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예술과 사람이 만나는 길목에서

글 입력 2023.03.08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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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잘 만들어진 예술 작품이라 할지라도 예술가 한 명의 힘만으로 그것을 세상에 보여주기는 역부족이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 출판사가 있고 영화와 관객 사이에 배급사가 있듯이, 어떤 예술 분야건 사람에게 예술을 전하는 존재가 필요하다.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다양한 실무자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오늘도 바쁘게 예술과 사람 사이를 오가는 이들이 없다면 예술은 사람에게로 흐르지 못하고 한 곳에 고여버릴 것이다.

 

본래 경영지원 분야에서 경력을 쌓던 이민주 님이 문화재단 일에 눈을 뜬 계기도 “예술경영은 예술과 사람을 잇는 일”이라는 문화예술경영 수업 교수님의 말이었다. 그 말은 평소 늘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했던 민주 님의 마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때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는 건축 관련 문화재단에서 실무자로 일하는 중이다. 문화예술과는 관련 없는 분야에서 일을 시작해 문화재단에서 근무하게 되기까지 민주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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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서 문화예술경영 수업을 들었는데,

예술경영이란 예술가와 관객을 잇는 일이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마음에 꽂혔어요.”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건축 관련 문화재단에서 근무하시며 주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실무 중심으로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재단마다 목적과 성격이 조금씩 다를 텐데, 저의 경우 크게 ‘경영관리’와 ‘사업기획 및 운영’ 두 가지로 업무가 나뉩니다. 경영관리 분야에서는 회계, 세무신고, 법인카드 관리, 급여 관리 등 재단 경영에 필요한 일을 해요. 사업기획 및 운영 분야에서는 재단에서 운영하는 건축 관련 공모사업과 미술대학 후원사업을 맡아서 진행하고 있어요. 

 

 

사업기획 및 운영 분야에서 하시는 일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저희 재단의 주요 사업인 건축 관련 공모전으로 말씀을 드릴게요. 사업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6개월이 걸리는 여정 동안 사업 전반을 운영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공고문 작성부터 시작해서 홍보, 심사위원 섭외, 홈페이지 접수사항 체크, 심사, 시상식, 리셉션, 전시회, 멘토링, 도록 제작까지 하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방대한 일을 맡고 계시네요. 보통 경영관리와 사업기획 및 운영 업무를 같이 맡는 게 흔한 일은 아닐 것 같아요. 


맞아요. 재직 중인 곳이 규모가 크지 않은 신생 재단이라 경영관리 업무와 사업기획 및 운영 업무가 분리되어 있지 않아요. 채용할 때도 회계, 세무에 대한 기초 지식이 있으면서 사업 운영에 거부감 없는 사람을 원했죠. 마침 저는 경영지원 분야 경력이 있었던 데다가 사업 운영에도 관심이 있었기에 경력자로 입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쪽 분야 취업이 쉽지 않아서 포기하려던 차에 된 거라 정말 신기했어요. 지금까지 내가 뭔가를 해놓았다면 그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된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죠. 

 

 

입사 전까지는 문화재단과는 상관없는 회사에서 근무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문화재단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을까요?


