 다르게 살기 위해 몸부림쳤으나 이미 엄마의 가치관을 의식해 한 행동들인 만큼 그것에 진정한 심리적 자유는 없었다. 그런 관계다. 엄마와 딸은. 사랑하지만 나를 제어하려는 엄마가 밉고, 나와 다른 시간을 살아왔기에 그렇게 말하게 된 엄마를 연민하기도 한다. 엄마가 준 상처에 대해 정당한 분노를 가지려 하면 엄마의 견고한 희생이 보여 도리어 내가 미워진다. 참으로 갑갑한 미움이다. 이런 복잡한 감정 뒤에는 세상이 ‘엄마’에게 강요한 자아의 희생이 있다. 그리고 딸들은 그 희생의 변제가 자신의 자아로 이뤄져야 할 것만 같은 기이한 압박감 속에서 자란다. 딸 실비아 역시 엄마에 대한 애증과 원망을 쉽게 떨쳐내지 못한다. 넘버 <엄마를 배신할 수 없어>의 절절한 가사에서 실비아 내면의 갈등이 고스란히 드러나 객석에 앉은 딸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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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가 엄마에 대한 애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장면이 전환되었다. 극은 이제 종반을 향해 달려간다. 아씨아에게서 걸려온 전화로 실비아는 테드와 아씨아의 불륜에 대해 알게 된다. 무려 2년을 속여 온 테드에게 실비아는 배신감을 느끼고, 테드가 집을 나가면서 실비아는 혼자서 두 자녀를 책임지게 된다. 테드가 떠난 후 실비아는 미친 듯이 시를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녀가 타자기를 두드리면 무대 벽에 설치된 스크린에 그녀의 시가 적혀 나왔다.

 

 

<아빠>

(...)

아빠, 나는 당신을 죽여야 했어.

당신은 내가 그러기 전에 죽었지만.

(...)

내가 한 사람을 죽인다면, 나는 둘을 죽이는 셈이야.

자기가 아빠라고 말하며,

내 피를 일년 동안 빨아 마신 흡혈귀,

사실을 말하자면, 칠 년 동안.

아빠, 이젠 돌아누워도 돼.

(...)

아빠, 아빠, 이 개자식, 나는 다 끝났어.

 

 

너무나 어릴 적 떠나가 제대로 원망해 볼 틈도 주지 않았던 가부장적인 아버지 오토 플라스. 남편 테드에게서 아빠를 보며 기댔던 것을 인정하고, 그 두 사람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인지하게 되고 두 남자를 냉소하는 실비아가 보인다. 이미 죽어버렸고 그래서 그렇게 보고 싶어했던 아빠지만, 실비아는 엘렉트라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자신의 시 세계에서 아버지를 죽이기로 한다. 그리고 그런 실비아가 한 사람을 죽인다면, 실비아는 아빠와 테드로 위시되는 두 존재를 죽이는 셈이 된다. 소름이 끼치게 묵직하고 자기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시라고 느껴졌다.

 

테드가 떠난 후 한 달 동안 실비아는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낸다. 한 달 동안 쓴 시가 서른 편에 달할 정도였으니 섬광 같은 고통과 통찰 속에서 실비아의 시심이 태양의 흑점처럼 계속해서 폭발해 버린 게 틀림없다. 엄청난 에너지를 응축했다가 주변에 뿌려대면서. 정신없이 창작 중인 실비아를 보며 빅토리아는 다시 돌아오겠다며 혼자 조용히 어딘가로 떠난다. 실비아는 완성된 시들을 테드의 친구이자 옵저버 지의 편집장 알바레즈에게 보여준다. 알바레즈는 실비아만의 스타일을 찾은 것 같다며, 실비아가 (좋은 의미로) 맹렬한 야수 같은 시를 썼다고 평한다.

 

이 기간 동안 실비아에게는 온갖 사소한 것들이 다 시가 되었다. 손가락을 베인 일, 아이들 간식을 준비하는 일, 심지어 멍이 든 것까지도.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 새벽의 푸르스름한 시간에 시를 쓰는데 시가 너무 잘 써져 하루에 세 편은 쓴 적도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즈음 실비아의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알바레즈는 테드에게 실비아로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한다. 테드와 같이 경청해보니 얼마 전 일어났던 자동차 사고로 해방감을 느꼈다는 이야기다. 자칫하면 죽을 뻔했던 일로부터 해방감을 느끼면서 실비아는 그간의 비상정차 경험, 그러니까 자살시도들을 의식으로 삼게 된다. 자신에게 죽음은 10년마다 한 번씩 치러야 하는 빚이라며, 자살시도를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선택으로 정당화하게 된 것이다.

