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거짓을 쌓아올려 드러낸 진실 [도서/문학]

"선생님은 그렇지 않은가요?"
글 입력 2023.03.0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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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력적인 사람은 믿지 않아요. 그 안에 뭘 숨기고 있는지 알 수가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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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분명 범죄인데, 거짓된 모습을 꾸며낸 ‘사기꾼’들은 다른 범죄자들과는 달리 매력적이고 똑똑한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대중이 그들의 매력에 매료되어서일까, 사기를 치는 사람이 주인공인 작품들은 무수히 쏟아져 나왔고 제법 인기도 끌었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넷플릭스의 <애나 만들기>, 그리고 쿠팡플레이의 <안나> 모두 사람들을 속이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안나>의 원작 소설로도 알려진 ‘친밀한 이방인’은 매력적인 사기꾼을 추적해나가며 그의 서사를 짚어간다. 그는 정말 매력적이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와 정말로 다를까?


‘나’는 소설 작가다. ‘나’는 어느 날 ‘소설의 저자를 찾는다’며 신문에 실린 자기 소설 <난파선>을 마주하게 된다. 제대로 출판했던 책도 아닌데 어떻게 자기 소설을 가지게 된 건지, 그리고 저자는 왜 찾는 건지 등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글의 기고자와 만난다. 기고자의 이름은 ‘진’, 그녀는 그 소설의 주인인 사라진 남편을 찾고 있다고 했다. 진을 기만한 내용과 자신이 연기한 인물 내력을 빼곡히 적은 일기장을 두고 사라진 ‘엠’이라는 사람. ‘나’는 그 일기장을 바탕으로 여자인지도 남자인지도, 이름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엠’이라는 사람을 추적한다.


여자 / S여대 교지 에디터 · 피아노 교수 / 이유미 - 양복집 막둥이 딸로 태어난 이유미는 원하는 건 다 가지면서 컸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조숙한 느낌으로, 주변 사람들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 필립스 부인이 본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그녀에게 피아노를 배우며 예고 입시를 꿈꿨지만 결국 일반 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된다. 그곳에서 수학선생님과 관계하고, 학교에 소문이 나자 선생님은 면직되고 이유미는 S여대 근처 하숙방에 방을 얻어 근처 고등학교를 다니며 입시를 치른다. 목표인 S여대에 가지 못한 그녀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S여대 재학생 행세를 하고, 얼떨결에 S여대 교지 에디터로 활동하게 된다.

 

그녀는 첫 번째 배역으로 제법 인기를 얻었고, 연애도 순조로웠다. 그러나 불행은 순식간이었다.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자 결혼을 약속했던 이상우와 파혼했고,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으며, 어머니는 보호시설로 갔다. 돈을 벌어야 했던 이유미가 선택한 두 번째 배역은 피아노 강사. 그녀가 일하던 편집숍 주인의 딸 ‘강미리’의 신분을 베낀 인물이었다. 그녀는 가짜 이력서로 학원 피아노 강사로 일하다 추천을 받아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피아노 교수로 일하게 된다. 그곳에서는 증명서를 요구했고, 그녀는 위조 가게에 가서 프린트하듯 위조 서류를 받아와 제출한다. 학생들에게 진심을 다한다며 좋은 평을 받던 이유미는 의사 임재필과 결혼하며 평탄한 삶을 살 것 같았지만, 그녀에게 와야 할 우편이 강미리네 집으로 배달이 되면서 그녀의 두 번째 연기도 끝나버린다.


여자 / 실버타운 의사 / 안나 - 이유미가 새로 정한 가명은 ‘안나’. ‘실버타운 상주는 의사 자격증만 있으면 신선놀음’이라는 말에 안나는 위조 전문가를 찾아가 의학 학위 증명서를 받아온다. 그리고 간호조무사 학원에서 배운 응급처치로 그녀의 세 번째 역할 놀이를 시작한다. 안나는 옥상에서 죽으려던 윤 노인과 마주치고, 서서히 가까워진 둘은 연인이 된다. 윤 노인의 자식들은 유산 문제로 그녀를 못마땅해했는데, 그는 안나에게 자식을 원했다. 자식 문제로 부딪혀 안나는 그를 떠났고, 윤 노인은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에 사고로 죽는다. 그리고 그 무렵 위태롭던 안나의 어머니도 돌아가신다. 그녀 곁을 스쳐 가는 사람들. 그러나 그 스침엔 감각도, 슬픔도 없다.


남자 / 러시아 선교사의 아들 · 소설가 / 이유상(엠) - 차로 정처 없이 떠돌던 안나는 남자처럼 보이기로 한다. 그것이 안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공중화장실에서 <난파선>을 발견하고, 그 책에 매달리듯 몰입한다. 며칠을 내리 굶은 그는 산길을 내려와 작은 교회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자신을 챙겨주는 진을 만난다. 러시아 선교사의 아들 ‘이유상’이라는 그의 네 번째 배역. 진은 호의를 베풀어 그를 자신의 집에 데려가고, 자기 아들이 그를 잘 따르는 모습을 보며 그와 정서적으로 긴밀해진다. 진의 엄마인 한권사는 둘의 결혼을 반대했지만 결국 이유상과 진은 결혼한다. 결혼식 이후 진은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았고, 이유상은 진이 함께 떠나자고 한 다음 날, 자신의 배역을 낱낱이 적은 원고를 놓아둔 채 사라진다.


‘나’는 그런 줄 알았다. 여러 배역을 연기하고 죄책감도 없이 아내를 두고 사라져버린 이유상, 안나, 혹은 이유미. 그러나 <난파선>의 첫 인쇄본의 발송지를 찾아가 맞닥뜨린 것은 또 다른 거짓이었다. 진과 이유상이 진실과 함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그곳에는 진과 마리암이 진실과 남아있었다. ‘나’가 따라온 모든 이유미의 자취는 모두 진이 꾸며낸 계약 내용이라는 진실. 결혼해야만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기에, 그래야만 동성 애인인 마리암과 함께 살 수 있었기에 이유미와 계약을 맺었다는 진실. ‘나’는 진에게 “당신은 그 사람을 이용했을 뿐이에요”라며 차갑게 내뱉는다. 진은 되묻는다.

 

“선생님은 그렇지 않은가요?”


이유미의 거짓된 허상을, 진의 도구적 이용을 비판하려던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이유미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위해 그의 거짓들을 따라가는, 그를 더 잘 이용하기 위해 수많은 주변 인물을 인터뷰하며 그의 삶을 파헤치는, 진의 계약을 도덕적으로 재단하는, 그리고 외도를 한 자신의 과거를 남편에게 덤덤히 털어놓는 사람이었다. 친밀하고도 매력적인 이방인이었던 ‘그’. ‘나’는 그의 매력적인 모습들을 주변인들의 인터뷰로 발굴해내고 그에게 서사를 부여했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군가는 엠의 거짓이 자신 앞에 막혀있던 길 외에 다른 길을 열어줬다고 말한다.

 

그는 실로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와 정말로 다를까? 비슷한 욕망이 우리와 다르게 발현되는 것에서 오는 묘한 도덕적 우월감. 어쩌면 그 때문에 대중들을 사기 범죄를 저지른 캐릭터들을 매력적이라 느끼는 건 아닐까.

 

 

[정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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