대학교에서 문화예술경영 수업을 들었는데, 예술경영이란 예술가와 관객을 잇는 일이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마음에 꽂혔어요. 수업을 듣다 보니 예술가의 처우를 개선하고 예술의 가치를 높이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부터 CSR(기업의 사회공헌 활동)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데다가, 행복을 전파하며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제 평소 가치관과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의 일을 하시며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건축 공모전 시상식을 마치고 제가 스탠딩 와인파티 형태로 기획한 리셉션 현장에서 마음이 벅차올랐어요. 참가자들과 심사위원분들이 편안히 대화하며 서로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며 제 기획 의도가 행사에 잘 반영되었다는 걸 실감했거든요. 신경 쓰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긴장한 채 현장에 있었는데, 제 일이 누군가의 행복에 기여했다는 생각에 보람이 생기더라고요. 현장에서 학생들은 물론이고 관계자분들께도 ‘공모전 퀄리티가 좋다.’, ‘담당자가 고생했겠다.’ 같은 말도 많이 들었어요. 그때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싶었는지 한 번 더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공모전의 마무리로 도록을 제작하면서도 보람을 많이 느꼈어요. 재단에서 처음으로 제작하는 도록이어서 그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어요. 그중 하나가 참가자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거예요. 거기서 좋은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a4용지 1장을 꽉 채워주신 분도 꽤 계셨죠. 사업을 처음 진행하며 제대로 하고 있나 고민될 때가 많았는데, 앞으로의 방향을 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일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사업이 시작되는 하반기에 입사한 탓에 출근 첫날부터 바빴던 게 힘들었어요. 사업기획 및 운영 분야의 업무가 다양하다 보니까 돌발상황도 많이 생기더라고요. 처음 해보는 일에 부딪힐 때마다 쉽지 않다는 걸 자주 느꼈죠. 경영관리 쪽으로는 경력이 있었지만, 재단은 공익법인이라는 특수성이 있어서 회계업무도 다시 공부해야 했어요. 한동안은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느라 정신없었어요. 누구에게나 다 처음은 있으니까, 하나씩 배우면서 전문가가 되어가는 중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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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왜 문화예술을 업으로 삼으려고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계속하고, 스스로 확신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건축 관련 전공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화재단에서 생소한 업무를 맡을 때면 자기 자신이 의심되거나 불안할 때도 있을 것 같아요. 민주 님은 그럴 때 어떻게 업무를 계속해 나가나요? 


저는 저를 믿기보다 근거를 믿어요. 건축을 잘 모른다면 건축 서적을 뒤지고 관련된 사례를 찾아보는 거죠. 그렇게 근거를 만들어갑니다. 저는 재단에서 다른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입장일 때가 많아요. 원하는 바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근거가 꼭 필요하죠. 물론 근거가 있다고 해서 언제나 원하던 결과를 얻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데이터예요. 제가 하는 일은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데이터를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예술은 사람들에게 낯선 분야인 것 같은데, 재단에서는 건축예술 분야의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건축은 예술과 기술의 복합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예술보다는 기술이라는 인식이 더 큰 것 같아요. 현재는 인재 발굴과 네트워킹 작업에 집중하고 있어요. 공모전 하나를 해도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참가자가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연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재단의 목표예요. 앞서 말씀드린 리셉션에 신경을 쓰는 것도 그 때문이죠. 설문조사에서도 심사위원분들과 가까워지고 같은 건축학과 동료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올해는 그 의견을 반영해 네트워킹 작업에 더욱 신경 쓸 예정입니다.


공모전 참가자분들을 인터뷰해보면 외국 유학을 필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예비 건축가들인 건축학과 학생들이 국내 건축가들을 만날 기회가 적어서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속적으로 네트워크 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우리나라 건축예술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은 그런 마음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이 인터뷰를 읽는 독자 중 문화재단에서 근무하고 싶어 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 문화재단에서 근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자격 요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업무의 범위가 넓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유연한 사고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관련된 경험이 있으면 가장 좋아요.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문화예술과 관련된 채널 또는 단체를 스스로 만들어서 운영하는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요즘은 자기 자신을 브랜딩하는 시대니까요. 좋아하는 것과 나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지도 고민해 보셨으면 해요. 이 업계에는 소위 ‘덕후’들이 많거든요. 자신의 일에 자부심과 애착을 가진 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왜 문화예술을 업으로 삼으려고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계속하고 스스로 확신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님도 ‘덕후’라고 할 정도로 열렬하게 좋아하는 예술 분야가 있었나요?