 

 

10년에 한번씩 죽음을 택하죠

나를 해방시킬 죽음을

 

10년에 한 번씩 나를 확인받죠

나로 살게 하는 확인을

다시 살게 해줄

 

 

실비아가 현대인이고 주변에 의지가 되는 가족과 지인이 많았다면 당장 신경정신과에 같이 가야 할 정도의 심각한 인지 왜곡이지만, 테드와의 결별 이후로 실비아의 상황은 고립에 가까워져 간 것으로 보인다. 생활고는 심각해졌고, 실비아의 시를 읽어주던 알바레즈는 친구와 결별 중인 부인을 자신이 만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는 듯이 자리를 피했다. 돌아온 줄 알았던 테드는 잠시 얼굴을 비친 변덕에 불과했을 뿐 아씨아가 임신을 했다며 실비아를 또다시 버리고 떠난다. 떠나가려는 테드를 붙잡고 그간 쓴 시를 읽어달라는 실비아의 모습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이미 자신을 배신한 남편이지만, 같이 시를 쓰고 서로 평을 해주던 동료 시인으로서의 시간만큼은 당신도 버릴 수 없다는 듯한 믿음이 보였다. 예술 안에서 나눴던 교감과 사랑은 당신도 배신할 수 없다는 듯이. 그러나 테드는 그 시간마저 깨부수고 떠난다. ‘그만하라고 좀! 나는 당신 그 망할 시들 좋아한 적 없어!’

 

테드가 떠난 직후 실비아는 다급하게 시를 투고했던 곳들에서 온 편지들을 뜯어본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 속에 비로소 찾아내고 만들어낸 자신만의 스타일이건만 시에 너무나 극단적이고 섬뜩한 표현들이 가득하고 결정적으로 시가 아름답지 않다며 게재를 거절당한다. 편지의 내용을 읊어주는 앙상블 배우들이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한다. ‘시는 아름다워야 합니다. 시는 아름다워야 해요.’ 가장자리로, 끝없이 세상의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것만 같은 실비아가 원고를 주우려는데 전기가 나가버린다. 전기세를 내지 못한 것이다. 실비아는 생각한다. 세상이 너무 춥다고.

 

절벽 끝에 밀린 사람이 무슨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미 죽음을 커다란 자해로써 수단화하고 자살시도를 일시적인 해방구로, 버거운 삶에 대한 리셋 버튼으로 대체해 버린 실비아는 이제 십 년에 한 번씩 치러야 하는 빚을 치르기로 한다. 그녀는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했다. 죽음은 자신을 다시 살게 해주는 도구이고 수단이므로, 영원히 죽어 있을 것이 아니므로 잠깐의 죽음 후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방편들을 여럿 마련해두었다. 오븐에 머리를 밀어 넣기 전에 아이들이 있는 방에 가스가 가지 않도록 문틈에 테이프를 꼼꼼히 붙여 두었고, 그전에 아이들이 배를 곯지 않도록 빵과 우유를 준비해 두었고, 아이들을 돌봐주러 올 파출부가 다음날 아침에 오도록 해두었고, 집주인 할머니에게 다음날 잠긴 저희 집 문을 열어주십사 부탁도 해두었다. 파출부가 자살시도를 한 실비아를 발견하면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쪽지도 써 두었다. ‘제발, 의사를 불러주세요.’ 정말로 죽어버릴 생각이라곤 없었던 게다. 그러나 우리는 실비아 플라스 인생의 끝을 알고 있다. 모든 방책은 실패했고, 그녀는 제때 발견되지 못했고, 그렇게 오븐에 머리를 넣은 채로 그대로 질식사했다.

 

여기서부터 관객은 또 다른 긴장감을 갖게 된다. 실비아 인생의 끝을 이미 알고 있는데, 이 뮤지컬의 제목은 <실비아, 살다>이다. 실제로는 죽어버린 사람을 살려내는 결말이 다가올수록 나는 불안감을 느꼈다. 실비아를 살려내는 장면이 납득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극에서 받은 감동도 얕아질 것이기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예상대로 빅토리아가 나타나 오븐에 머리를 넣으려는 실비아를 만류한다. 빅토리아는 실비아의 미래, 실비아의 과거, 정말로 죽어버린 실비아 그 자신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실비아의 마음을 잘 알았고 실비아의 편에 섰던 것이었다. 이대로 또 자살을 시도하면 죽게 된다며 실비아를 말리는 빅토리아에게 실비아는 묻는다. ‘사라지면 안 돼? 비겁한 거야?’

