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 시대 멜로드라마의 현주소, 사랑의 이해 [드라마/예능]

글 입력 2023.03.1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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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와 영화의 장르에서 ‘멜로’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멜로’ 장르의 풀네임은 ‘멜로드라마(melodrama)’이다. 장르의 명칭 자체에 ‘드라마’가 들어간다. 음악을 뜻하는 ‘멜로스(melos)’에 극을 의미하는 ‘드라마(drama)’가 결합한 이 장르는 18세기 문학에서부터 비롯되며 시대별, 나라별로 의미가 조금씩 변모하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통상적으로 쓰이는 멜로드라마의 정의는 ‘주로 연애를 주제로 한 통속적이고 감상적인 극’이다.


나는 ‘모든 캐릭터의 욕망이 사랑에서 비롯되고, 결국 종착지도 사랑으로 달려가는 극’을 보면 멜로드라마라고 느낀다. 사랑 때문에 복수하고, 아파하고, 그럼에도 또 사랑하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사랑 때문에 삶의 모든 걸 잃고도 다시 사랑하는 <비밀>, 사랑에 기꺼이 청춘 한 몸 내던져 그 사랑에 내가 데일 것 같은 <케세라세라> 등. 주요 캐릭터의 모든 행동의 근원이 사랑이고, 그 사랑에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더라도, 또다시 사랑을 선택하는 드라마가 나에게는 정통 멜로 드라마이다.


멜로드라마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오랜만에 괜찮은 멜로드라마를 찾았다. <사랑의 이해>. 이 드라마는 앞서 과거처럼 사랑에 목매거나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다 내던지는 유의 멜로드라마는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거창한 움직임이 아니더라도, 앞서 말한 내 기준으로 보자면 완벽히 충족하는 멜로드라마였다. 멜로드라마가 사라져 가는 시대 속에서 <사랑의 이해>가 차별화를 두었던 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이 시류를 녹여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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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한 기획


 

사실 멜로드라마(이하 멜로) 장르는 요즘 드라마에서 인기 있는 장르는 아니다. 이제는 기본이 되어버린 ‘N포 세대’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과거와 비교하면 사랑에 목숨 거는 서사의 공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연애와 결혼은 포기해야 하는 세대에게 사랑 때문에 목매는 이야기는 올드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설득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이에 시류를 맞춰 멜로보다는 가볍게 보기 좋은 로맨스코미디가 많이 보인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돈 벌고 먹고살기 힘들어 사랑을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고, 그런 드라마도 호응을 얻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사랑의 이해>는 이런 점을 전면에 드러낸다. 이 드라마의 배경은 은행이다. 가장 돈에 민감한 곳. 빈부의 대우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 가장 최전선에서 이를 목격하는 곳. 자본주의에서 비롯되는 주요 캐릭터들의 계급도 분명하게 나타낸다. 포스터에서부터 계단의 상하 구도를 통해, 사원증의 높이와 직급을 통해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사랑을 이야기할 때 돈을 이야기하면 속물이라는 취급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젠 현실적으로 돈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 더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사회에서, 당당히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멜로를 이야기할 것이지만 돈의 논리를 숨기지 않을 것이라고.


특히 이 작품은 소설 <사랑의 이해>를 기반으로 하여 IP 원작 특유의 기본적인 완성도를 갖추었으며, 원작 팬을 시청자로 유입할 수 있었다. 또한, 잔잔하지만 따뜻한 연출로 호평받았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조영민 감독이 연출을 맡으며 소설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 구현을 기대하게 했다. 이에 이 멜로 공감의 주 타깃층인 2030에게 인기 있는 유연석, 문가영 배우의 캐스팅으로 더욱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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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밀도 있는 고찰


 

<사랑의 이해>는 스토리 진행은 결코 빠르다고 할 수 없다. 각 회 엔딩에 새로운 사건으로 나아갈 시발점을 보여주어 흥미를 자아내지만, 이를 풀어내는 속도는 사실 느리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상수와 수영, 두 주인공 중 상수의 시선으로 주로 풀어내어, 초반부 수영의 행동을 시청자가 이해하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약속에 한 번 늦었다고 3화 내내 싸늘하게 무시하는 여자주인공의 행동이라니. 궁금증을 자아낼 수는 있었지만, 속도감이 중요한 초반부에서 빠른 전개를 원한 시청자의 공감을 사기에는 부족했다.

 

그러나 16화를 모두 보았을 때, 이 작품은 결코 지지부진한 이야기는 아니다. 속도감이 빠르지 않지만, 그 일정한 속도감을 끈기 있게 유지하며 각 사랑에 대해 밀도 있게 고찰한다. 같은 직장 내에서 과거와 현재를 함께하지만, 구설에 오를 수 있는 사내 연애에 대해서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두 주인공. 그리고 두 주인공 간 각자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어긋남, 그 결핍의 틈을 파고드는 새로운 캐릭터. 사소한 선택들이 모여 결국 두 주인공은 서로 닿지 못하는데, 이 이유가 매우 현실적이고 이 과정이 세밀하게 그려져 이해할 수 있다.