사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아직도 저는 찾아가는 과정에 있고, 그래서 자신의 일을 정말 열렬하게 좋아하는 분들을 볼 때면 제가 못 이기겠다는 생각도 해요. (웃음) 사실 저는 이 업계에서 문화예술이라는 수단으로 누군가에게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어요. 문화예술은 제 가치관을 실현할 수 있는 일종의 매개체였던 거죠. 

 

 

예상하지 못했던 신선한 답변이에요.


경영 관련 전공이라 그런지 ‘경영자 마인드’가 강한 것 같아요. 문화예술 분야에 있는 친구들과 대화해보면 제가 좀 독특한 것 같기는 해요. 저는 문화예술로도 충분히 돈 벌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거든요. 이 업계에 들어왔다는 것만으로 저임금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도 바꾸고 싶고요. 꿈 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꿈은 꾸라고 있는 거니까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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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으로 원하는 것을 계속 상상하고,

하고 싶은 것을 본인만의 결과물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어요.”

 

 

이 일을 하시면서 새롭게 관심 갖게 된 분야가 있을까요?


원래 문화복합공간에 관심 많았는데 건축 관련 재단에서 일하며 더 관심이 생겼어요. 사람들은 어떤 공간에서 영감을 얻고 행복해할까 자주 생각해요. 예술 스터디에서 하는 발표 주제도 ‘공간의 영감’으로 잡았을 정도죠. 또, 건축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는데 지금 재단에서 일하며 자연스레 유명한 건축가와 건축물을 알게 돼요. 그러다 보니 건축을 공부해볼까 생각도 들어요. 

 

 

최근 민주 님에게 인상 깊었던 문화복합공간이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후암동에 있는 순수박물관이 기억에 남아요. 차를 마시며 전시를 볼 수 있는 곳인데, 개인의 삶 속 이야기를 전시로 풀어냈다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장님이 신혼집으로 살던 곳을 개조해 갤러리로 만들었다 하시더라고요. 사적 공간이던 곳이 다양한 문화예술의 현장이 된 거죠. 


제 평생 꿈도 예술을 위한 문화복합공간을 만들어 운영하는 거예요. 전시도 하고 예술가들의 작품도 판매하는 공간을 꿈꿔요. 제가 학부생일 때 ‘청춘마루’라는 공간이 있었는데, 1층에서는 세미나실이 있어서 회의를 하거나 영화 감상, 독서를 할 수 있었고 2층에서는 전시, 3층에서는 강의가 진행되었거든요. 그 공간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서 저도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좋은 경험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민주 님이 올해 목표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어떤 모습으로 2023년을 채워 가고 싶은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올해는 ‘계획하지 않고 일단 하자.’를 목표로 정했어요. 계획한 것을 다 못 하고 힘들어하는 게 아니라 일단 실행해서 해낸 일을 기록하고 만족해하는 사람이 되려고 해요. 전시회를 보고 싶으면 보러 가고, 글 쓰고 싶으면 글 쓰고, 책 읽고 싶으면 바로 책 읽는 사람이요. 유연하게 살아가며 일단 저지르는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치며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여기서 해주세요.


이 인터뷰를 읽는 분 중에 문화재단 취업을 원하는 취준생이 있다면, 머릿속으로 원하는 것을 계속 상상하고 하고 싶은 것을 본인만의 결과물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요즘 사회는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저는 조금 늦을 수도 있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

 

이미 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사람이 다른 분야에서 새롭게 시작하기로 결심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게 뚜렷하게 보인다면, 끝내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면 용기를 내는 것도 방법이다. 조금 늦을 수도 있다는 민주 님의 마지막 말 한마디는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하고 싶은 것을 조금 늦게 발견해도, 그래서 지금부터 시작해도 괜찮다고. 예술과 사람이 만나는 길목에 서서 새로운 전문가로 거듭날 그의 미래가 기대된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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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예술업계 알아보고 있었는데 정말 도움되는 정보들과 조언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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