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치거나 혹은 먹히거나 - 간니발 [드라마]

글 입력 2023.03.0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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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하다는 감정은 다양한 상황에서 올라온다. 예상하지 못한 습도 높은 날씨에, 떨치지 않은 사람에게, 혹은 원인도 모르는 불쾌가 문득 치밀어 오른다. 최근 가장 불쾌가 차올랐던 시기를 뽑으라면, 난 당장 드라마 <간니발>을 보던 때를 고르겠다. 1화부터 시즌1의 마지막 7화를 볼 때까지 나는 불쾌감에 몸서리치면서도 재생을 멈출 수 없었다. 욕이 치밀어 오르면서도 멈출 수 없는 자기 파괴적 행위였으나, 시즌1을 끝내면서 당장 다음 시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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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니발(Gannibal)이라는 제목에서부터 떠오르는 단어가 있을 것이다. 바로 ‘카니발리즘(Cannibalism)’이다. 그러나 제목은 카니발이 아닌, ‘간니발’이다. 이에 대한 해답은 드라마를 볼수록 유추가 가능하다. 그에 대한 답은 아래에 서술하도록 하고, 먼저 드라마 내 카니발리즘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간니발의 주인공은 경찰인 ‘아가와 다이고’로, 그는 실력이 뛰어난 경찰이었으나 딸 마시로에게 접근한 성범죄자를 사살하면서 반강제적으로 시골인 ‘쿠게 마을’로 전근을 오게 된다. 겉으로는 평화로운 마을이었지만, 어느 날 산에서 ‘고토 가문’의 당주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그 시체에 사람에게 물린 자국을 발견하면서 아가와는 마을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아가와가 짐작했듯이 고토 가문에는 식인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전까지 문화 콘텐츠 내의 식인 소재와는 다르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식인 소재는 ‘한니발 렉터’이다. 영화 <양들의 침묵>이나 드라마 <한니발> 등에 등장한 한니발이 단순히 기호의 의미로 살인하고 인육을 먹었다면 <간니발>의 고토 가문은 장례와 같은 주술적인 의미에 가깝다.

 

고토 가문은 당주가 죽자 그의 시신을 나누어 먹으며 그를 추억한다. 이는 가문의 결속력과 비슷한 행위이며 모두가 이를 따른다. 그러나 고토 가 당주는 다르다. 그는 오랫동안 사람을 먹어왔으며 마을의 영향력이 세다는 이유로 그 사실을 숨길 수 있었다. 사람을 먹은 부작용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도 미치는 병에 걸려 말로에는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그가 이어온 식인은 가문의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계속되었다.

 

아가와 이전에 근무했던 경찰은 이를 알아차리고 진실을 밝히려 했으나 결국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이 때문에 모두가 알면서도 기피했던 진실에, 새로운 인물인 아가와가 다가가고자 하는 것이다.

 

 

 

쿠게 마을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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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게 마을이라는 공간적 배경은 상당히 양면적이다. 청년층이 부족하여 전구를 가는 일과 같은 사소한 일을 경찰에 부탁하고, 큰 사건은 드문 평화로운 마을이다. PTSD로 말을 잃은 딸 마시로를 따뜻하게 반겨준다. 전형적인 TV 속 시골마을 같다. 그러나 인심이 가득한 훈훈한 마을 같다가도 그들만의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순식간에 배척해버린다. 폐쇄성의 중심에는 ‘이장’이 있다.

 

오지랖이 넓어 남에게 관심이 많은 만큼 도움을 주는 줄 알았던 ‘이장’은 아가와 가족을 일거수일투족 감시하고 있었다. 그의 지시 아래 마을 사람들 역시 평소에는 아가와 가족에게 따뜻하게 굴더라도 이장의 심기를 거스르면 인사조차 하지 않으며 아가와를 투명 인간 취급한다.

 

그들은 고토 가문이 식인하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에게 피해가 갈까 싶어 묵인했고 오히려 이장의 딸이 낳은 아이는 살아있었으나 사산으로 거짓말해 아이를 고토 가문에 빼돌렸다. 이처럼 매년 고토 가문에 식량용으로 아이를 제공했다. 그리고 이를 조사하려는 아가와를 막으려 했고 피해자를 감금했다.

