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비워야 나로 살 수 있다면 - 지나친 고백 [도서]

흠집을 알아채야 우리는 함께 살 수 있다.
글 입력 2023.03.0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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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하다고 해야할까 위험하다고 해야할까. 책의 저자인 크리스티 테이트가 전하는 고백들은 말그대로 '지나치다.' 출간과 동시에 이슈와 뜨거운 논란을 낳은 '지나친 고백'은 그도 그럴 것이 개인의 역사, 내밀한 연인과의 관계, 트라우마 등을 담고 있기에 편히 읽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이 여자가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그것도 순수 본인의 의지가 아닌 심리 상담가 로젠 박사에 의해) 없는 이유는 그래야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5년 안에 자신을 바꿔 놓으라는 크리스티의 엄포로 시작된 집단 심리 상담에서 그녀는 충격과 엄청난 부담감을 느낀다. '비밀을 유독하다'고 믿는 로젠 박사의 지휘 아래 자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다른 내담자들과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1부 '지나치게 매끄러운 심장의 표면'에서 크리스티는 스스로 자신이 왜 상담이 필요한지 깨닫고 로젠 박사의 철학에 깊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어릴 적 항문에 요충이 생겨 남들에겐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린 이야기부터, 쓰레기 같은 애인들을 만나 그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억지스러운 행동을 하고 자신에게 역겨움을 느꼈던 경험들, 그리고 친구 아버지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한 이야기까지.


가만히 들어주기는 커녕 그녀를 다그치고 참견하고 화내는 다른 내담자들과 그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과연 이게 의미가 있을까? 이게 어떻게 처방이야!라는 생각이 드는 로젠 박사의 요구에도 크리스티를 포함한 내담자들은 이상하게 그의 의견대로 행동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나누게 된다. 그렇게 얻게 되는 것은 다름아닌 그 순간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감정'이다.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면, 

크리스티의 강렬한 감정들은 오늘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튀어나오게 될 거예요. 

크리스티는 누군가와 애착으로 연결될 텐데요. 

그 사람은 해변에 가게 될 수도 있어요. 그러고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고요. 

사랑은 크리스티를 남은 평생 동안 천번쯤 해변으로 이끌고 갈 거예요."

 

 

삶에 대한 냉소를 품었던 그의 발화들이 떠오르고 파도와 함께 쓸려갔다. 거품처럼 사라지는 삶 앞에서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품기란 어려운 것이었다. 해변에 대한 공포를 풀어내며 크리스티는 비로소 한 꺼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선 삶 전체에 대한 회의에서 벗어나게 된다. 몸은 여전히 떨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한 걸음, 자신에게 온 큰 로펌의 제의를 받아들이게 된다.


다음으로 크리스티는 놓지 못하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한다. 연인관계에 있어 섹스는 필수적이라는 그녀의 생각은 그녀를 옥죄는 단단한 줄이다. 상대에게 맞춰야만 자신과 상대 모두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과 으레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들어온 믿음의 총 집합체가 그녀가 사람과 맺는 관계의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본인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는 사람이 아닌데도 관계를 놓지 못하고 애쓰고 인내하는게 그녀의 주특기일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낯설지 않은 나의 모습도 발견했다. 누구나 사회적 가면을 쓰지 않나? 그러나 아주 친밀한 관계에서까지 그게 가능하기나 할까.


 

"(애인의 모습 중) 어느 쪽이 진짠지 어떻게 알아내죠?"

"계속 모습을 드러내세요."

"어디예요?"

"어디에든."

 


어쩌면 로젠 박사에게 상담을 받으러 가는 사람들은 일종의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나여도 괜찮아. 화내고 집어 던지고, 끊어내고 기꺼이 슬퍼해도 그게 자신의 진실한 모습이라면 드러내도 좋아. 


사회적으로는 서로 말하지 않는게 상책인 내밀한 것들까지도 공유하는 이유는 누굴 궁지로 몰 수 있는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타인과 친밀해지기 위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 한발짝 크리스티는 자신에게 건강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인내하고 "진짜 끝"을 맺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새로운 욕망들도 피어오름을 느낀다. 새로운 애인을 사귀고 나만의 가족을 꾸리고픈 욕망을. 스캐든사에서 능력을 발견하고픈 욕망. 이 욕망은 희망이라고도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결혼을 해 아이를 낳은 그녀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가 직접 말했듯 집단 상담과 그에 대한 글쓰기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이제 그녀의 마음 속에는 컵에 손잡이를 붙일 수있는 흠집이 생겼다. 그녀가 그렇게 말함으로써 말이다. 


아프지 않다고 말했을 땐 없었던 그 흠집이 그녀로 하여금 밖의 세상과 끈끈한 유착을 가질 수 있게 해준 게 아닐까. 나에게도 손잡이를 붙일 수 없는 컵이던 시절이 있었을까. 사건이라도. 은둔하며 나에 대해 몰랐으면 좋겠다 싶었던 때도, 나를 알아달라고 소리치던 때도 있었다. 어쩌면 그 두 시간을 또 다시 찾아와 흠집을 안 보이게 가려버릴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다시, 나는 해변으로 누군갈 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 삶이란 그런 것이니까. 계속될 그녀의 이야기 처럼 나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며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로젠 박사가 얼굴 가득 미소 지었다.  "아이디어가 하나 있어요." 

그는 두 팔을 더 넓게 벌렸다. 

"제가 느끼기엔 크리스티를 누가 좀 안아줘야 할 것 같아요. 

막 새로운 정체성을, 

그리고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새로운 방식을 얻으려는 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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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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