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요함이 전달해 주는 재즈의 아름다움 - East Meets East

재즈로부터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위로를 선물받았다.
글 입력 2023.03.0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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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보면 까탈스럽고, 어떻게 보면 무던하다. 특별히 선호하는 음악 장르도, 가수도 없다. 그냥 유튜브에서 플레이리스트를 틀어서, 처음 5초가 마음에 들면 그 플레이리스트가 그날 듣는 노래인 것이다. 즉, 처음 5초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비 없이 끄고 다른 플레이리스트를 찾아 나선다.


이러한 나의 버릇을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으나, 음악에 대한 이해도를 현저히 부족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확고한 진실이다. 특히 재즈는, 나의 마음속에서 '유쾌하고 경쾌한 음악'이라는 선입견이 강했다. 유쾌하고 경쾌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고요함은 아닐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다.


특히 재즈 음악이 주가 되었던 영화 '라라랜드'와 2022년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유행어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가 그 생각의 주축이었다. 어디선가 재즈는 서로 주고받는 '말'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재즈는 마치 사람들이 수다를 떠는 것과 같구나 마음속으로 납득했다. 즐겁다는 듯이 앞에서 서로의 악기를 갖고 서로의 이야기를 말하고 들어주는 그 순간은 마치 카페에서 옆 테이블의 수다를 훔쳐듣는 것만 같았고, 그 속에서 기쁘게 음악을 즐기고 몸을 흔들다 보면 연주자들뿐만 아니라 나까지도 신나는 것만 같았다.


2023년 2월 26일, JCC 아트센터에서 진행되었던 재즈 공연 [East Meets East]을 보러 가던 순간까지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포스터에 있는 프로필 사진을 바라보며 색소폰의 손성제 연주자님, 피아의 송영주 님, 드럼의 신야 후쿠모리 님, 베이스의 토루 니시지마 님, 이 넷의 수다를 들을 수 있는 순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분들은 얼마나 유쾌하고 즐거운 대화를 할까 기대감과 궁금함이 컸다.


그런데 공연을 보기 전, 로비에서 포스터를 빤히 바라보다가 다음과 같은 문구에 문득 의문이 들었다.

 

 

고요한 재즈의 물결 위로 반짝이는 공명



이 설명이 기묘하다고 느낀 이유는 앞서 말했듯 내가 생각하는 재즈는 일단 고요함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 크다. 그러나 더욱 이질감이 느껴진 이유는, [East Meets East]의 앙상블에는 드럼까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드럼이 없었다면 '고요한 재즈'의 존재에 대해 의심이라도 했을 것 같다. 그러나 드럼의 존재는 포스터에서 확연하게 드러나 있었고, 드럼은 내 머릿속에서 가끔씩 이끌려서 갔던 교회 밴드의 드럼, 아이돌 밴드의 드럼, 록 밴드의 드럼뿐이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모두 파워풀했고, 땀을 흘리고 있었으며, 강인한 리듬으로 곡의 흥을 돋우는 아주 강렬한 존재였다.


로비에서 인상을 찌푸리며 포스터를 한참 동안 노려보던 나는 결국 '고요하지 않으니까 물결 위로 공명이 일어나는 것이구나!'라고 어떻게든 스스로를 이해시키고 고개를 끄덕인 뒤 관객석으로 입장했다.



통합 포스터_ East Meets East.png

 

 

객석에 입장해 공연이 시작한 후, 나는 곧바로 나의 생각이 편협하였음을 인정했다. 어쩌면 이렇게 섬세하고 다정하고 고요할 수가 있을까. '고요한 재즈의 물결 위로 반짝이는 공명'이라는 설명 외에는 이 공연을 한 줄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재즈는 '사람 냄새'가 난다고 표현할 수 있다. '재즈'하면 무엇이 떠오르냐 묻는다면 한겨울의 난로 옆 따뜻한 가정집이 떠오르기도 하고, 왁자지껄한 펍에서의 맥주잔 부딪히는 소리가 떠오르기도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색소폰은 강렬하게 자신의 말을 꺼내고, 그 옆에서는 피아노가 색소폰의 이야기에 맞장구치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 옆에서 드럼과 베이스도 한마디씩 거들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주장을 강렬히 펼치고, 그 대화가 모여 마지막에는 함께 깔깔거리며 웃는다고 말이다. 그곳은 가정집일수도, 펍일수도 있다. 하나 확실한 것은 그들은 뺨을 붉게 물들이며 서로 서로 몸을 부대끼고 있고, 서로에게 머리를 기대며 체온을 나누다가 웃음을 터트린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번의 재즈는, 사람 냄새보다는 '새벽 냄새'가 난다고 표현하고 싶다. 서로의 시간과 공간을 존중하고, 그렇지만 아주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서로를 어루만져 준다.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거나 혹은 서로를 바라본다. 가만히 그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본다. 말 한마디 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그런 아주 시원하고도 포근한, 고요하지만 그렇기에 옆의 존재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아주 어둡고도 다정한 새벽의 냄새다.


특히 나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 것은 드럼이었다. 나는 그날, 드럼이 하나의 가벼운 깃털이 되는 순간을 마주했다. 그래, 깃털이라고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다. 시끌벅적한 음악 속에서 항상 시원하게 분위기를 환기시켜주던 심벌은 이번 공연에서는 아주 고요하고 부드럽게 다른 악기들 사이를 스며들어 있었고, 묵직하고 파워풀하게 대놓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던 드럼은 이번 공연에서 아주 점잖지만 그럼에도 굳건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드럼 소리에 가만히 집중하고 있다보면, 심장 한 켠을 아주 부드러운 깃털로 간지럽혀지는 느낌이었다.


 

131.png

 

 

[East Meets East]에 특히 관심이 갔던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이 공연이 한국-일본 정상급 재즈 연주자들이 만나서 하는 공연이었기 때문도 있다. 당장 몇 주 전에 일본 여행을 9박 10일 동안 다녀오며 내가 느낀 일본은 '단정함'이었다. 길거리도, 풍경도, 음식도,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모든 것이 단정했다. 이토록 깔끔한 곳의 음악이 한국과 만난다면 어떤 분위기가 나타날지에 대한 궁금함이 컸다.


한국과 일본의 만남은, 아주 조용하고 고요하다. 예의를 중요시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앞서서 하기보다는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고 존중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시 생각하는 서로의 문화가 음악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 파장이 더욱 깊이 마음속에 새겨진다.

 

요즈음 소란스러운 마음이 크다. 한 해가 시작한 지 벌써 두 달이 지나 석 달째를 들어서고 있고,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사건사고가 일어난다. 아주 고요한 곳으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 한편에서 품고 살던 요즘,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아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위로받은 기분이다.

 

 

[김푸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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