 

빅토리아는 비겁하지 않다고, 그러나 네 잘못이 아닌 걸 알아달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일면 더 억울한 일이다. 내 잘못이 아닌데 이리 고통스럽다니. 그럼 왜 살아야 하는가? 빅토리아는 실비아에게 어릴 적 너와 같이 억지로 기차에 타게 된 소녀들, 지금의 너처럼 세상이 시리고 추운 소녀들을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그 소녀들에게 네 글이 따뜻한 목도리가 되어줄 거야.” 그 말을 듣는데 그만 눈물이 터졌다. 이 말을 들으면 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생각이 아니고 감정일까? 생활고와 테드와의 관계 등 삶의 여러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실비아의 마음이 위로로 꽉 채워졌을 것이라 느꼈다. 사명 같은 희망이 그녀의 것이 되었으니까. 모든 걸 다 빼앗긴 줄 알았던 그녀의 빈손에 비로소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삶의 이유가 주어졌으니까.

 

실비아는 죽음의 의식을 포기하고 빅토리아의 손을 잡는다. 빅토리아는 자신의 과거를, 너의 미래를 바꿔 달라며 사라진다. 미래에 내가 너의 친구가 되어줄 거라는 말을 남기고서. 그 말을 들을 때 힘들었던 때의 기억이 났다. 저 기분을 알고 있다. 나 자신과 화해하고 싶은 기분. 실비아의 선택에 마음이 꽉 차오르는 이는 나였다. 과거 나를 덥혀주었던 목도리들에 보답하고자 어설프게나마 직접 실을 뜨던 시간들도 떠올랐다. 소리 죽여 눈물을 닦는 동안 삶을 택한 실비아는 전부터 결말을 고민하고 있던 소설 <벨 자>를 완성하고 있었다. 유리종에 갇혀 그곳에서 나오려면 죽어야만 하는 주인공을 다시 살릴 것인가, 죽게 둘 것인가. 그녀의 표정에서 어쩐지 그녀가 무슨 결말을 택했는지를 알 것 같았다. 원고의 끝에 남긴 서명, 실비아 플라스의 이름을 지우고 한결 가벼운 얼굴로 ‘빅토리아 루카스’라는 필명을 새겨넣는 실비아. 그리고 암전.

 

다시 불이 켜졌을 때 무대는 처음의 그 기차 안으로 돌아와 있었다. 실비아가 기차 여행을 하며 빨간 목도리를 뜨고 있다. 어릴 적의 실비아처럼, 한 여자아이가 부모의 손에 이끌려 기차로 들어온다. 자기 뜻과 상관없이 기차 여행이라는 인생에 올라탔지만 자리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고 미래에 추운 세상을 맞이할지도 모르는 어린 여자아이. 어찌나 자그마하던지 그 아이를 꼭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부모로부터 듣는 말 역시 실비아 때와 똑같다. 그저 기차 여행일 뿐이야. 너무 예민하구나. 착하게 굴어야지. 부모가 나가자 실비아는 소녀에게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아도 된다고 말한다. 우리 같이 종착역인 아홉 번째 왕국에 가보자고 아이를 안심시킨다. 아이가 실비아의 뜨개질에 대해 묻자 실비아가 답해준다. 따뜻한 목도리야. 완성되면 어떤 소녀에게 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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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해주렴, 네 잘못이 아니야. 그럼에도 세상은 가혹할 수 있겠지만 그때는 우리가 준비해 온 목도리를 둘러줄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마지막 날까지 너무 외롭지 않게 함께 가보자. 뮤지컬 <실비아, 살다>는 그런 말을 해주고 있었다. 완벽한 결말에 심장이 뜨거워졌다. 감동적이면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녀의 그 순간에 이런 말을 해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많은 것이 바뀌었을 텐데.


극이 끝나고 고개를 돌리니 옆자리에서 역시 마스크를 적시며 실비아의 삶을 눈으로 좇고 있던 동생이 보였다. 공연이 끝난 후 여운에 빠진 채로 프로그램북과 극본집을 구입했다. 프로그램북에는 제작진의 말이 쓰여 있었고, 그들은 힘겨웠던 때에 온기와 용기를 나눠준 이들을 빅토리아라 지칭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내게 인생의 친구 빅토리아가 나 자신 말고 또 있다면 그 사람은 동생일 것이다. 선선한 밤 혜화역까지 걸어가는 도중에 동생이 소감을 전했다.

 

“우리 이 뮤지컬 한 번 더 보자.”

 

좋고 말고.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컬쳐리스트 신성은.jpg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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