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해방감에 도달하는 지나친 고백의 연대기 [도서]

책 <지나친 고백>을 읽고
글 입력 2023.03.05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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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사회에 한 발 더 나아갈수록,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수록 여러 가지 모습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나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나를, 내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은 내 약점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고 가면을 꼭 붙들고 진짜를 드러내지 않으려 애써왔다. 내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헷갈렸고, 이유 모를 일상의 답답함도 당연하게 안고 살아갔다.


이는 그저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기본적으로 취해야하는 자세라 여겼고, 상황에 따라 나를 숨길 수 있는 유능한 어른의 증표라고 여겼다. 근데 ‘지나친 고백’이라니, ‘비울수록 충만해진다’라니, 굳게 믿어왔던 나의 가치관과 태도를 흔들리게 하는 어구였다. 과연 이게 진짜일까라는 의구심과,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일 수도 있겠다라는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그렇게 나는 기대 반 의심 반으로 내가 나이기 위해서 나를 고백하는 크리스티의 연대기 <지나친 고백> 읽어나갔다. 


책은 처음 시작부터 끝까지 ‘지나친 고백’이 가득 담겨있었다. 처음엔 이렇게 까지 다 말해도 되나? 라는 걱정이 들만큼 그녀의 지나친 고백이 어색하고 부담스러웠으나, 책의 중간-마지막 즈음엔 무덤덤하고 쿨하게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를 자각한 순간 말하지 못할 비밀이 무엇이 있겠냐는 생각과 함께 비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해방감을 경험했다.


그 해방감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만난 문장들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숨통이 트이고, 홀가분함을 느끼며, 이내 자유로워지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것이다. 

 

“진심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다면, 다시 말해 크리스티가 말한 것처럼 진짜인 사람이 되고 싶다면, 어린 시절부터 억눌러온 감정 하나하나를 느껴볼 필요가 있어요. 외로움, 불안, 분노, 공포 같은 것들을요.” -p.47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 크리스티는 한 동료를 통해 심리 상담 그룹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심리치료사 로젠 박사를 만나게 된다. 박사는 일대일이 아닌 그룹에서 나에 대한 모든 것 일상적인 것부터 비밀까지 다 털어놔야 한다고 말한다. 처음엔 이상함을 느끼고, 의심을 거두지 않았지만 크리스티는 어릴 적 시달렸던 항문 해충, 식이장애,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해변 사건, 전 애인과의 관계들을 모두 그룹에서 털어놓고, 그 과정에서 경험한 감정과 생각을 직면하고 소화시켰다. 


나를 지나치게 고백하는 일은 간단해보이나 간단치 않다. 생각에 머무르는 것들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부터, 꺼내기 직전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해보는 것, 꺼낸 후 어색함에 몰려오는 부끄러움들을 모두 견뎌내는 일련의 과정을 무수하게 경험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고백 연습을  체화시켜야만 비로소 나를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로젠 박사의 그룹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은 구성원들 사이에 비밀이 없어야한다는 것이었다. 비밀을 지키고 있는 것은 해롭고 유독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타인의 비밀을 지키고 있는 것은 내 몫이 아닌 수치심을 품는 일이라고 말한다. 왜 타인의 비밀을 듣고 안고 있는 것이 버겁고 힘든 일임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타인의 비밀을 들으면, 더 나아가 이 비밀을 꼭 지켜달라는 당부를 얹을 때면 어쩐지 마음이 불편하고 무거웠는데 그 원인을 이해했다. 타인의 수치심까지 내가 함께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밀이라고 묶어두면 보통의 이야기들이 더 큰 무게를 갖게 됨을, 이 무게는 해로움과 수치심을 동반하고 있음을 알았다. 비밀은 꽁꽁 숨기기보다 상호 간에 풀어 공중분해시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싸우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왜요?” “왜냐하면 크리스티가 원하는 건 진정으로 친밀한 관계니까요.” “그게 싸워야 된다는 뜻이에요?” “기꺼이 싸우려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친밀해질 수 있겠어요?” -p.162


크리스티가 그룹에서 카를로스와 어떤 의견 충돌도 없이 지내왔다고 자랑하자 로젠 박사는 크리스티에게 싸우게 해달라고 기도하라는 말을 하였다. 어떻게 해서든 싸움을 피하려고만 한다면 깊은 관계가 될 수 없다는 로젠박사의 말은 크리스티를 돌아보게 했다. 그녀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분노를 느낄때면 이 감정을 애써 외면하고 다른 감정으로 가장하려고 노력했다. 싸움은 그녀와 거리가 있는 단어였다.