 

쿠게 마을처럼 절반이 고령 인구인 마을을 일본어로는 ‘겐카이슈라쿠(限界集落)’라고 한다. 드라마 ‘간니발’은 카니발리즘과 겐카이슈라쿠의 합성어로 완성되었다. 즉, 제목에서 애초에 드라마 내 모든 진실을 내포하고 있었다.

 

 

 

절대적 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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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니발>의 가장 큰 특징은 완전히 선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군가를 추적하는 작품이라면 대부분 그 대상이 절대 악이며 이를 추적하는 사람은 정의감이 넘쳐야 한다. 그러나 <간니발>은 이와 다른 방향으로 인물들을 설정했다.

 

아가와의 경우, 그는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인물이라기보다, 흥미로운 사건에 이끌리는 인물이다. 그는 범인을 추적할 때면 잔혹하게 범인을 폭행하며 그 순간을 즐긴다. 이는 쿠게 마을에서도 눈에 띈다. 그는 고토 가문을 추적하다가 크게 다치고 심지어 가족의 안위가 위험해질 뻔한 순간에도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더 조사하려 한다. 이를 보고 아내가 지적할 만큼 그는 정의감보다는 눈앞에 있는 흥미에 몰두하는 인물일 뿐이다.

 

모순은 아가와의 딸 마시로에게도 보인다. 마시로는 그에게 접근한 성범죄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집에 직접 간다. 아가와가 성범죄자를 폭행하자 오히려 자기가 좋아서 다가간 것이라며 아버지를 울며 말린다. 이는 피해자에게 상당히 폭력적인 장면이자 드라마 내 가장 불쾌한 대사이다. 마시로가 중심인 장면에서는 마치 그를 상징하듯 ‘나비’가 등장한다. 나는 이를 볼수록 이언 매큐언의 소설 「나비」가 떠올라 괴로웠다. 결국 눈앞에서 아가와의 총에 맞아 성범죄자가 죽자 그날부터 마시로는 말을 잃는다. 마치 그를 죽인 아버지로부터 단절된 것처럼 말이다.

 

고토 가문 역시 절대 악으로 보기엔 어려움이 있다. 분명 그들은 식인하는 가문이지만, 딱히 가문 외의 사람들에게 적대적이지 않다. 고토 가문 내에서도 식인이 잘못된 것을 인지하고 이를 막으려는 인물들이 존재하며 가문 내 분쟁으로 아가와의 가족이 위험에 빠지자 그들을 지켜주기까지 한다. 설령 식인을 옹호하는 사람이라도 그들이 하는 목재 사업으로 다른 노동자들의 편의를 봐준다.

 

마을 사람들은 고토 가문과는 정반대로 인식이 바뀐다. 따뜻한 시골 마을은 허상이었고, 고토 가문의 횡포로 일방적인 피해자인 줄 알았던 이들은 사실 고토 가문과 협업 관계였다. “고토 가문과 엮이지 말라.”는 말은 사실 진실에 다가가지 말라는 경고였다. 과연 절대적인 선은 존재할까? <간니발>은 이 물음에 그런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모두를 비웃는다.

 

 

 

풀리지 않은 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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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니발>은 아주 치밀한 연출이 돋보인다. 아가와 가족이 처음 마을로 이사할 때는 따뜻한 마을 같은 색채였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점차 차갑고 어두운 색채만 남는다. 아가와가 진실에 다가갈수록 카메라는 아가와의 등 뒤에서 시청자들 역시 지켜보는 것 같은 연출로 결국 시청자들이 함께 진실을 목도한다.

 

7부작으로 마무리한 시즌 1은 풀어야 할 이야기가 산더미이다. 고토 가문 내 정체모를 거인은 누구인지, 언제부터 식인하게 되었는지, 차기 고토 가문의 당주는 대체 속내가 무엇인지 등 <간니발>은 수많은 의문을 남긴 채 마무리했다. 남겨진 시청자들만 애가 타는 상황이다. 최근 스릴러 장르 드라마 중, 가장 완성도가 높게 느껴진 만큼 다가올 시즌 2가 기다려진다.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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