사랑이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되냐는 물음은 보통 사랑하는 마음을 이외의 환경이 뒷받침해줄 수 없을 때 쓰이는 말이다. 극 중 석현의 캐릭터에서, 사랑하는 정은과 경제적 수준이 맞지 않아 조건이 맞는 지은과 결혼하는 것처럼.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는 입체적인 모습을 그린다. 최상류층인 미경은 상수에게 마음도 물질도 다 주지만, 상수는 부담스러워하며, 오히려 둘의 마음의 거리는 멀어진다. 아버지 병원비를 위해 옥탑방 보증금을 뺀 종현에게 자신의 집까지 내어주고 병원비도 보태준 수영의 사랑을 종현은 부채감으로 받아들인다. 환경이 부족하지 않고 여유롭더라도, 마음만으로는 안되는 것이다. 석현 역시 지(知)은이 아닌 정(精)은에게 다시 돌아가게 된 것처럼.


그러나 또 상수와 수영을 엇갈리게 한 제일 큰 요인이 환경이다. 상수는 환경의 차이 때문에 잠시 머뭇거리고, 그 찰나의 머뭇거림을 용서받지 못해 수영과 크게 어긋난다. 수영 역시 그러한 환경과 자본 수준의 차이를 회사 내에서도 피부로 느끼며, 억지로라도 거리를 두려고 노력한다. 사랑이 사랑만으로 안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유명한 말마따나 사랑이 밥 먹여주지 않으니까. 그런데 우리가 갖출 수 있는 다른 환경도 최대한으로 갖춰도, 사랑이 흔들리면 또 사랑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끝없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시청자가 함께 따라가며 사랑에 대해 찬찬히 고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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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 그러나 


  

드라마의 주인공은 모두 캐릭터가 확실하다. 수영은 누구보다 심지가 곧고 단단하지만, 동생의 죽음과 가족 관계로부터 깊은 결핍을 가지고, 갖은 구설수 탓에 인간관계에 마음을 닫고 흘러가는 인물이다. 상수는 수식에서 변하지 않는 값을 뜻하는 이름처럼, 한 번 내린 결정과 선택에 대해 책임의 무게를 느끼는 사람이다. 언뜻 상수 캐릭터가 다정하고 부드러워서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면밀히 살펴보면 강단 있고 일관성 있는 캐릭터성이기에, 계속해서 모진 말을 내뱉고 상수를 밀어내는 수영에게 끝까지 행할 수 있는 캐릭터이다. 둘 다 겉으로 보는 것과 다른 입체성이 있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이 드라마에서 싱그러움을 담당했던 미경 캐릭터 역시 톡톡 튀어 드라마의 텐션을 불어넣었다. 흔히 남자주인공을 짝사랑하는 서브 여자주인공 포지션이 맡을 악한 캐릭터가 아닌, 오히려 여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의 미묘한 관계를 알아챈 후에도 여자주인공에게 ‘널 여전히 좋아할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구김 없고 당당한 캐릭터이다. 미경뿐만 아니라 은행의 다양한 캐릭터들도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세 얼간이, 따뜻한 팀장님, 얄밉지만 결혼까지 이어진, 마 대리와 배 계장 등. 단조로운 드라마의 분위기를 환기해 주었으며, 특히 경필 캐릭터는 수영·상수·미경과 모두 엮이며 다원적인 관계성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수영은 결핍이 두드러지는 인물이지만, 극이 진행되는 내내 속내를 알 수 없는 캐릭터로 그려졌다. 문가영 배우 특유의 연기가 아니었다면 계속 회피를 반복하는 지지부진한 캐릭터로만 남을 뻔했다. 종현은 여유롭지 않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있는 인물이지만, 오히려 비현실적 희망을 추구하는 모습이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수영의 손에 펜으로 반지를 그려주며 알이 제일 큰 반지라고 말하거나, 막연히 성공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기보다 오히려 가난을 촌스럽게 그리는 것 같았다. 세상 물정을 몰라야만 가난 속에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초반 종현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이상만 추구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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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 시대의 멜로라는 점



캐릭터와 스토리 진행에서 아쉬운 점이 분명 존재했지만, 그럼에도 <사랑의 이해>는 이 시대 멜로의 지평을 열어주었다. 사랑을 지난하게 말하는 것이 더 어려운 세대에서 사랑을 말하기 위해서는, 계급론을 비롯한 현세대의 큰 고민을 명백히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현실을 쳐내느라 바빠도, 어떤 사람은 사랑에 목매느라 바쁘겠지’하며 극적 허용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정통 멜로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현세대에 대한 공감이 필수고, 그 공감이 자본주의에서 비롯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의 첫걸음과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사랑의 이해>는 유의미했다.


드라마는 완전한 열린 결말로 나온다. 수영과 상수는 돌고, 돌고, 또 돌아서 함께 망각의 언덕을 걷는다. 망각의 언덕을 걷기 전, 그 수많았던 선택의 순간에서, ‘만약 솔직했더라면’의 순간이 스친다. 참 많이도 엇갈리고, 도망쳤다 싶다. 그러나 그렇게 수많은 어긋남 속에서도 또다시 만났다면, 또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서로의 한 시절에 존재했다는 것만으로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그 또한 사랑일 테니. 수영과 상수는 계속해서 망각의 언덕을 걸어간다. 둘은 아직 돈가스를 먹지도, 사랑을 속삭이지도 않았다. 이들이 어떤 현실에서 어떤 멜로드라마를 그릴지. 나는 이들의 이야기가 ‘멜로’라고 느꼈으니, 결국 종착지도 사랑으로 갈 것이라 믿으며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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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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