크리스티의 이러한 성향은 나와 무척이나 닮았다. 나 역시 갈등을 무서워하고 애써 피하려고만 하는 성격이다. 불편하면 숨어버리고 분노는 최대한 다른 긍정적인 감정으로 변환시키려 애쓴다. 이는 가까운 관계도 겉도는 관계로 만들어버리는 성질이 있음을 깨달았다. 내 진심을 꺼내지 않으니 타인은 나의 진심을 알리가 없고, 나는 그 타인이 불편해 자꾸만 피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 진다.


싸워야 친해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갈등과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며 그 불편한 감정을 서로 간의 노력을 통해 해소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는 원칙임을 알았다. 우리는 조금 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용기 낼 필요가 있다.


“이 말들은 정직하고, 진심에서 우러난 말들이고, 진짜예요. 이건 크리스티 거예요. 그리고 크리스티는 이걸 저한테 공유해줬죠. 고맙습니다.” 그는 손바닥으로 심장 위를 문질렀다. 분노의 세계에 온 걸 환영해요, 마말레. 이게 크리스티를 도와줄 거예요.“ -p.168


크리스티는 학창시절부터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커왔다. 비밀은 타인에게 말하면 안된다는 조언도, 진로에 대한 갈림길에서도, 크고 작은 부모님의 지시를 거부하지 않고 커온 순종적인 사람이다. 그런 크리스티가 처음으로 상담에서 분노를 표출했다. 로젠 박사가 카를로스를 더 챙기는 듯 하고, 자신보다 마니를 더 도와주는 듯 느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참지 못해 화를 낸 순간 로젠박사는 크리스티를 칭찬했다. 분노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그녀를 축복했다. 꼭 모든 것을 참고 인내해야만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도, 자신이 온화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적정한 선 안에서는 얼마든지 화를 표출하고 드러내야 나를 지키고 타인과의 관계도 건강하게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웠다.


분노를 표현함으로써 그녀는 자신의 진실한 내면의 감정을 마주하게 됐고,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배웠으며, 한 단계 성장한 자신을 만나게 된 것이다. 세상에 불필요한 감정과 생각은 없음을 깨달으며 자기혐오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자신을 잘 아는 성숙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내 평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나는 괜찮았다. 충분히 괜찮았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p.427


상담을 시작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크리스티는 어느 순간 본인이 정말 괜찮아졌음을 온몸으로 확실하게 느꼈다. 이 ‘괜찮음’에 확신을 갖게 된 것도 굉장한 변화다. 항상 불확실함으로 대해오던 자신의 감정을 확실함으로 변화시킨 것이니 말이다.


그녀는 더 이상 이전만큼 의기소침하지도, 사랑하는 사람과 불안정한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도, 죽음을 꿈꾸지도 않았다. 로젠 박사의 처방들은 크리스티를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크리스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처방이었다. 살아온 나날을 되짚어 순간 순간 외면했던 감정들을 마주하게 했고, 억눌려온 것들을 수면위로 꺼내 숨을 쉬게 해주었다.


크리스티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낯설어 했지만 더 이상 로젠박사와 상담 그룹사람들은 그녀를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소화시키지 못했던 과거의 이야기와 감정들을 되짚으며 크리스티는 충분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감정을 다루고 애착 관계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를 나로 받아들이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나조차도 외면하고 싶은 내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며, 나의 이야기와 감정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

 

크리스티 테이트의 <지나친 고백>은 넓은 세상으로 나와 더 이상 지나친 고백이 아니게 되었다. 그녀의 이야기에 독자들은 개개인의 치부를 함께 공유하게 되었고, 인간이라면 느끼는 비슷한 감정들을 함께 꺼내게 되었기 때문이다. 형태의 차이일 뿐 우리는 어딘가 모르게 비슷함을 공유하고 사는 존재임을 자각했다.


그녀의 고백을 통해 나는 조금 더 세상을 대범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을 것 같고, 용기 있게 일상을 살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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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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