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힘을 빼는 연습: East Meets East

글 입력 2023.03.05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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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통합 포스터_ East Meets East.png

 

 

재즈

Jazz

 

재즈는, 멋있다. 투박한 파찰음의 연속인데도 어쩐지 부드러운 듯 한 이 발음마저도. 그래서 나는 아침에 침대에서 눈을 뜰 때마다 알지 못하는 제목의 재즈 음악을 듣고, 분위기 좋은 카페를 향한 발걸음에 흘러나올지도 모를 재즈의 경쾌함에 대한 기대를 가득 실어 담는가 보다. 멋있고 아름다운 무언가를 동경하는 건 인간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본성이니까.


유난히 바람이 쌀쌀하게 불던 2월의 어느 날, 따끈따끈한 설렘을 품고 향한 곳은 한일 재즈 아티스트들의 합동 공연 'East Meets East'가 열리는 대학로 JCC 아트홀이었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매표소가 보였고, 옆에서는 음반을 판매하고 있었다. 조금만 여유가 있었더라면 음반도 소장하고 싶었는데 하고, 지금에 와서는 일견 아쉬운 생각이 든다. 계단을 빙글빙글 돌아서 내려가니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왔는데, 내가 앉을 좌석은 2층으로 무대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자리였다. 푹신한 의자와 탁 트인 시야 덕에 무엇보다도 공연을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이 시작되자 불이 꺼졌고, 안내 또는 인사말 없이 바로 연주가 시작되었는데 바로 그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음악 연주자들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소개나 인사말은 그들의 음악이 아닐까, 시작하자마자 아름다운 재즈 선율에 압도되면서 공연에 몰입할 수 있는 근육이 마구 깨어나는 듯 하였다.

 

그동안 재즈는 서양적인 장르라고 생각했으며, 이는 재즈의 출생만을 고려한다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재즈라고 하면 왠지 끈적끈적하고, 꼭 매혹하는 듯한 분위기를 상상했었다. 그런데 이날 공연에서는 동양적인 감각으로, 담백한 느낌으로 재즈를 접했던 기분이다. 그리하여 음악을 들으며 떠올리는 이미지도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매력적인 남녀가 정장을 입고 위스키를 홀짝홀짝 들이키는 바라던지 사람들이 바쁘게 걸어다니는 유럽의 도시를 떠올렸지만, 이날의 연주를 통해서는 바다와 대숲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세계를 동서양의 이분법으로 구분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쩌면 듣는 사람도 연주자도 모두가 동양의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런 감상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문화권의 누군가가 들었다면 또 다르게 들렸을 이 음악이라는 장르의 매력은, 바로 그런 무형의 감상법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했다.


연주는 색소폰(손성제 님), 피아노(송영주 님), 드럼(신야 후쿠모리 님), 베이스(토루 니시지마 님) 총 네 가지 악기로 이루어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악기는 드럼이었다. 지금까지 보고 접했던 드럼은 락 음악에서의 파괴적이고 강렬한 사운드를 담당하는 타악기였지만, 이 공연에서의 드럼은 그보다 훨씬 부드러웠고 섬세했다. 재즈 음악을 종종 들었다지만, 그렇다고 해도 난생 처음 듣는 소리였다. 사사사삭- 촤라라락- 숲의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같기도, 바닷물에 담근 맨발을 스치는 물 소리 같기도 했다. 인공이 아닌 꼭 자연의 노래 같아서, 숲과 바다가 그리울 때마다 언제든 재생하고 싶었다.

 

이날 연주가 끝나고 다시 재즈 음악을 들어 보니, 전에는 들리지 않았던 드럼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듣는 소리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소리가 되었다. 공연을 관람하기 전에, 음악을 연주회에 찾아가서 들을 때의 이점이 과연 무엇인지에 고민했었다. 사실 음향 기술이 발달한 지금, 스마트폰 음악 어플을 통해 직접 들을 때만큼이나 선명한 음질로 같은 음악을 들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연 이후 드럼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면서, 공연이 제공하는 시각적인 체험이 청각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직접 보아야지만 들리는 게 있다는 생각, 그래서 젊을 때 최대한 많이 보고 듣는 연습을 해야 인생에 주어진 수만 수천 개의 자극 중 절반이라도 취해 갈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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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공연은 음악에 대한 집중도를 높여 주었다. 그동안 나에게 음악은 보조적인 존재였다. 그러니까 음악은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할 때, 수학 문제를 풀 때, 책을 읽을 때, 샤워할 때, 중심 활동을 진행하면서 느껴지는 자그마한 쓸쓸함을 달래기 위한 보조 역할을 수행하던 것이다. 때문에 어쩌면 나는 음악을 음악 자체로 마주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늘 곁눈질만 하던 음악을, 불 꺼진 공연장에서 비춰지는 유일한 스포트라이트의 대상으로 바라보니 그 느낌이 새삼 달라졌다. 그런데, 음악에만 집중한다고 해서 에너지를 마구 쏟는 느낌은 아니었다. 예컨대 공부에만 집중할 때는 놀면서 설렁설렁 공부할 때보다 배로 힘이 들지만, 음악에만 집중할 때는 오히려 더 열심히 몰입해서 휴식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힘을 빼는 법을 잊어버린 기분이었다. 무심코 정신의 끈을 느슨히 하고 몸으로 주의를 돌리면, 이유는 모르겠지만 몸 전체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음을 발견한다. 툭 하고 어깨를 떨어뜨리고 보면 원래 올라가 있던 어깨의 높이만큼이나 높은 긴장도와 함께 지내고 있었음을, 그런데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었음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쉴 때조차 제대로 쉬는 법을 모른다. 방학이 찾아오면 그동안 못했던 공부나 인턴이나 아르바이트로 학기 중보다도 더 바쁘게 지낸다. 잠들기 직전, 온전하게 쉴 수 있는 그 시간마저도 인터넷 서핑이나 SNS처럼 딴길로 새다 보니 정작 그 시간이 끝나면 오히려 더 피곤이 몰려오는 것이다. 힘을 내기 위해 정말 필요한 건 힘을 빼는 연습이다.

 

재즈는 힘을 빼는 법을 알려주는 음악 같았다. 송영주 피아니스트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공연을 할 때마다 건반의 왼쪽 끝부터 오른쪽 끝까지 모두 쓰면서 현란한 퍼포먼스를 보여 주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하지만 당장 닥쳐올 일조차 여유롭게 일관하는 이들과의 연주를 통해, 마음 놓고 편하게 임하는 방법을 배워 가고 있다고.

 

그건 연주자분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래, 당장 오늘이 지나면 개강이 훌쩍 다가올 것이고, 나는 미래에 대해 도무지 아무런 확신조차 갖지 못한 고학년생이다. 그럼에도 음악을 듣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온 몸에 힘을 쭉 뺀 채 행복한 사색에 잠기고 싶다고, 이번엔 좀 열심히 쉬어 보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김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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