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어른이 된다는 건 이런 걸까

정말이지 이상하다
글 입력 2023.03.1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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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약간의 변화를 가져다준 뮤지컬이 다시 돌아왔다는 이야기에 개막 첫 주 공연을 예매했다. 지금 생활은 그때만큼 척박하지 않아서 반쯤은 그리운 마음으로 반쯤은 그때의 힐링을 취할 생각으로 예매했는데 막상 공연이 다가오자 일이 생겨서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최근 1~2년 동안 직장인 생활이나 과거에 대한 글을 많이 쓰게 되었는데 실제로 내가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주제가 그것들이다. 지금은 잃어버린 과거의 감정, 재미없어진 직장인의 월요일부터 금요일.

 

며칠 전 출근하다가 단톡방에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회사에서는 일하기 싫다는 이야기를 나눴고 회사가 거지 같다고 하자 다른 직원이 왕거지라고 덧붙여줬다. 일하다 껄끄러운 상황이 되었을 땐 친구들 단톡방에는 회사에 다니는 건 이런 걸까 하고 하소연했다.


며칠 전엔 집에서 대화하다 ‘그런 건 말 꺼낸 사람이 하는 거다’라면서 떠넘기기를 시전하면서 회사에서 배운 거라고 우겼다. 회사에서 그런 거 배운다고. 말 꺼낸 사람이 담당자가 되고 말하는 데는 돈이 드는 거 아니니까 문의를 가장한 진상 짓을 시도하고 끝없이 독촉한다고. 회사 다니면서 이런 거 배운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이렇게나 재미없는 일상을 살다가 기대하던 뮤지컬을 보러 갔다. 좌석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 시절 화가가 되고 싶었던 인물이 어른이 되어서는 그림을 못 그린다고 주저하는 씬을 보았다. 그렇게나 의미가 있는 일이었는데 자연스럽게 못 한다는 말부터 나간다니. 재미없는 어른이 되는 건 정말 한순간이었다.

 

요즘 약간의 즐거움과 거대한 재미없음으로 살고 있다. 매일 하루 8시간씩 재미없게 지내면서 ‘이놈의 회사 때려 쳐야지’하는 마음을 품지만 실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나는 성실하지 못하다.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지치는데 더 힘을 내서 뭔가를 해야 한다니 어른의 삶이란 이런 걸까.

 

미래의 나를 위한 투자라는 개념으로 나를 쥐어짜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생각만으로 버겁고 지친다. 그런면서 자격증 책을 들여다보려고 하고 지금 내가 부족한 게 뭔지 살핀다. 그래야만 하니까. 그래서 많은 시간을 직장인으로 살아가는데 할애하고 있다.


일하는 틈틈이 쇼핑도 하고 공연 예매도 한다. 내내 싫은 시간으로 살아갈 수 없으니 사이사이 뭐라도 끼워 넣는다. 쇼핑한 게 오면 개시할 날을 기다리고 한 달에 한 번은 공연을 보러 간다. 나간 김에 맛있는 디저트를 사기도 하고 새로운 카페에 가서 모르는 메뉴를 시켜본다. 날이 좋으면 조금 걷고 괜히 여기저기 발길을 뻗는다. 그런 어느 하루의 몇 시간이 메말라가는 식빵 사이에 스치듯 지나간 잼이 되어준다.


고작 이러고 산다. 

 

*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자아실현을 위한 직업은 애초에 내 삶에 발을 들이지 못했으니 논외, 적성을 찾으라기엔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직장인만큼 체질에 잘 맞는 게 없다. 근데 그 삶이 퍽퍽하다. 회사를 바꾼다 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런 숙명이 있고 나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어떤 부분에선 기대할 게 없다는 걸 알고 있고 그 사실을 굳이 부정하며 모르는 체할 생각도 없다. 문제는 이걸 극복해야 좀 살만해진다는 건데 그게 지금 안 되고 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그냥 산다는 선택지도 있지만 그걸 고르기엔 아직 나는 젊다. 벌써 체념해버리면 앞으로의 긴 시간이 더 고단해질 것 같아서 그건 고려하지 않는다.

 

그렇다. 이렇게 맹렬하게 뭔가를 거부하려고 하는 데 거부라는 선택과 감정만 남고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걸 인정할 뿐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 어른의 삶이 이렇게 뭐가 없고 곤혹스러운 줄은 몰랐다.


직장인 삶이 마이너스로 점철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때가 되면 자고, 정해진 시간에 먹고, 바쁠 때는 부정적인 감정이 뒤로 밀려났다가 사라진다. 우울하지도 않고 번아웃이 올 정도로 몰려있지도 않다. 그런데도 이렇게나 의욕도 기력도 활기도 없을 수가 있다니 정말이지 이상하다.

 

어른의 재미없는 삶이란 건 이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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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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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에 쏙드는게 제 생활이야기 같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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